12월 둘째 주 독서 정리 - 책장 정리 중. 다시 읽기
1. 권석천, 『정의를 부탁해』, 동아시아, 2015
동아투위 제2대 위원장 안종필 선생의 이름으로 이어지는 '안종필 자유 언론상'이 있다. 애석하게도 91년 김중배 동아일보 전 편집국장이 이 상을 받은 이후 조선, 중앙, 동아일보의 기자가 이 상을 받은 적이 없었다. 그러다 2016년 중앙일보 권석천 논설위원이 이 상에 이름을 올린다. 그는 칼럼을 통해 보수적 가치를 끊임없이 밝혀 온 기자다. 세월호 이후 국민의 안전을 논한다. 통진당 해산에는 그들이 그릇된 길로 접어들었다고 믿지만 정부가 '생각까지 해산시킬 순 없다'고 말한다. 성인 여성이 추행당했을 때 피해자에게도 잘못이 있지 않냐고 묻는 사회에 의문에 어른 여성은 강간당해도 되냐고 일갈한다. 시민으로서, 기자로서 지켜야 할 가치에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그의 칼럼에서 보수의 가치를 읽는다.
2. 조너선 사프란 포어 지음/송은주 역,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 민음사, 2011
공장식 축산은 더 많은 식량을 생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곳의 수의사들은 동물들을 건강히 키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생산성을 늘리기 위해 일한다. 늘어나는 육류 수요를 가족농으로는 따라갈 수 없기에 공장식 축산은 불가피해 보인다. 소비자들은 저렴한 먹거리를 원하고, 공장식 축산은 수익이 된다면 윤리적인 비판도 감수할 것이다. 마트에 가면 동물들은 깨끗하게 포장되어 있다. 어떻게 길러지고, 어떻게 도축되는지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더 나은 환경에서 길러진 동물에게 더 많은 돈을 지불하는 사람들이 있다. '진짜 칠면조'에 '진짜 가격'을 낸다. 채식주의자들도 마찬가지다. 그들 또한 부자가 아니면서, 한정된 수입으로 살아가면서 기꺼이 수고로움과 번거로움을 감수한다.
3. 엄기호, 『나는 세상을 리셋하고 싶습니다』, 창비, 2016
라디오와 같이 세상을 끄고 켤 수 있다면.
4. 오준호, 『기본소득이 세상을 바꾼다』, 개마고원, 2017
기본소득은 재산, 소득, 노동 여부에 관계없이 일정 수준의 최소 생활비를 지급하자는 주장이다. 실효성과 지속 가능성이 한계로 지적받는다. 그럼에도 기본소득을 지지하는 여러 이유가 있다. 우선 복지 지원자에 대한 부정적 낙인을 해소할 수 있다. 취업을 위한 교육 또한 지금보다는 줄어들 것이다. 생계를 위해 눈감았던 불법 혹은 편법들도 마찬가지다. 사회적 안전망이 존재한다면 부당한 지시에 따르지 않아도 되고, 노동자로써의 권리 또한 당당하게 주장할 수 있다. 또한 남자가 돈을 벌고 여자가 돌봄을 담당하는 형태도 '사회가 생계를 책임지고 공동체가 돌봄을 함께 담당하는' 것으로 변화할 수 있을 것이라 본다. 진보진영의 포퓰리즘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사회보장제도는 노동자들의 불만이 혁명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고자 찾아낸 보수적 정책이었다. 보수주의자였던 비스마르크 또한 "국가가 무산계급에게도 필요한 존재라는 인상을 심어주는 것이 국가를 유지하는 길"이라 여겨 최초의 건강, 산재보험과 노인 연금을 도입했다.
5.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박은정 옮김,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문학동네, 2015
기록되지 않은 역사는 존재를 부정당한다. 전쟁은 남성의 역사로 기록된다. 전쟁의 역사에서 여성의 목소리는 지워진다. 지금까지 전쟁의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날의 기억을 혹은 고통을 기록함으로써 전쟁에 참여했던 수많은 여성들의 목소리를 복원한다. 한편으론 승리, 용맹, 전투 뒤에 감춰진 전쟁의 비극을 밝힌다. 전쟁은 영화가 아니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살육의 현장이다. 살아남은 자들의 몸은 돌아왔지만 삶은 아직도 전쟁터에 있다. 고통에 대한 연대와 고민만이 그들의 삶을 일상으로 복귀시킬 수 있을 것이다. 2015년 노벨상의 의미도 그들을 전쟁터에서 죽게 만들어선 안 된다는 메시지일 것이다.
6. 폴 메이슨 지음/안진이 옮김 , 『포스트 자본주의 새로운 시작』, 더퀘스트, 2017
자본주의가 영원할 거라는 생각에 대한 문제제기. 왜 우리는 자본주의 이후(포스트-자본주의)를 생각하지 못하게 되었는가. 여기서도 자본이 꾸준히 만들어낸 저임금 서비스 일자리는 존재할 가치가 없다고 말하며, 보편적 기본소득이 '쓰레기 일자리'에 대한 항생제(p.475~476)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다만 인류에게 생필품을 제공하는 데 필요한 노동시간이 최소화되어야 되었음을 전제로 한다. 특히 부동산으로 인한 부의 격차가 증가하는 한국 사회에서는 공유 자원의 사용 이익은 구성원 모두가 나눠 가질 권리가 있다는 원칙을 되새겨 볼 만 하다. 토지나 광물 등의 자연을 단지 선점하였다는 이유만으로 이익을 독점할 수 없다는 것이다. 기본소득의 재원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도 고려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