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김서령, 『여자전』, 푸른역사, 2017
한국 근현대사를 삶으로 지나온 여성들의 이야기. 감히 덧붙일 말이 없다.
02. 오찬호, 『진격의 대학교』, 문학동네, 2015
강의 거래, 족보, 학과 통폐합, 취업 목적의 강의. 특정 학교 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학문이 사회와 어떤 관계를 맺는지, 대학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더 이상 묻지 않는다. 대학은 경쟁과 효율을 제일 가치로 한다. 재정을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이유로 경비, 청소 등을 담당하는 노동자들을 직접 고용하지 않는다. 노동의 관계는 점점 복잡해지고 그들은 고용불안에 시달린다. 비정규직 신분을 연장하다 일방적인 해고를 당하기 일쑤다. 경쟁을 통한 비용 절감. 상생은 고려되지 않는다. 강의실 밖, 그러나 엄연히 대학 내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다. 교육적인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교육은 신성화되었다. 정당한 문제제기도 교육권을 침해하는 행위로 여긴다. 정치적 발언도 금기시된다. 사회적 이슈에 공개적으로 의견을 표명했다가는 운동권이라고 낙인찍히기 일쑤다. 그러나 법률 및 평가지표로 정해지는 대학평가 자체가 정치적이라는 사실에는 쉬쉬한다. 이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무기력할 할 수밖에 없다. 정부는 국립대뿐 아니라 사립대에도 지원금을 주거나, 제한할 수 있어 생명줄을 쥐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대학의 생존을 위한다는 이유로 침묵을 강요받는다.
취업률이 포함된 대학평가는 대학뿐 아니라 학생들의 삶까지 파고든다. 경쟁에서 밀린 것은 실력이 없거나 의지가 부족한 것으로 여겨진다. 실력의 차이는 차별을 정당화한다. 지잡대, 지균충 등의 발언이 생겨난다. 대학 내에서도 신분을 나눈다. 대학 내 민주주의는 공허한 메아리다. 공동체는 파괴된 지 오래다. 그러니 학생회의 역할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하나로 모을 수 있는 이슈도, 목소리도 없다. 축제 같은 행사나 자잘한 복지 사업을 이어나갈 뿐이다. 군대문화는 덤이다.
03. 김민섭, 『대리사회』, 와이즈베리, 2016
현대소설 연구자로, 글쓰기 강사로 대학에서 8년을 지냈던 김민섭 작가가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를 내며 대학에서 나와 대리운전을 시작한 이야기다. 대리운전기사 하니 생각나는 에피소드 하나.
술에 취해 정신을 차려보니 버스 차고지였다. 깨워주신 기사님께 죄송하다고 말씀드리고 혹시 나가는 차가 없냐 여쭤봤으나 그런 게 있을 리가. 다른 노선 중에 아슬아슬하게 나가는 버스가 있을 수도 있으니 큰길로 나가보라는 말씀을 따랐으나 지나가는 차 한 대 없는 허허벌판. 카카오 택시도 안 잡힌다. 터덜터덜 길을 따라 걷다 버스 정류장에 서서 '다시는 술 이렇게 안 먹어야지' 하늘에게 고해성사 중인데 택시 한 대가 멀리서 다가온다. 혹시나 해서 손을 흔드니 '어디 가요?' 한다. 아파트 이름을 말하니 엄지로 뒷좌석을 휘휘 가리킨다. '감사합니다.' 하면서 문을 열었는데 엥? 나 말고도 세 명이나 더 타고 있다. 알고 보니 대리기사님들을 태워서 시내로 나가는 택시였던 것.
기사님들은 핸드폰에서 시선을 고정한 상태였다. 콜이 잡히면 손님이 있는 곳을 말하며 한 명씩 내렸다. 나도 아파트 이름을 말하고 슬그머니 집 근처에 무사히 내렸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아마 나를 대리기사로 착각했던 것 같다. 보조배터리와 생수를 챙기기 위한 작은 가방, 콜을 체크하기 위한 핸드폰, 차가 끊긴 외곽지역. 삼박자를 모두 갖췄다. 작가의 말에 의하면 지정된 지역 밖에서 영업을 하는 것은 불법이고 벌금이 150만 원이나 된다고 한다. 물론 적발되기 전에 다른 기사님들한테 맞아 죽는 건데, 대리기사님을 태워 나가는 건 공생으로 여긴다고.
04. 김민섭,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은행나무, 2015
대학원생으로, 시간강사로 대학이라는 공간에서 지냈던 8년간의 시간을 담아냈다. 대학의 전통이라는 논리로 내려오는 노동과 봉사 사이의 애매한 조교 생활과 맥도널드 노동자만도 못한 시간강사의 처우가 기억에 남는다. 그는 시간강사로 '지식노동'을 했음에도 4대 보험 보장, 재직증명서 발급도 할 수 없었다. 학생들은 '교수님'이라고 부르지만 대학은 정교수와 강사를 철저히 구분한다. 얼마 전 통과된 시간강사법이 벌써부터 강사들을 해고할 명분이 될 징후들이 보인다. 다시 한번 대학이라는 공간이 얼마나 비교육적이며 자본의 논리를 내면화 한 곳인가를 아프게 깨닫는다.
05. 김정인, 『대학과 권력』, 휴머니스트, 2018
위의 책들이 경험적, 감상적 측면에 치중되었을 수 있어 읽기 시작했다. 대학 교육의 보편화, 사립대학의 성장, 시장주의적 대학 개혁 등은 얽히고 얽혀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이 구조 안에서 대학은 결코 시민을 만들어 낼 수 없다. 경쟁과 자본의 논리로 무장한 학생들을 기업에 취직시키는 취직 사관학교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 낼 뿐이다.
교육분야에서 만큼은 개인의 사유재산권을 제한할 수 있어야 한다. 교육분야에서 사유재산권을 주장할 수 있다면 사립대에는 국가가 지원을 하지 않아야 한다. 국가는 국공립대를 중심으로 학비를 낮추는 데 힘쓰고, 사립대는 등록금을 올리고 학생수를 줄이는 동시에 교육의 질을 높여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 이를 규정하고 있는 사학법, 유아교육법 등의 근본적인 내용을 개정해야 한다. 어차피 입학 정원의 축소로 죽어나갈 대학의 발생은 예정된 수순이다. 이 정도 반발도 감수하지 못하고 설득하지도 못한다면 개혁은 불가능하다.
06. 프랭크 도너휴/차익종 옮김, 『최후의 교수들』, 일월서각, 2014
미국 대학도 같은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우리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런지 다소 지루한 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