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독서정리

1월 둘째 주 독서정리

by 광호

1. 김승섭, 『우리 몸이 세계라면』, 동아시아, 2018

꽃이 필 것이라는, 열매가 맺힐 것이라는 기대 없이 어떻게 계속 씨앗을 뿌릴 수 있을지 고민했던 그가 따뜻한 대답을 하나 더 내놓았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보건 연구의 결과물을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현실에 한 발 더 다가가기 위해 쓴 대중서이다. '~했습니다', '~입니다' 같은 높임말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지식의 생산 과정에서 배제되어 있던 사람들을 놓치지 않으려는 그의 시선 덕에 어려울 수 있는 내용들이 친근하게 다가온다. '우리가 과학의 목소리를 신뢰하는 것은 결론에 도달하기까지의 합리적 사고 과정 때문이지, 그 결론이 진리를 담보하기 때문이 아닙니다'라는 그의 말이, 통계자료와 기사를 차별과 혐오의 근거로 사용하고,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하는 사람들에게 가닿기를 바란다. 또한 한국어로 연구 결과를 공유하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는 저자 및 동료 연구원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공동체의 변화는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를 통하지 않고는 어렵다고 믿는다. 우리말로 된 논문, 우리말로 된 책, 우리말로 된 연구 자료들 그리고 우리말로 된 문학, 우리말 가사로 된 음악이 계속되기를.


2. 임세원,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 알키, 2016 - 임세원 교수님의 명복을 빕니다.

몸 상태에 따라 컨디션과 감정의 기복이 커서 어느 날은 의욕이 넘치다가도, 만사가 귀찮아 일어나는 것조차 힘든 날이 반복된다. 이유 없는 분노나 질투가 불쑥 찾아와 소중한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내뱉어 버리는 날도 있다. 그래서 약속은 최소한으로 하되, 이미 정한 약속은 최대한 지키려 하고, 문제가 될 수 있는 이야기는 최대한 삼가며 살았다. 하지만 그런 삶이 주변 사람들 뿐 아니라 나에게도 아쉬움과 상처가 되고 있었음을 최근에서야 깨닫는다. 허리 디스크로 우울증을 겪게 된 임세원 교수 또한 타인과의 관계가 반 강제적으로 중단되며 감정적으로 고립되어 갔다.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몰두하다 보니 미래를 비관하게 되고, 희망을 잃기 시작했다. 극단적인 선택을 결심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바라보는 환자들에게서 희망을 찾고, 그들을 통해 삶을 지탱해 나갔던 과정을 글로 써냈다. 나는 우리 인간은 어처구니없는 실수나 어리석은 잘못을 범하기도 한다는 한계를 가진 존재이며, 그렇기에 역설적으로 더욱 인간적이기도 하다는 말에 많은 위로를 받았다.


안타까운 사건이 있었던 순간에도 동료 간호사가 대피할 시간을 벌어주었던 교수님의 모습과, "의료진의 안전과 더불어 모든 사람이 정신적 고통을 겪을 때 사회적 낙인 없이 적절한 정신 치료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는 유족의 말씀을 잊지 않겠습니다. 다시 한번 임세원 교수님의 명복을 빕니다.


3. 최헌, 『인권』, 책세상, 2008

인권은 인간 모두에게 보장되어야 할 권리들의 가치를 정당화한다면, 시민권은 그 가치를 실현한다. 역사적으로도 특정 지역이나 인종, 성별에 따라 인권이 보장/제한되었다. 그러므로 국가 형성, 경제 발전은 시민권의 발전과 밀접한 영향력이 있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경제적 불평등을 초래해 시민권을 다시 위협하게 되었다. 또한 집단 인지적 시민권이 소수자에 대한 인권 보장이 역차별 침해와 평등권 침해를 가져와 연대 의식을 해치고, 공동체의 해체를 초래할 수 있다는 주장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러한 주장이 힘을 얻어 인권 보장을 후퇴시키는 역설적 상황이 펼쳐지기도 한다. 다양한 집단을 포괄하는 정치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소수자들이 소외되지 않을 만큼 민주주의가 발전되고 이념과 제도, 정치 문화가 확립되어야 한다고 말하며 끝을 맺는다.


4. 장문석, 『파시즘』, 책세상, 2010

파시즘의 논리는 단일 의지이다. 같은 생각을 가진 민족-민중이 주권자로 숭배된다. 이 단일 의지를 거스르면 '내부의 적'으로 간주된다. 유대인, 집시, 정신 질환자, 소수 종족 등이 모두 포함된다. 그럼에도 이러한 주장과 결정은 대중의 열렬한 동의를 얻어 이루어졌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때로는 주권자와 국민의 뜻이 올바른 길을 향하지 않을 때도 있다. 또한 파시즘이 숭배하는 전통 숭배는 필요에 의해 만들어지고 동원된 것이다.


5. 박영균, 『노동가치』, 책세상, 2009

토지의 소유는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는가. 공간과 자원이 한정된 공간에서 더 이상 노동을 투입할 대상이 없어진다면 이는 다른 사람의 자연권을 제한하는 일이 아닌가? 나의 욕망이나 필요가 아님에도 과잉 생산을 위해 투입되는 나의 노동은 얼마의 가치가 있는가? 해답은 없지만 힌트 정도는 얻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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