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독서정리

1월 마지막 주 독서정리

by 광호

1. 김훈, 『언니의 폐경』, 랜덤하우스중앙, 2005

김훈의 <언니의 폐경>과 공선옥의 <폐경전야>를 연구한 자료들은 공통적으로 여성의 월경과 달의 변화에 연관성이 있다는 점을 언급한다. <언니의 폐경> 에서도 화자의 언니가 베란다 앞 테이블에서 밀물과 썰물을 지켜보는 장면을 구체적으로 묘사한다. 하지만 여성에 대한 이해는 더 나아가지 않는다. 여성의 몸은 자연 혹은 생명과 연관된 것으로만 그려진다.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여겨서일까. 생리를 하는 장면은 매우 부자연스럽게 묘사된다. '여자를 생명체로 묘사하는 것은 할 수 있지만 어떤 역할과 기능을 가진 인격체로 묘사하는데 매우 서투르다'는 그의 발언처럼.


후반부에는 자매의 새로운 삶을 암시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경주에 간 언니와 나는 책자에서 사복설화를 읽는다. 사복이라는 불구자의 어머니가 죽자 원효스님과 함께 장례를 치른다. 그곳에서 사복이 풀뿌리를 뽑자 그 밑으로 고요하고 정갈한 세계가 나타나고, 사복은 그 안으로 상여를 메고 들어가 장사를 지냈다는 내용이다. 이 설화를 보고 언니는 풀뿌리 밑이 연화장이라는 점에, 나는 월경에 한자가 왜 불경과 같은 경(經)자인지를 궁금해한다. 불교의 세계관에서 소멸은 새로운 시작이기도 하다. 불교적 색채를 덧대어 여성의 폐경 이후 새로운 삶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다.


하지만 여성의 역할은 생명을 생산하는 생물학적 역할, 혹은 기존의 가족 질서에 순응하는 존재로 한정된다. 사실상 이혼 상태인데도 시아주버니의 칠순잔치에 참석을 요구하는 남편의 제안을 수락하는 언니와, 전남편의 동료인 '그이'와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는 '나'의 모습 모두 적극적인 변화나 저항을 선택하지 않는다. 이처럼 <언니의 폐경>에서 여성은 남성과 결혼하여 가정을 꾸리거나, 가족 제도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에 한정된 인물로 그려진다.


김훈은 <언니의 폐경>으로 2005년 황순원 문학상을 받았다. 문제가 되었던 표현들은 당시의 문단이나 독자들의 감수성이 허락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작품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 평가가 달라진다. 영원한 고전도, 정전도 없다.


2. 강동수, 『언더 더 씨』, 호밀밭, 2018
여성의 신체를 생명의 상징으로 사용하는 방법은 진부하다. 죽은 비유다. 하지 않는 것만 못하다. 쓴다 하더라도 제한적으로, 예민하고 치밀하게 사용해야 한다. 생명력을 표현할 때마다 버릇처럼 사용하면서 문학적 장치라고 주장하는 건 시대를 따라가지 못하는 작가의 무지 혹은 게으름이라고 밖에는 볼 수 없다. 「언더더씨」에서 여고생으로 설정된 화자가 자두를 먹으며 '내 젖가슴처럼 단단하고 탱탱한 과육에 앞니를 박아 넣으면 입속으로 흘러들던 새큼하고 달콤한 즙액'(p.119)이라고 말하는 장면처럼 말이다.


논란이 이어지자 작가는 '무구하고 생기발랄한 젊디 젊은 여학생의 생을 상징하는 문학적 장치로서, 단단하고 탱탱한 자두의 이미지를 차용'했다고 해명했다. '참혹함을 극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의도적으로' 사용했으며, '소설 전체의 의도와 맥락은 깡그리 무시하고 의도적으로 왜곡'하고 있다고 본인의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밝혔다. 현재 해당 글은 철회, 삭제되었으며 젠더 감수성과 성 평등 의식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성찰하겠다는 입장문을 냈다.


'생기발랄', '젊음', '탱탱한 자두' 따위에 문학적 장치라는 옷을 입히는 건 너무 구리다. 전형적일 뿐 아니라 진부하다. 심지어 세월호 희생자를 대상으로 했다는 점이 더해져 분노를 일으켰다. 그럼에도 작가는 비판을 수용하지 못하고, 극렬 페미니즘이 좌표를 찍었다며 페미니즘에 대한 반감으로 대응했다. 표현의 자유와 반지성주의를 언급하며 본인이 쓴 작품을 대중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으로 책임을 돌렸다. 놀랍게도 2018년에 나온 작품이다.


3. 김훈, 『화장』, 문학사상사, 2004
손아람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김훈은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대신 무생물적 대상화를 한다. 욕망에 따른 시선을 의도적으로 거부하고 대체 이걸 왜 묘사하는데?라는 생각이 들 때까지 신체를 해부한다. 비키니 모델의 달력 대신 자궁 해부도를 덕지덕지 붙여놓는 염세주의자의 방 같은 섬뜩함. 인간의 생물적 기능과 욕망을 너절한 것으로 만들어버리면서 모든 것을 죽음 가깝게 환원하는 장치다."


그렇다. <화장>에서 인간의 몸, 죽음은 철저히 해부된다. 육체의 소멸(이라고 써야 할 것 같다. 김훈이라면 죽음 또한 육체의 소멸과 영혼의 소멸로 잘게 나누려 할 테니) 앞에서 김훈은 치골, 침, 몸, 뼈, 피부, 엉덩이, 성기, 살, 사타구니, 음모, 대음순, 뇌종양, 종양, 조직, 똥, 괄약근, 사타구니, 악취, 성기, 고환, 방광, 고환, 항문, 도뇨관, 요도, 젖가슴 등의 단어들을 끊임없이 등장시킨다. 감정 없이 인체를 분해하는 듯하다. 그 사이에서 육체와 정신, 젊음과 늙음, 무거움과 가벼움 등의 주제가 대립하며 아내의 장례가 치러지는 사흘간의 시간이 서술된다.


4. 오세라비, 『그 페미니즘은 틀렸다』, 2018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페미니즘이 아닌 휴머니즘이 필요하다는 것이 핵심 주장. '여성과 남성이 교육의 권리, 법적 권리, 참정권 등을 함께 누린다. 의무와 권리도 동등하다. 지금 세대는 역사상 최고 수준의 성평등 의식을 공유하며 성장하였다.(p.5)'는 것을 전제로 페미니즘을 비판한다. 사회 문제에 유일한 해결책은 없다는 말에는 동의하나 그것이 사실상 안티 페미니즘으로 향하고 있다는 점은 지적되어야 한다. 메갈리아와 워마드의 미러링에 대한 분석으로 1장이 시작됨에도 남성 중심의 문화에 대한 논의는 없다. 한국 사회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느냐에 따라 명확히 평이 갈릴 책. 얻어갈 수 있는 게 있지 않을까 했지만 온라인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주장의 동어 반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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