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김훈,『칼의 노래』, 생각의 나무, 2001
무력함과 무의미함이 작품 전체를 지배한다. 이순신은 무인이다. 이순신은 적의 적으로써 존재한다. 적이 있기에 이순신도 있다. 보이는 적은 칼로 벨 수 있지만 정치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칼로 벨 수도 없다. 전쟁이 끝나면 임금에게 자신의 목이 베어질 것은 자명했다. 그렇기에 이순신은 후퇴하는 일본 해군의 뒤를 쫓을 수밖에 없다. 전란 중에는 삼도수군통제사지만 전란이 끝나면 군사를 보유한 위협적인 존재일 뿐이다. 일본 해군의 퇴각은 이순신의 소멸과 마찬가지다. 면사포를 불태우고 노량으로 가 적의 총탄을 맞고 죽는다. 자신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죽음을 통해 실존의 의미를 역설한다.
수치화, 통계화된 죽음에서는 죽음의 향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나 죽음은 분명 개별적이다. 저마다의 표정을 한 죽음의 개별성 앞에서 인간은 두려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칼의 노래가 자신의 이야기 같았다는 이국종 교수도 '늘 죽음과 마주하면서도 난 그 개별적인 죽음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골든아워1』)'고 말한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그들은 묵묵히 칼을 든다. 칼을 잡는 것을 업으로 하는 사람의 일상이다. '세상이 스스로 세상일 수 있게 된 연후에나 한없는 무기력 속에서 죽기를‘(『칼의 노래』)' 염원하며 묵묵히 자신이 선택한 일을 해나가는 것이,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그곳에서 삶의 무의미함과 존재의 위태로움을 견딜 수 있게 하는 유일한 방법일지도 모른다.
2.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청춘의 가격』, 사계절, 2017
뮤지션들에게 필요한 건 정규직 취직이 아니라 음악 활동 지원이라고 지적하는 싱어송 라이터 김초록씨, 각각 프리랜서 디자이너, 시민단체 활동가로 일하면서 농사를 지으려고 귀농 혹은 귀촌을 생각하는 김혜리, 김진회 부부 등 다양한 청년들이 등장한다. 공통적으로 이들은 자본주의의 영향에서 자유롭기를 원한다. 자본주의에서 벗어난다는 건 자본주의를 부정한다는 게 아니다. 자본에 예속된 상태에서 자유로워지려는 노력이다. 적게 쓰고 적게 버는 대신 자신의 목소리, 자신의 생각을 다듬고 매만질 시간을 원한다. 그럼에도 수도권에 집중된 일자리, 높은 주거비, 소득 재분배 실패 등으로 인하여 청년들에게 희망과 미래는 사치가 되어버렸다.
3. 미스핏츠, 『청년, 난민 되다』, 코난북스, 2015
미친 집값의 현장을 발로 찾아간 탐사 르포. 한국뿐 아니라 타이베이, 홍콩, 도쿄의 집값도 청년들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다. 열심히 노동해서 돈을 모아 집을 살 때쯤이면 좋은 시절은 다 간다. 불안정한 주거는 심리적으로나 경제적으로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금수저가 아닌 이상 청년세대가 노동으로 집을 산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투자나 투기만이 닺이다. 기숙사 신축이나 주거 공유 등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지만 기숙사 신축 및 확장은 대학가 주민들의 반대에 힘을 못 쓰고, 주거 공유는 자본금의 부족으로 현상적인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4. 최서윤, 이진송, 김송희 『미운 청년 새끼』, 미래의 창, 2017
청년들의 진솔한 이야기. 청년을 명쾌하게 정의할 수 없듯 이 책도 요약 불가능.
5. 릿터 편집부,『Littor 16』, 민음사, 2019.02
이번 호 주제는 '출퇴근길'. 문학잡지인데 소설이나 시는 꼼꼼히 안 보고 산문, 인터뷰, 이슈 꼭지를 먼저 보는 편이다. 양준석의 <여성의 통근 시간은 왜 짧은가?>는 여성의 통근 시간이 남성에 비해 약 10분 정도 짧은데 이는 가사노동을 위해 집에서 가까운 곳을 택하기 때문임을 분석해낸다. 이는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OECD 회원국 통계에서도 드러난다. 다른 요인도 복합적으로 작용하겠지만 112분 대 18분이라는 가사노동 분담 시간의 차이를 무시할 수는 없다. 문보영 시인의 <시인이랑 결혼 안 하면 인생은 반이 성공이다>는 제목부터 남다르다. 시 같기도 하고 에세이 같기도 하고 소설 같기도 한데, 경쾌한 리듬과 빠른 흐름의 전환이 매력적이다. "사람들은 손잡이가 없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을 문으로 생각하지 않는데 시를 쓸 때만큼은 사람의 무릎이나 겨드랑이 아니면 허벅지에 난 점 따위에 달린 작은 손잡이가 보이며, 열릴 리 없지만 왠지 열고 싶다는 느낌을 받는다”는 2017년 김수영 문학상 수상 소감도 압권.
6. 김훈, 『빗살무늬 토기의 추억』, 문학동네, 1995 (전자책)
노래를 들을 때에도 1집, 책을 읽을 때에도 첫 작품을 읽어보려 하는 편이다. 초기 작품에 자신의 생각을 거칠게라도 압축시킨 뒤에 조금씩 꺼내어 다듬고 변형시켜 새로운 작품을 내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러다 할 말이 없어지면 은퇴하는 거고. 『빗살무늬 토기의 추억』은 소방관의 이야기인데남성 영웅의 재현, 주변적 인물로 등장하는 여성, 전쟁 혹은 전쟁에 준하는 위급 상황을 배경(혹은 밥벌이)으로 하는 점, 죽음(자연사)에 대한 욕망, 극복 불가능한 모순적 적대관계 등이『칼의 노래』와 연관되는 듯하다. 김훈의 문장도 좋지만 그의 허무주의적 세계 인식이나 죽음을 향한 관심, 인간의 이중성, 역설 등엔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