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원석,『서평 쓰는 법』, 유유, 2016
책과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지 못하는 건 책의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책이 요상할 정도로 어려우면 끙끙대지 말고 내려놓자. 그리고 의심해보자. 내가 내 수준을 파악하지 못하고 어려운 책을 골랐나. 아니면 저자가 이해하지 못한 채 책을 썼거나, 안다고 해도 설명을 명쾌하게 못하고 비비 꼬고 있진 않은가. 전자라면 다음부턴 좀 더 쉬운 책을 고르고, 후자라면 시원하게 욕 한 번 해주자. 서평은 더 나은 글과 담론을 위한 거니깐. 예의보다 내용이 우선이다.
2. 게르드 브란튼베르그 지음, 히스테리아 옮김, 『이갈리아의 딸들』, 황금가지, 1996
훈련을 받고 나오던 날, 전염의 위험이 있으니 가족들은 차에서 내리지 말고 퇴소자만 태워서 가라고 했다. 외부 차량은 훈련소 안으로 출입도 불가했다. 퇴소식도 생략했다. 아침밥 먹더니 옷갈아입고 가방 챙겨서 알아서 귀가하라고 했다. 집에 왔다는 기쁨도 잠시. 뭔가를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중심엔 메르스 갤러리의 탄생이 있었다. 메르스가 어떤 병인지도 모른 채 나왔으니 메르스와 페미니즘이 어떤 연관이 있는 건지 알 턱이 있나. 잠깐 놓쳤던 세상을 이해하고 싶다는 명목으로 멍청한 소리도 한참 하고 다녔다. '미러링'을 이해한다면 단맛과 짠맛을 한 번에 맛볼 수 있는 소설. 이해하지 못한다면 어차피 안 읽을 소설.
3. 권김현영, 루인, 정희진, 한채윤 공저, 정희진 엮음, 『미투의 정치학』, 교양인, 2019
책을 사면 서문을 읽어두는 편이다. 시작을 해둬야 나중에 다시 펼치기에도 부담이 적고, 내용을 간략하게나마 알고 있어야 필요할 때 꺼내 읽을 수 있다. 책꽂이에서 순서를 기다리는 책들과 새로 온 책들에 대한 나만의 예의다. 가끔 잘 쓴 서문에 혼을 뺏겨 새치기 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건 어쩔 수 없다. 이 책이 그랬다. 곱씹어볼만한 부분에 플래그를 붙이는데 소제목 하나에 세네개는 기본이었다. 모든 곳에 다 붙여버리면 앞에 붙여 플래그들이 실망할까 싶어 플래그 붙이는 것조차 아껴가며 읽었었다. 그만큼 치열한 삶과 고민들로 쓰여진 글이다.
정희진의 '여성주의는 누가 남성이고 누가 여성인가를 정하는 권력의 소재를 밝히는 운동이다.(p.89)'라고 말한다. 뒤늦게 접한 문장 하나가 십자말풀이의 가운데 글자처럼 위아래로 의문덩어리였던 문제들에 가능성을 열어줬다. 예를 들자면 남성도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는가? 라는 질문. 이전까지는 여성과 남성이라는 성별에 갇혀 남성은 페미니스트가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노동운동 하는 자본가 느낌이랄까. 불가능이라기보단 한계가 있다는 쪽에 가깝지만 거칠게 표현하자면 그렇다. 루인 또한「젠더 개념과 젠더 폭력」에서 젠더 폭력의 개념을 남성과 여성 둘로 나누는 것, 섹스와 젠더를 필연적인 관계로 설정하는 방식에 질문을 던진다. 젠더 폭력의 개념 자체를 재구성하여 트랜스 젠더퀴어와 비트랜스의 관계를 재정립하려는 시도다.
얼마 전 100분 토론에서 '남성이 받는 피해나 남성이 겪는 아픔에 대해서 둔감한 사회', '남성 스스로가 자신이 피해를 받았다라고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어려운 사회(<100분토론> 813회, 28:51~29:20)'에 대한 문제를 지적한 시민토론단이 있었다. 그 의견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렇다면 문제점은 울면 안 돼고 강해야 하고, 참아야 하는 '남성'을 만들어 낸 사회와 문화에서 찾아야 한다. 그것을 역차별이라고 느낀다면 더욱 더.
4. 조국, 『형사법의 성편향』, 박영사, 2018.09(전면개정판)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조국의 책. 각 주제에 대한 주요 쟁점, 판례 비판, 해석론, 입법론, 보론 등으로 구성된 논문집이다. 동의 없이 이루어진 성교의 범죄화, 재판의 공개주의에 대한 성폭력특별법상의 제한 등의 내용이 담겨있다. 성폭력의 보호법익(법률에 의해 보호되는 가치)은 1994년 형법 개정 전까지 정조였다. 현재는 성적 자기결정권을 보호법익으로 한다. 판례들을 읽고 있으면 속이 탄다. 여성계에서 주장하는 성폭력 범죄 수사에 맞고소로 대응하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및 무고죄의 폐지 혹은 판결 전까지 수사 중단 법제화에 대한 쟁점들도 눈여겨볼만 하다.
형법 307조 제1항(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이 폐지된다 하더라도 용의자가 성폭력범죄 피해자의 주장이 허위라고 주장하며 고소한다면 수사기관은 조사를 시작해야 한다. 주장이 허위인지 사실인지 밝혀야 하기 때문이다. 무고죄의 부적용 또한 가해자를 유죄추정하여 국민의 법률적 권리 행사를 금지하게 되므로 불가능하다. 비슷한 맥락에서 판결 전의 용의자를 포토라인 앞에 세우고 언론이 이를 보도하는 것 또한 문제가 있다고 본다. 그럼에도 성폭력 사건의 특별성을 고려하여 형사절차법을 통해서라도 피해자 보호가 이루어져야 함을 저자는 밝힌다. 『미투의 정치학』과 함께 읽으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