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마지막 주 독서정리
1. 이옥란, 『편집자 되는 법』, 유유, 2019, 142쪽, 10,000원
배신당했다. "편집자가 되는 방법을 알려주겠지!" 했는데 편집자로 일을 시작한 사람들을 위한 책에 가까웠다. 그럼에도 책에 관심이 있다면 제법 즐겁게 읽을 수 있다. 저자는 적은 연봉, 잦은 야근, 짧은 근속 연수와 같은 출판계의 시린 현실을 애써 감추지 않는다. 그럼에도 애정이 듬뿍 담겨, 책장을 넘긴 손가락에 그 흔적들이 한 방울씩 손에 스민다. 제작이나 지원서 쓰는 법 등 실무적인 내용뿐 아니라 사람과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들도 함께 담겨있다. 책 표지의 의미는 잘 모르겠다. 책이 날아다니는 건가?
2. 엄윤진, 『있지도 않은 자유를 있다고 느끼게 하는 거짓 자유』, 갈무리, 2019, 320쪽, 17,000원
신자유주의가 대의민주주의와 짝패를 이루어 상위 계급의 배만 불려주고 있다는 이야기. 정치인과 기업, 언론은 교육이나 사법제도 혹은 대중문화 등을 통해 지배구조를 숨기기 때문에 시민들은 이를 쉽사리 깨닫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대안으로 개헌과 기본소득을 제시한다. 직설적이고 거친 표현들이 있긴 하지만 전체적인 의견에는 동의한다. 책의 난이도보단 성향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만한 책. 대중교육 도입은 공장 노동자와 군인을 길러내기 위함이었으며(p.93) 학교는 대의 민주주의의 우수성과 불평등을 인정하게 하고 위계구조에 복종하게 한다는(p.110) 등의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면 읽기 힘들 것.
3. 은유, 『출판하는 마음』, 제철소, 2018, 344쪽, 16,000원
한때는 글을 잘 쓰는 기술 같은 게 있어서 그 비법을 알아내면 글의 대가가 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은유 작가의 글을 읽으며 다시 한번 깨달았다. 글을 잘 쓰려면 무엇보다 잘 살아야 한다. 사람에 대한 관심과 애정. 그것이 없이 쓸 수 없는 문장들이 분명 있다. 그 따스함이 분할 정도로 부럽다. 글자를 따라 적거나 흉내 낼 순 있겠지만 그게 진심이 아니라는 건 독자들이 먼저 알아차릴 것이기에, 난 그럴 글을 쓸 수가 없다. 지금도 내 글이 나 자신을 기만하고 있지 않았나 하는 순간이 문득 찾아오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내가 썼던 모든 글을 세상에서 흔적도 없이 지워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책의 내용은 물론이지만 '책'의 '물성'에 관심을 가지고 책을 탄생시키는 것을 업으로 삼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흥미로운 건 많은 인터뷰이들이 출판계 또한 이상한 사람들이 있으니 좋은 사람들만 일할 거라는 편견을 버리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그런 이야기를 하는 인터뷰이 같은 사람이 있으니 가볼만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는 점.
4. 김창인, 이동현, 고은주, 『추락하는 대학에 날개가 있을까』, 들녘, 2019, 158쪽, 12,000원
죽은 새들이 노래를 부르네 / 내가 찾던 바람은 이곳에 없다는 것을 / 추락이란 끝이 황홀한 언어를 모르고 / 추락하는 새들에게는 죽음은 가장 완벽한 착륙 / 희망이란 말을 알고 난 거리로 계속 불시착하지 (폰부스 죽은 새의 노래 中)
5. 한병철 저, 이재영 옮김, 『타자의 추방』, 문학과지성사, 2017, 134쪽, 12,000원
짧지만 어렵다. 문장의 보폭이 넓다. 빈틈을 채우는 건 독자의 몫이다. 맥락을 파악하는 데 능숙하지 않거나 배경지식이 부족하면 발자국을 놓치고 만다. 결국 앞 문장으로 몇 번은 돌아갔다 와야 하는데 그 수고를 반복하면서 읽어나가는 게 결코 쉬운 작업은 아니다. 나도 몇 번 시도하다 중간중간 이해되지 않는 부분은 건너뛰고 읽었다. 에로스의 종말부터 읽고 와서 재도전해야겠다.
6. 문요한, 『관계를 읽는 시간』, 더퀘스트, 2018, 320쪽, 16,000원
짝과 함께 읽었다. 건강한 관계에는 적당한 바운더리가 필요하다는 이야기. 본문에 들어가 있는 일러스트는 적당히 유머스러우면서도 내용과 잘 어우러져 좋았다. 두 번째 읽을 때부턴 너-나 사이의 공간에 슬쩍 적어놓은 우리(we)의 존재가 보이기 시작한다. 다만 뒤로 갈수록 힘이 좀 빠진다. 아무래도 인간관계에 해결책을 제시한다는 게 일반적인 내용일 수밖에 없기 때문인듯하다. 또한 저자(혹은 편집자)가 중요하다고 생각한 부분에 밑줄을 쳐놓았는데 그다지 동의가 되지는 않았다. 다른 문장이 더 중요하다고 여겨지거나, 그 문장을 중요하게 여겨야만 하나? 하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
7. 가이 스탠딩 저, 김태호 옮김, 『프레카리아트.새로운 위험한 계급』, 박종철출판사, 2014, 416쪽, 30,000원
'부르주아에 대한 고전적인 적의 같은 것(이장욱,「근하신년- 코끼리군의 엽서」中)'을 품고 살았다. 언젠가는 노동자들이 혁명을 일으킬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노동 환경은 변화했다. 맑스의 이론처럼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로 계급을 나누기엔 너무나 복잡해졌다. 그래서 가이스탠딩은 불안정한 형태의 노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프레카리아트'라는 계급을 제시한다. 번역이 그다지 매끄럽지 않고 저자의 주장도 잘 정리되어 있다는 느낌은 아니지만 불안정한 노동에 대한 개념을 하나의 계급으로 제시했다는 점에서 읽어봄직한 책. 박종철 출판사가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책꽂이에 꽂아놓고 싶은데 절판돼서 구할 방법이 없다. 온라인 중고매장에서는 정가보다 비싸게 팔고 있다. 헌책방을 좀 돌아다녀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