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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호 Feb 21. 2020

2월 셋째 주 독서정리

2월 셋째 주 독서정리


1. 김은정, 「사회불안장애」, 학지사, 2016

기타를 잘 치고 싶어서 이 책을 샀다. 

무슨 개소리? 기타를 잘 치고 싶은데 왜 사회불안 장애를 읽지? 


사람을 만날 때, 사람 앞에서 연주를 할 때, 발표를 할 때, 말을 할 때, 밥을 먹을 때, 글씨를 쓸 때. 그러니깐 사람들과 함께 있는 모든 시간에 나는 심한 긴장을 한다. 다른 사람이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두렵다. 글씨를 쓸 때나 물을 마시다가도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지면 손이 덜덜 떨린다. 아 떨지 말아야지. 생각이 닿는 순간 더 떨린다. 그런 불안은 만성적인 걱정으로 이어진다. 기타를 칠 때도 실수하지 않으려다보니 바싹 긴장한 상태로 연주를 하게 되는데, 연주도 몸을 쓰는 것. 운동이나 마찬가지다. 힘을 빡 주고 연주하면 될 것도 안 된다. 손이 떨리니깐 운지가 부정확하고, 힘은 더 들어간다. 덕분에 왼손 검지 부상 겟. 엑스레이도 찍고 물리치료도 받아봤지만 진전은 없다. 지금도 후유증이 남아 굽힐 때 감각이 다소 부자연스럽다. 


실수에 대한 불안은 강박으로 이어진다. '모든 상황을 통제하고 모든 경우의 수를 완벽하게 파악하면 불안할 일이 없겠지!'라는 기계가 아닌 이상 불가능한 알고리즘. 장소나 앰프가 바뀌면 당연히 바뀌는 기타 톤에 완벽한 동일성을 추구한다는 것부터 말이 안 된다. 연주는 말할 것도 없다. 프로 뮤지션도 실수를 하는데. 완벽이라는 기준은 스스로가 만든 추상적인 기준이기에 어떤 경우에도 실현될 수 없다. 관객들이 모두 '인생 최고의 공연이었다, 신이 내린듯한 연주였다.' 라고 평해도 스스로 완벽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면 그건 완벽하지 못한 것이기에. 나의 불완전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로 완벽에 대한 강박에 쏟는 에너지는 결국 스스로를 갉아먹을 뿐이다. 안타깝게도 사회불안장애를 가진 사람에게 타인과의 관계는 매 시간 긴장해야 하는 전시상태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사회불안 장애가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좋은 인상을 주려는 욕구를 강하게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신에게는 좋은 인상을 주는 데 필요한 사회적 능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p.20~21)이라고 한다. 그니깐 선한 관종인데 관종력이 부족한 것. 음. 약간 내 이야기 같은데 싶어서 책에 나온 자가진단 검사를 해봤다. 꽤나 보수적으로 점수를 매겼음에도 126점이 나왔다. 심한 정도의 사회불안장애란다. (참고로 만점이 140점) 타인에 대한 비판적 태도, 타인과의 협력적인 관계나 지원에 대한 기대 불가, 완벽주의, 열등감, 강박적 의무감 등등. 아, 이거 너무 내 이야긴데. 이를 완화하기 위해서는 완벽이 비현실적이라는 걸 인정하는 게 우선이라 한다. 완벽에 대한 집착은 실패나 좌절감으로 이어지고 만성적인 무력감이나 우울증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으므로. 


실제로 나는 책 한 권을 읽어도 첫장부터 끝까지 다 읽어야 된다. 각주도 다 읽어야 하고. 사람들과 대화하다 모르는 주제가 나오면 부들부들 한다. 집에 가서 검색창에 넣고 논문까지 찾아봐야 직성이 풀린다. 근데 다음에 또 그 주제가 나온다는 보장도 없고, 세상 모든 일들을 이해하는 것도 불가하다. 완벽해야 된다는 생각이 가득차 있으니 대화가 오히려 끊기고 자연스럽게 참여하는데 어려움을 느낀다. 어쩔 수 없다. 그냥 인간이라는 게 어딘가 덜 생겨먹어서 서로의 조언과 협력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걸 인정하는 수밖에. 쉽지는 않다. 난 그냥 인간을 다 혐오하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던 것. (흑백논리 또한 사회불안 장애를 가진 사람의 특질 중 하나) 사실 나는 사람이 좋은데, 그 사람이 날 좋아하지 않을까봐 무서운 찌질이였던 거다.


* 타인에게 인정받아야만 행복하고 그러한 인정을 받으려면 남들에게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잘못된 신념체계를 이해하라. (p.226) 


2. 이용승,『범불안장애』, 학지사, 2016

특정 불안장애를 다루고 있는 것이 아니라서 개론서 가깝다. 불안장애에 관해 가볍게 이해하기 좋은 책이다. 


나의 의심되는 증상 요약

- 사회불안장애 : 사람들 앞에 나서는 대부분의 상황에 긴장함. 심한 날은 손이 떨려서 물도 못 마심.

- 선택적 무언증 : 말을 하고 싶은데 말이 안 나오고 입에서 맴돌 때가 있다. 가족이나 인간관계에 대한 이야기, 경제적 불안, 혹은 누군가 나에게 이야기를 권유(강요)했을 때 일어난다. '~이야기 좀 해봐' 이러면 갑자기 방어적으로 바뀜. 물론 사람, 상황에 따라 다름.

- 강박장애 : 지갑에 지폐는 항상 같은 방향을 보도록, 큰 돈부터 작은 돈 순으로. 주머니에 넣는 물건 및 순서는 정해져 있음. 가방 안의 물건도 위치 및 순서 동일. 책장에 책은 가나다 순으로 정렬.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 더 심해지는데 그런 날은 밥을 먹는 숟가락과 국을 먹는 숟가락도 따로 써야 함.


3. 김혜진, 『9번의 일』, 한겨레출판, 2019

그의 이름은 끝까지 밝혀지지 않는다. 회사가 구역에 따라 부여한 숫자 '9번'이 그를 지칭할 뿐이다. 필요와 효율에 따라 언제든 교체될 수 있는 노동력에 불과한 것이다. 그럼에도 사람은 일을 하면서 보람이나 성취감 같은 걸 느낀다. 통신탑을 무너트리는 결말에선 감당할 수 없을 숫자의 손배소 금액이 먼저 떠올랐다.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을 일이라 생각했지만 어쩌면. 어쩌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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