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민병배, 이한주, 『강박성 성격장애』, 학지사, 2016
사회불안장애는 테스트를 해 볼 생각이라도 들었는데 이건 그럴 필요도 없다. 그냥 나다. 내 성격이라고 생각했던 게 '강박성 성격장애의 임상적 특징'에 다 써있더라. 나에 대한 이야기를 쓰는 게 곧 책에 대한 이야기와 같으니 그냥 내 이야기를 적어본다.
1-1. "너 왜 쟤랑은 놀면서 나랑은 안 놀아?"
나를 당황시키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다. 모든 사람을 공평하게 대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사람이 누구든, 나한테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든 말이다. 그게 내가 인간관계에 세워 둔 규칙이었고 그 규칙에 예외는 절대 없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혹시라도 예외가 발생한다면 그건 '애초에 내가 세워 둔 원칙이 기만적이었음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간주했다. 예를 들어 A와 B가 만나서 밥 한 번 먹자고 했는데 A한테는 흔쾌히 '그러자'고 하고 B한테는 '안 된다'고 한다? 이건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A, B와의 친분이나 만남의 이유와 관계없이 내게 동일한 조건의 제안을 했다면 받아들여야 하는 게 원칙이었다. 그러니 누군가와 자신을 차별한다는 질문은 나의 가치관을 부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 질문을 들으면 어쩔 줄 몰라 부들부들한다. 문제는 원칙에 갇혀 다른 사람을 만나는 사이 정작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의 시간은 줄어들거나 사라져 버리고 있었다는 것. 왜 그랬나 싶다. 그냥 만나기 싫으면 안 만나면 되는 건데. 내 감정에 조금 더 충실했어도 됐을 텐데.
본문에서 : 강박적인 사람은 도덕이 별로 관련되지 않는 상황에서도 도덕적 원칙을 고려한다. 예를 들면, "과자를 500원짜리를 사 먹느냐 아니면 1,000원짜리를 사 먹느냐"와 같은 사소한 문제를 놓고도 검약정신과 사치의 문제, 보다 심각하게는 윤리성에 대한 고민까지 나아갈 수 있다.(중략) 하지만 당위는 짐인 동시에 그들에게 예측 가능하고 의지적인 방식으로 통제감을 얻을 수 있는 통로가 되기에 그들이 쉽게 내려놓지 못한다. (p.36~37)
1-2. 거절의 두려움
관계로 인해 상처 받는 사람이 생기는 게 싫었다. 거절당하면 상처 받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과 '밥 한 번 먹자'는 약속을 지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바쁜 시간 서로 맞추는 것도 일이고, 약속 장소로 가는 것도 다 시간이다. 만나서 밥만 먹나. 근황 토크도 하다 보면 시간이 훌쩍. 사람을 만나는 게 피곤하다고 생각하고 나니, 일을 핑계로 사람을 피하기 시작했다. 차라리 뭔가를 하고 있는 시간이 편했다. 스무 살 이후는 일상을 일로 채워 넣기 바쁜 시절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상대가 거절을 당했을 때 상처 받을 거라는 생각은, 내가 거절당했을 때 상처 받을 거라는 생각을 뒤집은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거절과 상처를 두려워하는 건 사실 상대가 아니라 나 스스로였던 셈이다. 관계에 서툰 내 모습을 들킬까 두려워 상대와 거리를 두는 방식으로 나를 보호하려 했던 거다.
본문에서 : 그는[설리반Sullivan] 강박성 성격 장애자의 성장 배경이 분노와 미움으로 점철되어 있지만, 이 관계 속에서 핵심적인 갈등이 피상적으로 오가는 애정의 언어를 통해 은폐된다고 하였다. 결과적으로 이들이 성숙한 정서적, 대인관계적 기술을 습득하지 못하고, 자신의 모습이 드러날까 두려워 친밀한 관계를 회피하게 된다고 제안하였다. (p.103)
1-3. 여행? 맛있는 거? 시간 낭비, 돈 낭비야
나는 집에서 밥을 먹을 땐 책을 읽는다. 먹는다는 건 영양분을 섭취하기 위함이기 때문에 그 기능에만 충실하면 된다. 맛을 음미하는 건 시간 낭비고 에너지 낭비다. 여행도 마찬가지다. 여행은 시간과 돈을 낭비하는 행위다. 여행을 가려면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목적을 만들어야 한다. 락페스티벌에 좋아하는 밴드가 나왔다던가, 누군가의 죽기 전 마지막 소원이라던가. 쉬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냥 쉬는 걸 못한다.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면 죄책감 비슷한 걸 느끼는데, 그게 싫어서 해야 할 일을 머릿속에 떠올리거나, 다이어리를 펼쳐 일정을 정리하거나 한다. 길을 걸을 때에도 노래를 켜놓고 마디수를 센다던가 드럼 필인을 딴다던가 하고 있다. 진짜 아무것도 안 하는 방법을 모르겠다.
본문에서 : 이들이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자기 통제의 측면에서 볼 때, 자신을 이완시키는 것은 스스로를 무절제하게 방임하는 것처럼 느껴질 것이며, 쉰다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고 이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고 늘어져 있는 상태를 스스로에게 허용한 무절제함에 대해 죄책감을 느낄 것이다. (p.128)
이들이 여가생활을 즐기거나 휴가 여행을 쉽게 떠나지 못하는 이유 중의 하나도, '비생산적이고 무의미한 곳에' 돈을 '낭비하는' 것이 끔찍한 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p.42)
1-4. 하나마나 한 소리
지금까지 썼던 글들을 보면 쓸데없이 장황하거나 추상적인 경우가 많다. 구체적인 사건이나 상황은 감춰지고 두리뭉실한 느낌만 남는다. 아니면 나와는 멀리 떨어진 사건을 남 말하듯이 다룬다. 그래서 에세이나 소설은 못 쓰고 비평이나 칼럼만 간신히 써낸다. 그마저도 '나'라는 사람이 누구인지, 하고 싶은 말이 뭔지 감추려 애쓰다 보니 하나마나 한 글이 되어버리고 만다. 그런 글은 읽을 필요도 없고, 읽고 나서 남는 것도 없다. 검색만으로도 찾을 수 있는 내용을 요약했을 뿐이다. 사람을 만나도 마음에 있는 이야기를 못 하고 우스갯 소리나 하다가 돌아오곤 한다. 나에게 솔직하지 못한 사람이 남에게 솔직할 수 있을까. 솔직한 삶을 살지 못하는 사람의 글이 울림을 줄 수 있을까. 잘 쓰려면 잘 살아야 할 텐데.
본문에서 : 이들이 자기감정을 회피하는 수단은 합리화된 생각 속으로 피신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감정이나 느낌도 머리로 해결하려는 것이 이들의 특성이다. (p.119)
또 다른 방법으로, 이들은 전문 용어나 현학적이고 딱딱한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자신의 감정 세계와는 더욱 동떨어진 의사소통을 하려고 한다. (p.119)
1-5. 그때 왜 그랬지? 하, 아무래도 죽어버려야겠다
대화를 하다가 주제넘은 이야기를 했다거나,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하지 못했거나, 어리석은 소리를 했다던가. 또는 무지로 인해 혹은 미숙함으로 인해 무례를 범할 때가 있다. 그럼 집에 돌아와서 하루 종일 그 생각을 한다. 그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그렇게 생각이 증폭되다 보면 이미 그 사람과의 관계는 내 머릿속에서 돌이킬 수 없는 상태까지 가버린다. 아, 그 사람은 나를 다시는 보고 싶지 않겠지. 그때 그렇게 말 하지만 않았어도. 사과를 해도 안 받아주겠지. 그래 어쩔 수 없다. 이제 연락 안 해야지. 이런 식이다. 근데 막상 만나서 어렵게 이야기를 꺼내보면 내가 그렇게 말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거나 알고 있다 하더라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고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럼 휴 안심을 했다가도 한편으로는 혹시 상처를 받았는데 나를 배려한다고 모르는 척해주는 건 아닐까 하면서 또 건널 필요 없는 강에 뛰어든다. 아 저 사람은 내가 개선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해서 잘못을 이야기해주지 않는 걸 거야. 그냥 인생 망하라는 거지?
이쯤되면스스로도답이없다는걸알지만생각을멈출수가없다이런날은예민함이충만해져서툭건드리기만해도자책하거나날카로운말을쏟아내는데그럼다시누군가에게상처를준상황으로돌아가처음부터같은고민을반복하게된다
본문에서 : 자기 자신을 향한 과도한 양심과 도덕주의적 태도는 자신에 대한 뿌리 깊은 부적절감과 죄책감을 일으키고, 끊임없는 의심과 자기비판으로 가득 찬 반추적 사고에 빠져들게 하기도 한다. 남들은 흘려듣고 전혀 기억조차 못하는 말이지만, 자신의 말 한마디 한 마디가 옳지 못한 것은 아니었는지 반복해서 되새기며 고통스러워하기도 한다. 자신이 과거에 저질렀지만 이제는 다 지나간 실수를 괴롭게 곱씹기도 한다. (p.34)
1-6. (아? 비뚤어진 거 같은데...미치겠네)
『강박장애』와 『강박성 성격장애』가 구분되어 있어서 내용을 훑어보고 사려고 서점에 갔다. 나는 강박보단 강박성에 가깝구나 싶어 필요한 책만 골라 나왔다. 가 다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책이 넘버링된 순서대로 꽂혀있지 않았고 심지어 몇 권은 책머리 위에 가로로 놓여 있었던 게 생각났기 때문이다. 결국 가서 순서대로 정리 한 뒤에야 안심하고 책을 사 왔다. 반찬통끼리 대칭이 안 맞는다던가, 접시끼리 수평이 맞지 않는다던가 하면 맞춰주고 싶은 충동이 든다. 사람들 앞에서는 티를 안 내려고 하는데 가끔 손이 먼저 나갈 때가 있다.
초등학교에서 대체복무를 할 때는 쉬는 시간을 책상 정리하는 시간으로 다 보냈다. 애들이 소리 지르면서 책상을 다 밀치고 다니는 데 미치는 줄 알았다. 따라다니면서 계속 줄을 맞췄다. 그래 봐야 뒤돌아보면 난장판인 건 똑같았다. 내 의지보다 강한 게 아이들의 에너지였다. 그 짓을 한 달 정도 반복하다 보니 그 비뚤어짐에 적응해버렸다. 자연치유. 고백하자면 훈련소에서 다 같이 발을 맞춰 걸을 때 쾌감? 짜릿함? 같은 걸 느꼈고, 잘 정리된 관물대를 보면서 안정감을 느꼈다. 물론 안보 훈련인가 뭔가를 하다가는 시야가 좁아지고 호흡이 가빠지는 증상을 느껴서 와 군대 갔으면 큰일 날 뻔했다고 생각했지만.
1-7. 쉰 적은 없는데 왜 이렇게 바쁠까
여가와 쉼을 누릴 수 있는 '능력'이 결여되고, 인생의 즐거움과 의미를 발견하고 향유할 수 있는 삶의 여유를 잃어버린 것이 바로 일중독증(p.32~33)이라고 한다. 대학에 들어간 이후 계속 그 상황이었다. 나를 매몰차게 몰아세웠다. 노는 것, 사람을 만나는 것조차 일로 생각했으니 항상 바쁘다는 생각이 들만도 했다. 졸업하기 전에 뭔가 이뤄내야 한다는 압박 때문이었던 거 같다. 졸업을 하고 나니 숨통이 좀 트인다. 목을 조이고 있던 타이를 풀어버린 느낌이다. 이제야 곁에 있는 사람들과 푸른 하늘이 얼핏 보인다. 코 끝엔 언제나 바람이 불고 있었다. 서두르지 않아도, 땅을 보지 않아도 걸을 수 있구나 싶다. 시간이 나에게도 허락되어 있었다는 걸 지금에야 조금 느낀다. 스트레스를 받으며 또 퇴행하겠지만 일단 지금은 좀 더 놀아야겠다.
2. 한수정, 『자기애성 성격장애』, 학지사, 2016
전반적으로는 거리가 멀지만 "나는 대단하고 무결점이어야 한다"는 과대평가된 자기상을 반영(p.32)한다던가, 취약성 유형의 자기애적 성격의 경우 작은 일에도 실패자라고 느끼고 수치심에 기반을 둔 우울증을 자주 겪게 될 가능성이 높다(p.40)는 점에서는 일부 일치한다.
3. 민병배, 남기숙, 『의존성 성격장애와 회피성 성격장애』, 학지사, 2016
나의 최애 웹툰 <멀리서 보면 푸른 봄>에는 두 명의 인물이 있다. 여준과 수현. 여준은 수현이 생일날 케이크를 들고 오자 '축하하고 싶진 않아. 한 적도 없고. 안 좋은 날이니까'라고 말한다. 수현도 마찬가지로 생일이 언제냐고 묻는 여준의 질문에 '11월 십 며칠인데... 몰라'라고 말한다. '자기 생일도 모르는 사람이 어딨어요?'라고 되묻자 '그런 거 기억해서 뭐하냐'라고 재차 대답하고 말을 돌린다. 여준은 자신의 탄생이 잘못되었다고 느끼기 때문에 생일을 챙기지 않는다면, 수현은 누군가의 호의를 빚으로 느낄 만큼 큰 책임감으로 가득 차 있어 생일을 숨긴다.
나도 내 생일이 언제인지 남에게 밝히지 않았던 적이 있다. 카카오톡이나 페이스북의 생일도 모두 비공개로 돌려뒀었다. 내게 태어났다는 건 축하가 아니라 슬퍼해야 할 일이었고, 스스로 만든 '해야 할 일'에 둘러 쌓여 다른 사람을 챙길 마음의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누군가 내 생일을 챙겨준다면 거절할 명분도 없고, 시간과 에너지로 갚아야 할 빚이 하나 늘어나는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생일을 챙겨주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에게 필요한 게 뭘까, 어떤 말을 해야 할까 선물 혹은 말을 고르는 그 시간들이 있어 최소한 생일을 숨기지는 않게 되었으니 이 또한 발전이라고 할까.
의존적인 사람은 '당신만 행복하다면 나는 언제나 행복하다'라고 생각한다. '나의 행복' 그 자체를 추구하기보다는 '상대방의 행복을 통한 나의 행복'을 추구한다.(p.75)에서 쇄골을 한 대 맞아 피멍이 들었다. 이들은 작은 성 안에 있는 동안에는 편안하고, 따뜻하고, 자발적이고, 친밀하며, 매력적이기까지 하다. 그러나 안전한 성을 벗어나면 물 떠난 고기마냥 취약성을 드러낸다. 낯선 상황이나 친숙하지 않은 사람들을 접하면 이들은 정중한 듯하면서도 차갑고 무관심한 사람처럼 보인다. 때로 잠시 밝게 미소 지으며 인사를 나누고는 다른 약속을 핑계로 총총히 그 자리를 뜰지도 모른다.(p.94~95)는 표현은 좀 웃겼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근데 저는 약속이 있어서 저는 이만. 총총.
실제로 많이 해봐서 웃겼나.
내가 말을 아예 닫아버리거나, 공격적인 반응을 보일 때가 있음은 범불안장에에서도 한 번 다뤘지만 겹치는 지점이 있어 메모해둔다. 내가 그런 반응을 보였다 하더라도 당신이 싫어서는 아니다. 내 내면에서 발생한 역기능적 사고 때문이니 너그럽게 용서해주길 부탁한다. 실제로 범불안장애와 강박성 성격장애를 함께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본문에서 : 다른 사람이 이들을 인간관계에 참여하도록 만드는 시도가 이들에게는 심리 내적 평형을 와해시킬 수 있는 위험을 불러일으킴으로써 중대한 침범이 될 수 있다. 이럴 때 이들이 보이는 일반적인 반응은 무반응의 장벽을 더 높이 쌓는 것이거나 갑작스러운 분노발작을 일으키는 것이다. (p.140)
0. 번외
이 글이 사람들에게 피곤함을 주는 건 아닐까.
장애라는 표현이 섣부르거나 상처를 주는 건 아닐까.
고민을 해봤다.
지적 혹은 응원의 목소리를 전해준 분들이 있어 놓치지 않을 수 있었다.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전자는 그렇다 하더라도 글을 안 쓰는 거 보다는 낫다는 것. 그리고 바로 그런 고민 끝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문제가 나에게 있고, 그걸 벗어나기 위해 뭐라도 쓰기 시작한 것이기에 그럼에도 쓰기로 결정.
후자는 답을 내리지 못하다가 책에서 힌트를 얻었다.
의존과 자율은 항상 균형의 문제인데, 이는 원칙적으로 심리장애에도 적용할 수 있다. 보수적 신체의학 관점에서는 정상과 장애를 엄격히 구분하지만, 심리학적 견지에서는 가장 정상적인 심리 상태와 가장 비정상적인 심리 상태가 양극에 있고 그 중간 부분에는 단지 정도의 차이가 존재할 뿐인 연속적인 차원이 있는 것으로 본다. 의존성도 이와 같은 차원에 존재하는 것 같다. (p.84)
나는 이 문단을 장애와 비장애를 구분하는 기준이 임의로 설정된다는 걸 인지하고 있으며, 그 기준점이 절대적이고 유일한 기준이 아니라는 걸 인지하고 있다고 해석한다. 하나의 기준으로 모든 사람을 나누기 위함이 아니라, 양 극단이 있다고 가정한 뒤 증상에 따라 연속선상 위에 위치시키기 위한 것이다. 정도의 차이에 따라 수치화하고, 그 값에 따라 증상을 완화하기 위한 자료로 활용하기 위해 필요한 작업인 셈이다. 어떠한 증상을 장애로 명명하는 것에 대한 위험성이 있다 하더라도, 그 지점 또한 충분히 고려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전문가가 아니어 깊이 있는 논의는 불가능하지만 내가 이 책들을 읽고 삶의 균열을 느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가치가 있는 책들이었다고 생각한다. 공감하는 지점이 있다면 일독을 권한다. 전자책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