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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호 Apr 30. 2020

6. 우울증 극복하기 - 트라우마

1. 내가 나를 모른다

나의 감정을 몰라 타인을 속인 것과 같은 결과가 발생했다. 과거를 되돌릴 수 없다는 건 알지만 그 사실을 인지하게 된 순간 나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이 쏟아졌다. 내가 누군가를 기만했다니. 내가 그렇게 비난해 마지않았던 사람이 바로 나라니. 나라는 사람의 감정 하나도 모르면서 누구를 비판하고 무엇을 평가한 건가. 지금까지 내가 해왔던 말과 글, 나의 삶이 송두리째 흔들렸다. 그런 생각이 반복되고 결론은 죽어야 한다는 것으로 귀결됐다. 하지만 죽음을 용납하려면 내 과거를 설명할 수 있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그건 도피에 불과하니깐. 


나는 왜 내 감정을 모르지? 

나는 왜 내가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모르지? 

왜 남의 감정에 휘둘리지? 

내 이야기를 남에게 하지 못하지? 

왜 혼자 있는 시간이 더 편한 거지? 

그러면서도 다른 사람에게 기대고 싶은 거지? 

혼자 있으면 때로는 왜 외로운 거지?

내가 우울하다는 감정마저 억압했던 거지?

내가 알고 있는 나는 누구고 내가 원하는 나는 누구지?


찾아야 했다. 지금까지 나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선 세상을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세상을 전부 이해한다는 것도 불가능했지만, 나의 위치를 모른 상태로 세상을 이해해봐야 쓸모없는 거였다. 지도만 있으면 뭐하나. 내가 어디 있는지를 모르는데. 


어쩔 수 없다. 지금까지 내가 잘못했다는 걸 인정하자. 상처 준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더 나은 삶을 살자. 그들에게 상처 주었다는 이유로 내 상처를 붙잡고 또 다른 사람에게 상처 줄 수는 없다. 극복하자. 그러려면 나를 찾아야 한다. 알아야 한다. 나를 다시 살피기 시작했다. 기만하지 않고, 회피하지 않고, 외면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부끄럽거나 잘못이 있더라도 회피하지 않고. 


2. 이상주의, 이분법적 사고, 완벽주의

내가 생각하는 이상은 서로가 서로를 억압하지 않는 세상이었다.

아버지의 폭력이 근원이었을 것이고

그 아버지를 힘들게 하는 자본의 억압이 덧붙었을 거다.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교실 내의 폭력과

학생들 사이의 위계 같은 것. 이 모든 것들에서 자유롭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과 이상의 괴리는 나를 괴롭게 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교실에 앉아 옆 자리 학우들과 경쟁자가 되어야 했으며

자율이 아닌 자율학습을 해야 했으며 강자 앞에서 약하고 약자 앞에서 강한 모습을 보였다


내가 이상적으로 떠올리는 나의 모습과 실제의 나는 너무 달랐다.

 

그럴수록 나는 나의 모든 감정과 행동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하고, 

'그들'과는 다른 삶을 살아야 한다고 끝없이 채찍질했다.


그래야만 '그들'을 비판할 자격이 있다고 여겼다.


하지만 나도 별 다를 거 없는 한 명의 사람이었다.

실수투성이에 상처 주는.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평범한 인간

 

이 지점이 내 우울의 핵심이었다.


3. 가족

나는 부친은 일이 끝나면 붕어빵이나 생과자라도 사들고 오는 분이었다. 상장을 받으면 용돈을 주고, 월급날에는 다 같이 나가 짜장면이라도 함께 먹었다. 하지만 술을 드시고 오시면 폭력적으로 변했다. 술을 마시고 오는 날은 연락이 되지 않았다. 어머니와 나는 아버지가 제시간에 들어오지 않으면 화분이나 칼처럼 위험한 물건들을 숨겼다. 손을 덜덜 떨면서. 밤은 깊고, 2층이었던 현관문 밖으로 쿵쿵거리는 발소리가 들리면 심장이 쿵쿵 떨렸다.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지옥은 시작되었다. 온갖 집기가 날아다니고 폭력과 폭언 사이에서 할 수 있는 건 무기력한 존재를 온몸으로 느끼는 것뿐이었다.


불안은 일상이었다. 나는 어머니를 양육자가 아닌 보호 대상으로 여겼던 것 같다. 결심했다. 나는 술을 절대 안 먹어야지. 집에는 무조건 빨리 들어가는 사람이 되어야지. 부친의 돈을 받지 않아야지. 경제적으로 독립해서 어머니와 함께 살아야지. 이 지옥에서 최대한 빨리 빠져나가야지. 


동시에 돈의 노예가 되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다. 부모님은 내 앞에서 항상 돈이 없다는 이야기를 했다. 부친이 자존감이 낮은 건 용돈이 적어서라고 했다. 돈이라는 건 사람을 억압하는구나 생각했다. 엄마는 찢어진 옷을 꿰매어 입었고 집에서도 항상 부업을 했다. 나는 그 일을 돕는 걸로 놀이를 대신했다. 그 돈들은 내가 먹고 입고 돌아다니는 데 쓰이는 돈이 되었다. 내가 살아있지 않다면 돈이 덜 필요할 텐데. 그럼 부모님이 싸우지 않을 텐데. 조금 더 행복할 텐데. 등록금도 안 들고 용돈도 없어도 될 텐데. 그런 생각에 시달렸다. 


큰 소리가 나거나 화를 내면 나는 위축되었고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내 의견을 내지 못했다. 친구들이 하자는 대로 했다. 그러다 보니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뭔지 점점 더 모르게 되었다. 일상은 불만에 싸였고 친구들과 있어도 편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자습을 하기 싫다고 부모님께 말했다. 음악을 하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일단 대학에 가라고 했다. 아무도 내 외로움을 이해하지 못하는구나. 생각했다. 그리고 하기 싫은 공부를 매일 반복했다. 교사들은 강압적이었고 교실은 남자들의 위계로 우글거렸다. 특별한 사건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그 분위기 속에서 나는 숨이 막혔다.


그러다 고등학교 때 병이 생겼다. 면역질환. 내 몸 하나도 내가 통제하지 못하는구나 싶었다. 병원비가 수백만 원이 들었다. 논술 학원에 쓰는 돈과 대학 입학 수수료에도 몇 백만 원이 들었다. 내가 이만큼의 가치가 있는 사람인가 끊임없이 의심했다. 순간순간 즐거웠던 순간이 없었던 건 아니다. 그런 순간마다 내가 행복해도 되나 하는 질문이 자꾸 들었다. 집에서 나갔다 올 때마다 죄를 짓는 거 같았다. 끝없이 눈치가 보였다. 나의 생존은 비용이었다. 그 와중에도 아버지의 음주는 계속되었다. 이제는 나이를 먹어 물리적인 폭력에 시달릴 정도는 아니었지만, 전 날 새벽까지 시달려놓고 아무 일 없는 듯 웃고 일상을 살아가는 내가 이상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내가 인간이 맞나. 인간을 신뢰할 수 있나. 사랑받을 수 있는 사람인가. 사랑받지 못하면서 사랑할 수 있는 건가. 


4.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

죽고 싶다는 건

살고 싶지 않다는 건


지금처럼 살고 싶지 않다는 거였다


이제는 안 그러고 싶다

나도 관계에서 행복을 찾고 싶다


사랑하고 싶고 사랑받고 싶다

사람을 믿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참고자료 : https://wonderfulmind.co.kr/how-do-people-with-depression-see-themselv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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