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환자들에게 아래와 같은 것들을 조언하곤 합니다.
1. 산책
2. 운동
3. 친구들을 만나 이야기하기
4. 식사 챙기기
하지만 규칙적으로 생활하고, 운동을 하고, 세 끼를 잘 챙겨 먹으면서도 우울증을 겪는 사람들이 분명 있습니다.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저 또한 우울증으로 항우울제와 신경안정제를 처방받은 후 꾸준히 산책을 가고, 일부러 친구들을 자주 만나보기도 했지만 우울증이 개선된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습니다. 효과가 전혀 없지는 않았습니다. 저에게는 산책이 제법 도움이 되었거든요. 햇빛을 쐬고 바람을 맞는 동안에는 조금의 평온을 찾기도 했습니다.
1~4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모두 행동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겁니다. 산책을 하는 동안에도 부정적인 생각이 꼬리를 문다면 우울증은 나아지지 않습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산책을 하다가도 누군가 나를 비난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반복되곤 했습니다. 친구들을 만나 이야기해도 이 친구들이 내 마음을 이해해준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 오히려 더 힘들었습니다. 괜히 시간과 돈만 낭비한 것 같고 집에 와서는 더 외롭다고 느꼈죠.
곰곰이 생각해봤습니다. 전문가들이 왜 산책, 운동, 지인과의 교류, 밥 잘 챙겨 먹기를 권유하는 걸까 하고요. 그러다 결론이 닿은 건 모두 순간에 최선을 다 해야 한다는 거였습니다. 저에게 이동은 목적지로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 과정은 모두 생략되었고 최대한 빠르고 효율적으로 도착해야 하는 임무 같은 거였죠. 건너는 신호등, 가는 길까지 정해져 있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산책은 다릅니다. 목적지도 없고 정해진 시간도 없죠. 그 순간에 충실하면 됩니다. 햇빛을 느끼고, 나뭇잎을 쳐다보고, 지나가는 강아지와 고양이를 바라보기도 하는 겁니다. 과거의 나와 미래의 나를 잠시 내려놓고 그 순간에 집중하는 겁니다. 내 발 끝의 감각과 눈에 보이는 것, 코 끝에 흔들리는 바람. 그런 것들에 집중하는 것이죠.
밥을 먹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밥을 먹는 건 자동차에 기름을 넣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굴러가려면 에너지를 공급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밥을 먹는 시간도 아까워서 책을 보거나 신문을 보곤 했습니다. 이제는 일부러 책과 핸드폰을 내려놓습니다. 제가 먹는 밥과 반찬을 음미하면서 먹습니다. 밥알이 입 안에서 흩어지는 느낌, 각종 나물의 푸릇함과 신선함, 나물이 아니더라도 조미된 음식들의 맛까지도 그대로 느끼려 합니다. 밥을 먹는 순간에는 밥을 먹는 것에 집중하는 겁니다. 내가 밥을 먹고 있구나. 맛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하고 말입니다.
그 시간들을 아까워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 시간들이야말로 제가 살아있다는 걸 느끼게 해 준다는 걸 조금씩 깨달아가고 있습니다.
오늘은 산책 30분을 꼭 해야지
오늘은 운동을 꼭 해야지
스스로에게 너무 엄격해지지 않으려 합니다. 저는 심지어 '우울증을 빨리 극복해야지'라는 강박이 생겨서 '왜 이렇게 안 낫지?' 하며 더 우울해질 뻔했습니다. 아이러니하죠. 그래서 우울증인 걸 겁니다. 우스갯소리로 그러더군요. 우울증에 걸린 사람은 헬스장을 등록하면 안 된다고. 왜 나면 '나는 돈을 내고도 헬스장에 안 갔어! 나는 쓰레기야!' 하면서 더 우울해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요.
내려놓읍시다. 조금 더 편하게 생각합시다.
전문가들이 제시해준 '행동'을 통해
우리의 '마음'을 변화시켜 보록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