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증상이 아니라 원인을 찾아야 한다
10여 년간 건선을 앓고 있다. 면역질환인데 아토피처럼 피부에 증상이 나타난다. 심한 경우에는 관절이나 심혈관계에도 전이된다. 한의원과 일반 병원을 수 없이 돌았고, 가능한 치료 방법은 거의 다 시도해봤다. 지금은 대학병원에 다니고 있지만 완치에 대한 기대는 사실상 버렸다. 그리고 그 사이에 깨달은 건 증상을 완화시키는 대증요법으로는 절대 병을 치료할 수 없다는 거다.
우울증도 마찬가지다. 나에게 우울감을 가져오는 핵심 고리를 끊어내지 않은 채, 항우울제를 먹는 것만으로는 우울증이 극복될 리 없다. 그건 맥주를 계속 따르면서 넘치는 거품을 마셔대는 것과 같다. 거품을 마시면 당장 잔 밖으로 넘치지 않겠지만 그 잔은 끝없이 요동친다. 내면이 흔들리는데 넘치지 않는다고 그걸 '고요'라고 말할 수 있을까. 쉼 없이 흘러넘치는 우울을 약으로 흡수해봐야 현상유지에 머물 뿐이다. 지금까지는 바쁜 일상으로 우울을 덮었다면 이제는 약으로 눌러둘 뿐이다. 하지만 난 더 이상 그런 삶을 원하지 않는다. 스스로를 기만하지 않기로 했다. 우울을 직면하기로 했다.
병원에 가지 말라는 말로 오해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아프면 병원에 가야 한다. 증상 때문에 일상에 어려움이 있다면 그 증상을 먼저 완화하는 게 순서다. 그래야 나를 돌아볼 여유가 생긴다. 특히나 우울이 항상 함께했다면(그 사실은 본인이 가장 잘 알 거다) 그건 내가 세상이나 타인, 나 스스로를 인식하는 방법에 문제가 있을 수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그리고 그 사실은 본인이 외면하고 억압해온 상처나 트라우마에서 기인할지 모른다.
2. 억압된 것은 반드시 귀환한다 -프로이트
원인이 뭘까. 취직이 안 되는 거? 코로나 때문에 모든 일정이 미뤄진 거?
그런 건 아닐 거다. 근원을 찾아야 한다.
예전부터 썼던 일기장을 펼쳤다. 오래전부터 우울은 덕지덕지 묻어 있었지만 애써 그 사실을 부정하고 있음이 보였다. 태연한 척, 기쁜 척, 즐거운 척. 그 순간엔 그게 사실이었겠지만 지금 와서 다시 들여본 나의 글은 메마른 눈물로 꾹꾹 눌러 쓰여 있었다.
인정해야 했다. 내가 어느 지점부터 고장 난 인간이 됐는지.
프로이트가 말했듯 억압된 것은 반드시 귀환한다.
사실을 부정하고 감정을 억압해봐야 언젠가 터질 일을 유예하고 있었던 것에 불과했다.
나의 인간관계와 생활, 습관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그 첫 지점을 찾아야 한다.
강박, 완벽주의, 대인관계에서의 불안, 기피, 회피. 어디서부터 꼬인 걸까.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