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광호 May 11. 2020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다 - 완벽주의

억압된 과거가 오늘의 나를 흔들지 못하도록

초등학생 때 저는 화장실에 가지 않았습니다. 저는 기억하지 못했지만 제 친구가 알려주더군요. 화장실 가는 걸 한 번도 못 봤다고. 생각해보니 저는 배변활동을 하는 걸 보여주는 게 수치스럽다고 여겼던 것 같습니다. 부득이하게 참을 수 없는 경우에는 수업시간 중간에 나가서 아무도 없을 때 화장실에 갔습니다.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화장실에 가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누군가 지켜보고 있는 게 불편했습니다. 수업시간에 손을 들고 화장실에 다녀온다고 말하는 것도 어려워서 쉬는 시간까지 꾹 참다 가곤 했습니다. 


저는 어머니를 양육자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물리적으로든 경제적으로든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 생각했습니다. 최대한 빨리 경제적 독립을 이뤄서 어머니를 가정으로부터 해방시켜야겠다, 차라리 이혼을 하고 따로 사는 게 낫겠다고도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돈을 부정적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일반적인 직업을 갖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면서도 큰돈을 벌 수 있는 직업이 뭐가 있을까 하다가 작가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해 국문학과에 갔습니다. 전 과목 A+를 받아 장학금을 받고 졸업하기 전 등단을 해서 상금을 받고 큰돈을 받아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쉬지 말고 뭐라도 하라고, 생각을 하라고, 행동하라고 스스로를 계속 채찍질했습니다.


책을 봐도 전 시리즈를 사서 다 보려고 했고, 참고자료도 찾을 수 있는 자료는 다 읽어보고, 각주 하나하나까지 다 확인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완벽하지 않으면 시작하지도 못했고, 사소한 것에 신경 쓰느라 중요한 내용에 투자할 시간이 줄어드는 등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럴수록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악순환의 반복이었습니다. 자기 효능감은 점점 줄어들었고 완벽주의가 스스로를 갉아먹기 시작했습니다. 애초에 내적 동기가 실현 불가능한 목표를 이루기 위한, 트라우마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심지어 우울증이 왔다는 걸 깨달은 다음에는


"우울증에서 최대한 빨리 벗어나야지"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 뭐지?"

"책에 산책을 하라고 써있는데 산책을 못했어. 나는 쓰레기야. 우을증에서 벗어나지 못 할거야"


같이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이제는 조금 내려놓기로 했습니다. 

완벽주의의 문제는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과정에서 에너지 소비가 너무 크다는 겁니다.

그럴수록 하려던 일은 더 진행되지 않습니다. 스스로에 대한 기대치가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내 잘못이 아닌 것, 내가 할 수 없었던 것, 역기능적 사고에서 비롯된 것들을 구분하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걸 해야겠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다 -내사(내 탓)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