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압된 과거가 오늘의 나를 흔들지 못하도록
저는 문제 상황이 생기면 제가 뭘 잘못했는지를 먼저 고민합니다. 제가 어떻게 변화해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같은 문제가 반복되지 않을지 고민합니다. 문제는 이게 너무 극단적이라는 겁니다. 남한테는 착한 사람으로 보일 수 있겠지만 스스로에게는 무척이나 가혹합니다. 다른 사람의 실수나 잘못은 '그럴 수 있다'라고 생각하지만 제 잘못은 과잉 해석합니다. 타인의 비판에도 취약합니다. 자그마한 말에도 '내가 뭘 잘못했지?'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문제 상황에서 반복적으로 제 탓을 하게 되는 것. 왜 이러한 패턴이 생긴 걸까요.
부모님과의 관계에서 생겨난 역기능이 확장, 고착화된 것 같습니다. 저의 아버지는 술을 마시면 폭력성을 띄는 사람이었습니다. (지금은 아닙니다.) 어머니와 저는 항상 불안에 떨었습니다. 유리가 깨지고, 브라운관 티비가 데굴데굴 굴러다니곤 했습니다. 아버지는 제 머리를 주먹으로 밀며 '자만이 뭔지 아냐, 자만하지 말라'라고 말했습니다. 아, 내가 뭔가 잘못했구나. 그래서 맞는구나.라고 생각했고 친구와의 관계에서도, 사회생활에서도 문제가 생기면 내가 잘못한 걸 먼저 찾게 됐습니다. 저 사람이 원하는 걸 알아내서 맞춰줘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깐요.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레이더를 항상 켜놓고 다니다 보니, 소모되는 에너지도 상당했고 스트레스도 많았습니다. 되도록 갈등을 피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사람이 살면서 어떻게 갈등 없는 삶을 살겠습니까. 방법이 하나 있긴 합니다. 사람을 만나지 않는 겁니다. 혼자 있으면 갈등이 생길 확률도 줄어들겠죠. 내 탓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받을 일도 없을 거고요. 그게 맞다고 생각하고 살았습니다. 처음에는 엄청 살갑게 굴다가 친해지고 나니 거리를 두는 거 같아서 아쉽다, 왜 연락 한 번 안 하냐는 이야기도 자주 들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러는 너도 연락 안 했잖아'라는 식으로 핀잔을 주고 더 거리를 뒀죠.
내 탓도 남 탓도 너무 극단적이면 좋지 않습니다. 네 탓, 남 탓 말고 상황 탓도 있겠죠. 그것들을 객관화해서 내가 고쳐야 할 점은 고치고, 내 문제가 아닌 남의 문제와 상황의 문제에 휘둘리지 않는 것. 이제는 남 탓 상황 탓도 좀 해보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