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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호 May 11. 2020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다 - 돈

억압된 과거가 오늘의 나를 흔들지 못하도록

'삼촌'이라 부르던 아버지 친구분이 한 분 계셨습니다. 가까운 사람끼리 '이모' , '삼촌'이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몰랐던 어린 시절엔 진짜 친척인 줄 알았습니다. 그 정도로 자주 놀러 가고, 놀러 오기도 했습니다. 가족끼리도 모두 친했죠. 그런데 어느 날인가부터 삼촌이 오늘 날도, 우리가 삼촌 집에 가는 날도 뜸해졌습니다. 부모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어보니 아버지께서 돈을 빌려줬다네요. 상황이 여의치 않아져서 돈을 받아야 했는데 아버지는 그 상황이 쉽지 않으셨던 거 같습니다. 그 일로 아버지와 어머니는 의견 다툼이 있었고 그 이후로 '삼촌'과는 영영 보지 못하게 됐습니다. 돈은 아마 받았던 거 같습니다.


하루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다투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초등학생 때였던 거 같습니다. 이사를 가면서 계약서를 잘못 써서 천만 원이라는 돈을 손해 보게 된 거였습니다. 융자를 포함하냐 아니냐에서 실수가 있었던 거 같습니다. 부모님께서는 어쩔 수 없다. 더 벌면 되지 않겠냐는 식으로 마무리를 지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어린 나이에 천만 원이라는 돈은 굉장히 큰돈이었죠. 언성을 높이는 모습에 저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돈이라는 건 사람을 이렇게 만드는구나. 돈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생겼던 거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돈을 열심히 버는 사람들, 돈이 많은 사람들에게 부적절감을 느끼며 살았습니다. 저 사람은 별생각 없이 돈만 좇는 사람이다. 다른 사람들의 고통을 외면하고 있을 거다. 사회적으로 좋지 않은 일을 저질렀을 거다. 하는 식으로 말이죠. 


대학 초에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용돈도 받았지만 항상 돈은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덜 쓰고 덜 버는 편을 택했습니다. 학교에서는 최대한 밥을 먹지 않고 집에 가서 먹었습니다. 도시락을 싸들고 다니면서 지하철에서 먹기도 했습니다. 밥을 먹자는 약속이 생길까 봐 사람들과의 대화를 슬슬 피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사람들을 회피하게 되고 돈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생겨났던 거죠. 


지금의 저는 통장 잔고가 줄어들면 조바심이 납니다. 모두가 그렇겠지만 저는 사람을 피하는 방식으로 나타납니다. 약속을 피하고, 밖으로 나가지 않습니다. 돈이 없으면 없다고 이야기하면 될 텐데 그게 너무나 큰 짐으로 느껴집니다. 밥 한 번 얻어먹는 거, 술 한 번 얻어먹는 거에 지나치게 예민하게 굽니다. 그게 빚으로 느껴집니다. 제가 돈에 예민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돈을 쓰게 하는 건 민폐라고 생각하는 거죠. 그러다 보니 관계의 진전이 어렵습니다. 상대방 입장에서는 거리를 두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겠죠. 아 저 사람은 나를 친구로 생각하지 않는구나 하고요.


머리로는 압니다. 한 번쯤 기대도 괜찮다는 걸요.

이제는 나아질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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