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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호 May 17. 2020

감정일기를 쓰고 있습니다

하루에도 수십 번 감정이 요동칩니다. 상승과 하강을 반복하는 롤러코스터처럼 말이죠. 그럴 때면 누구에게도 이런 내 감정을 이해받을 수 없을 것만 같고, 우울에서 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빠져듭니다. 이해받을 수 없기 때문에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고, 말할 수 없기 때문에 내 감정이 내 감정 속으로 파고드는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그래서 저는 감정일기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감정일기 예시


1. 사건 : (명사) 사회적으로 문제를 일으키거나 주목을 받을 만한 뜻밖의 일.

우울감이나 불안을 유발한 사건을 적습니다. 그날 스스로에게 문제적으로 느껴졌던 일을 적는 겁니다. 예를 들면 '누구에게 카톡을 보냈는데 답장이 오지 않았다'는 식입니다. 주관적인 감정이나 생각은 최대한 배제한 채 사건을 서술합니다.


2. 생각 : (명사)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하여 상상해 봄. 또는 그런 상상.

그 당시에 들었던 생각을 적습니다. 저는 카톡이 오지 않았을 때 '이 사람이 나를 일부러 무시하는 건지도 모른다', '내가 잘못한 일이 있어서 연락을 일부러 안 하는 건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3. 감정 : (명사) 어떤 현상이나 일에 대하여 일어나는 마음이나 느끼는 기분.

생각과 함께 느꼈던 감정을 적습니다. 머리가 아니라 가슴이 느낀 것을 적는 겁니다. 생각이나 감정을 적을 때 중요한 건 감정을 회피하거나 억압해서는 안 된다는 점입니다. 만약 누군가를 때리고 싶었다거나 죽이고 싶었다 해도 그대로 적는 게 중요합니다. 감정은 자연스러운 겁니다. 우리의 감정은 모두 옳습니다. 그 감정을 행동으로만 옮기지 않는다면 어떤 파괴적인 생각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4. 행동 : (명사) 내적, 또는 외적 자극에 대한 생물체의 반응을 통틀어 이르는 말.

사건 발생 후 어떻게 대응, 반응했는지를 적습니다. 무반응했다면 무반응했다고 적습니다. 무시 또한 반응의 일부입니다.


5. 결과 : (명사) 어떤 원인으로 결말이 생김. 또는 그런 결말의 상태.

그래서 어떻게 되었는가? 를 적습니다. 상대방의 반응이나 나의 변화, 나의 생각, 감정 등을 총체적으로 고려합니다.


감정일기를 쓰며 제 생각이 과도한 걱정이나 이분법적 사고에 가까울 때가 많다는 걸 조금씩 인지하고 있습니다. 또한 감정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내가 별 거 아닌 일에 걱정하고 불안해하네? 걱정하지 말아야지', '다른 사람이면 화내지 않을 일에 화를 내고 있네. 자존감이 낮은 가봐. 화를 내지 않아야지'라고 생각하며 제 감정이나 생각을 억압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불안해하고 있구나. 불안한 감정은 일단 받아들이자. 하지만 그 사람은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으니 기다려보자. 당장 해결할 수 없는 일에 너무 빠져있지 말자'라고 생각합니다.  


저녁에 혹은 며칠 후에 감정 일기를 다시 보면 대부분의 일은 대수롭지 않은 사소한, 평범한, 누구나 할 수 있는, 문제가 있더라도 실수에 불과한 일들이 대부분입니다. 스스로의 사고가 너무 한쪽으로 치우쳐져 있을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혹 정말로 잘못을 했더라도 당시의 감정을 받아들이고, 잘 못하 사람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해결하면 됩니다.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의 결정에 책임을 지면 됩니다. 물론 일기를 쓴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좋아지지는 않습니다. 현실이 변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나의 말고 행동에 다른 사람들이 무조건 부정적으로 반응하지는 않는다는 걸, 내 생각보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무관심하거나 혹은 호의적으로 대한다는 걸 깨닫고 나면 삶이 조금씩 바뀝니다. 저도 용기를 내서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연락을 해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반갑게 인사를 받아줍니다. 사람들이 나쁘고 나를 이해해주지 못했던 게 아니라, 내가 그 사람들을 나쁘다고 생각하고, 이해해주지 못할 사람이라고 여겨 마음을 열지 못했던 겁니다. 


물론 모든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 수도 없고, 적절한 조언과 지지를 해주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단 한 사람이라도 우리의 아픔을 이해해 줄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그 사람을 찾기 위해선 내가 스스로에게 먼저 손 내밀 수 있어야 합니다. 바뀌지 않을 것 같고 우울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은 감정. 저도 잘 압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도 일기를 씁니다. 이 우울에서 벗어나고 말 겁니다. 


* 단어 뜻풀이 출처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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