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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호 Sep 09. 2020

머물 수 없는 사람들

코로나가 지나간다 해도

전 국민이 하나의 얼음판 위에 서있다. 단단히 얼었다면 차라리 좋았으려만. 조금씩 녹아내리는 표면에 두 발은 미끌거리고, 가만히 서있을 때조차 힘이 들어간다. 한 명이 미끄러지자 주변 사람들이 와르르 넘어진다.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자고 호소해보지만 쉽지만은 않다. 누군가는 얼음 위에서도 스케이트를 타고 앞으로 쌩쌩 나아갈 힘이 있는 반면 서 있을 체력조차 없어 쓰러지고 마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있기를 포기한다면 얼음판이 통째로 깨어지거나, 모두가 미끄러져 물에 빠지고 말 거라는 건 자명하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모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코로나라는 얼음판 위에서 말이다.


코로나가 한시라도 빨리 종식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한결같다. 모두가 집에 머무르면 빠르고 확실하게 전염을 막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가만히 머문다는 것의 의미는 모두에게 다를 수밖에 없다. 재택근무가 가능한 직종에 종사하며, 재택근무가 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는 공간이 있는 사람들은 ‘집콕’ 이 가능하다. 물론 오랜 시간 외출을 못하고, 사람을 만나지 못함으로써 생활의 불편과 신체적, 정신적 건강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럼에도 머무름이 불가능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현장에서 업무를 해야 하는 사람들은 다르다. 집에 머무르라는 말은 일을 하지 말라는 것이고, 수익 없이 버텨야 함을 의미한다. 코로나의 종식을 위해서라면 일정 수준의 희생을 감수할 수도 있다. 하지만 버틸 수 있는 체력이 얼마나 되는가는 사회마다, 사람마다 다르다. 반년이 넘게 이어지고 있는 유행에 계속 머무를 수만은 없다. 감염의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일터에 나가야만 하는 사람들이 있다. 문을 닫으면 소득 없이 월세만 내야 하는 자영업자들의 신세도 마찬가지다. 비축해놓은 돈으로 버틸 수 있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우리사회의 대부분의 자영업자들은 그렇지 못하다.


제자리에 머물기 위해 열심히 움직여야만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땅에선 노동의 대가인 임금보다 부동산 가격이 더 빨리 오른다. 집을 얻기 위해서, 가게를 유지하기 위해서, 월세, 전세금을 마련하기 위해서라도 일을 해야 한다. 여유 없이 달려보아도 앞으로 나아가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계속해서 뒤로 미끄러지는 러닝머신 위에 올라가있는 느낌이다. 힘들게 뛰어보지만 제자리를 유지하는 것조차 힘들다.


코로나 이전에 생긴 상처들이 하나 둘 터지기 시작한 것이다. 코로나가 만든 게 아니다. 우리 사회는 이전부터 곪아있었다. 최저임금 때문에 경제가 휘청거린다는 주장에 논쟁을 거치는 사이에도 월세는 계속 올랐다. 임금 인상을 바라는 노동자들의 주장은 이기주의로 치부되었지만, 월세를 요구하는 건물주들의 요구는 정당한 사유재산권이라 여겨졌다. 자영업자든, 임금노동자든 노동을 할수록 가난해지는 비정상적인 구조는 변하지 않았고, 돈만이 돈을 벌 수 있다는 인식이 강해졌다. 그렇게 투기는 투자라는 말로 포장되고, 장려되었다.


코로나가 지나가길 바라는 염원에는 함께하지만, 모든 게 나아질 거라는 희망은 섣부를지 모른다. 오늘 머물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사람들은 새로운 위기 앞에서도 가장 먼저 바람을 맞게 될 것이다. 위기가 기회라는 말은 바람이 불었을 때 잠시 몸을 피할 안전한 거처가 있는 사람들에게나 적용되는 말이다. 소수의 성공 신화와 위기 극복 사례를 투약하며 버텨온 사회에 번아웃이 멀지 않았다. 위기는 모습을 달리 해 다시 찾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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