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0원과 8,100원 사이
10분, 2,600원
카카오톡 알림이 왔다. 온라인 중고 서점에 올려둔 책이 판매되었다는 내용이었다. 발송요청을 확인하고 편의점 택배를 선택했다. 예약을 하면 기사님께서 직접 집으로 방문해주시지만 일정이 일정치 않아 편의점 택배를 주로 이용한다. 보내는 방법도 간단하다. 택배 발송이 가능한 편의점에서 무게를 측정하고 운송장을 출력해 책에 부착하기만 하면 된다. 기업과 계약이 되어 있는 택배를 이용하기 때문에 운임도 저렴하다. 지금까지는 무게나 거리에 관계없이 같은 운임인 2,600원이 매겨졌다. 집에서 편의점까지 3분. 택배를 접수하는데 3분. 합쳐서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이틀 후에 발송 완료되었다는 친절한 알림까지 왔다.
60분, 8,100원
안 쓰는 기타 케이스 하나를 판매했다. 거리가 멀어 직거래는 불가능했다. 기타 박스가 있어 완충제로 감싸 박스 포장을 했다. 길이를 재보니 120cm가 넘었다. 1M를 넘으면 우체국 택배나 일반 택배로는 접수가 어려웠다.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편의점 택배로 보내면 문제없이 도착한다고 했다.
편의점 택배로 보낼까?
천으로 된 케이스라 무겁지도 않고, 포장도 잘해서 파손 위험도 없었다. 집에서 5분 거리도 안 되는 곳에서 접수할 수 있고, 배송비도 5천 원 안팎일 것이다. 하지만 발송 가능한 무게와 크기, 폭을 제한해 놓은 건 최소한 지켜야 할 규칙이다. 시스템적으로 불가하거나, 노동자에게 과도한 업무가 주어지지 않도록 최소한의 장치를 만들어 놓았을 것이다. 나 편하자고 다른 사람의 노동에 부당한 요구를 해서는 안 됐다.
화물을 전문으로 하는 택배 회사가 있었다. 개인도 발송이 가능한지 유선상으로 문의드리니 영업소로 직접 방문해 접수하는 것만 가능하며, 무거운 화물이랑 같이 배송되기 때문에 완충재를 3cm 이상 둘러야 한다고 했다. 영업소는 집에서 도보로 25분 정도 거리에 있었다. 무겁지는 않았지만 잡을 곳이 마땅치 않아 박스가 자꾸만 흘러내렸다. 길을 가다 말고 고쳐 잡기를 반복했다. 마트 및 물류업 노동자들이 박스에 구멍 하나만 내달라는 요구는 요구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일이었다. 사무직 직군에게 마우스 없이 터치패드만으로 일하라는 것과 비슷한 불편함이랄까. 일해야 하니 마우스 달라는 것과 마찬가지다.
영업소는 버스회사 종점 바로 옆에 있었다. 지나다니는 사람은 거의 없고, 회차하는 버스와 화물을 나르는 지게차들만 보였다. 사무실에 들어가 택배를 접수했다. 주소를 불러주고, 종이에도 적었다. 안내사항을 듣고 운송장을 받아 택배 상자에 운송장을 부착했다. 가져온 물건도 직접 쌓아 놓았다. 왕복 40여분에 접수시간 5분. 택배를 포장하는 시간까지 하면 택배 하나를 보내는 데 한 시간 가량이 걸린 셈이다. 비용은 8,100원이 나왔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기업이 중계를 해주는 서비스가 훨씬 편리하고 가격도 저렴했다. 직접 보내는 택배는 시간도 오래 걸리고, 영업소까지 방문해야 하는 번거로움도 있었다. 비용도 3배 가까이 들었다. 물건의 크기와 배송 지역의 차이를 고려해도 차이는 분명 있었다. 택배사의 입장에서도 기업과의 계약이 안정적인 수익을 가져올 수 있기에 저렴한 가격을 책정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택배를 분류하고 배송하는 노동자의 입장에서는 똑같은 택배다. 택배 가격이 얼마가 책정되었든 똑같이 분류하고 배송해야 한다.
더 많은 택배를 배송할 수 있으니 노동자에게도 더 많은 이윤이 돌아가지 않냐고 반문할 수 있을 것이다. 일정 수준까지는 맞는 말이다. 수요가 있어야 회사가 유지되고 이윤이 있어야 노동자들에게도 임금을 줄 수 있다. 하지만 인간에게는 한계가 있다. 택배는 물리적으로 허용되는 수치까지 계속 쌓을 수 있지만, 인간의 신체적, 정신적 기능에는 한계가 있다. 얼마간은 한계점을 넘어도 버틸 수 있다. 하지만 누적된 피로는 노동자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다. 내가 하지 않으면 동료들이 더 힘들 거라는 사실에, 해고당할 수 있다는 압박에 그럼에도 꾸역꾸역 물량을 받는다. 일을 하는 이유가 돈이 전부는 아니다.
그럼에도 아래와 같은 댓글을 다는 사람들이 있다. 걱정하는 듯하면서 모든 일을 개인의 탓으로 돌린다. 갈 길이 멀다.
며칠 전 택배기사 사망 사건이 또다시 발생했다. 올해만 10번째라고 한다. 택배 물량은 점점 더 많아지지만 택배 가격은 그대로다. 소비자는 저렴한 가격과 편리한 서비스를 찾게 된다. 하지만 일 하다 죽는 사람이 생기는 사회가 유지되어서는 안 된다. 택배는 보내기도, 받기도 불편해야 한다. 하루 만에 발송되는 택배는 극히 제한적인 분야를 제외하고는 권장되어서는 안 된다. 노동자들의 근무 환경이 우선적으로 개선되어야 하고, 시스템적으로 물량을 충분히 소화할 수 있을 때에나 시행해야 할 일이다. 택배 노동자가 과로사하는 사실을 지우고 새벽 배송, 당일배송을 광고하는 사회는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
택배는 좀 더 느려져도 된다. 좀 더 비싸져도 된다. 아니 그래야 한다. 내가 받은 저렴하고 빠른 택배 서비스가 누군가의 과도한 노동으로 이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 참고기사 : 김수현, <"너무 힘들다"…숨진 택배기사가 새벽 4시에 남긴 문자>, 2020.10.19, 한국경제, URL : https://www.hankyung.com/life/article/2020101925457, 최종 검색일 : 2020.1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