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손보험 가입을 위해서는 최근 5년간의 진료기록을 보험사에 알려야 할 고지 의무가 있으며, 국민건강보험관리공단을 통해 진료기록을 발급받을 수 있었다. 준비는 끝났다. 이제는 보험사에 정신과 진료 기록이 있음을 밝히고 실손 보험 가입을 요청해보자.
A사
‘보험다모아’ 페이지를 통해 연결된 홈페이지에 보험 가입 문의를 남기자 연락이 왔다. 실손 보험 가입을 원하는데 최근 우울증으로 치료를 받았던 게 문제가 되는지를 물었다. 전화를 주신 분은 구체적인 가입 업무에는 정확한 답변을 줄 수 없어 설계사님을 통해 연락을 주시겠다고 했다. 다만 병력이 있는 경우 비용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안내해주셨다. 연락처를 전달하고 기다렸지만 며칠이 지나도 전화는 울리지 않았다.
B사
A사의 기약 없는 연락만 기다리고 있을 수 없었다. B사에 전화를 걸자, 마찬가지로 최근에 진료를 받았거나 약을 드시고 계신 게 있냐고 물어보셨다. 우울증이 있어서 두세 달 정도 약을 먹었고, 더 이상 오지 않아도 된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에 따라 상담을 종료했다고 말했다. 그러자 바로 ‘보험 가입이 힘들 것 같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최근 실비 보험 가입이 까다로워져서 병력이 있는 경우 가입이 어렵다고 했다.
‘어렵다’라는 말이 ‘불가’하다는 말의 완곡한 표현인지 확인하기 위해 가입할 수 있는 방법이 아예 없냐고 되물었다. 그러자 완치가 되었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는 서류를 병원을 통해 발급받아와야 한다고 했다. 그마저도 가입 조건이 아닌 가입 심사를 위한 것이므로 가입이 가능할지는 알 수 없다고 했다. 당장 대학병원에 가서 진료기록을 발급받을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기에 안내해주셔서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상담을 종료했다.
C사
다른 곳도 마찬가지일까. 마지막으로 C사를 찾았다. 인터넷으로 나이와 성별, 직업을 입력했더니 가입이 불가능하다며 유선상으로 안내를 받으라는 팝업창이 나왔다. 정신과 진료 기록을 고지하기 전에 ‘무직’이라는 이유로 인터넷 가입을 거절당했다. 다이렉트 보험은 병력이 없고 경제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온라인으로 편리하게 가입할 수 있는 상품이었다.
안내받은 번호로 전화를 걸어 실손 보험 가입을 원하며, 정신과 진료 병력이 있다는 사실을 먼저 밝혔다. 그러자 인터넷 보험은 무심사 상품이기 때문에 가입이 불가능하며 지역 설계사님이나 영업사원의 도움을 받으시라고 말씀하셨다. 전화상으로 개인정보를 수집하는데 동의하자 지역 설계사님에게 연락처가 전달되었다. 담당자님께 문자가 바로 왔고 곧 전화가 걸려왔다. 가입 설계를 위해서는 개인정보처리 동의를 해야 했다. 거부하면 가입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필수적으로 동의를 해야 했다. 수집에 동의하는 절차는 인증번호를 보내는 것으로 간단히 처리되었다.
설계사님께서는 우울증으로 두세 달 정도 약을 먹었으며, 현재는 완치된 상황으로 본사의 심사를 요청하시겠다고 하셨다. 한두 시간 후 다시 전화를 주셨는데, 완치 판정을 받은 후 6개월 뒤에 재심사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병원 서류를 제출해야 하냐고 여쭤봤더니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고 했다 재심사 때 바로 승인이 날 수도 있고, 서류를 요청할 수도 있지만 현재로써는 알 수 없다고 했다. 그러니 서류를 미리 발급받을 필요는 없다고 하셨다(당혹스럽지만 사실이다). 결론적으로 당장 가입은 불가능하다는 이야기였다. 완치 판정일로부터 6개월 후에 재심사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정신과 진료, 번거로운 보험 가입절차
결론부터 말하면 정신과 진료 기록이 있으면 일반적인 실손 보험 가입은 상당히 어려워진다. 원칙적으로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가입 절차가 까다롭다는 걸 부인할 수는 없다. 병력이 있다는 사실을 고지하자 보험 가입이 힘들다는 안내를 받기도 했으며, 재문의하자 완치가 되었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공식 서류를 발급받아 보험사에 제출해야 한다고 했다. 이마저도 제출했을 때 가입이 되는 게 아니라 재심사를 받을 수 있는 조건일 뿐이었다. 보험 가입이 불가능하다고 단정 지은 곳은 없지만 모두 ‘보류’에 가까웠다.
‘정신과 진료 기록이 있지만 보험 가입에는 문제가 없었어요!’라는 글로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고 싶었지만 현실은 달랐다. 되는 거 같기는 한데 당장은 안 됐다. 심지어 나의 경우에는 정식적으로 치료를 종료했기 때문에 병원을 통해 서류 발급이 가능하겠지만 사정상 병원에 가지 못하거나, 혼자 관리가 가능해져서 병원에 가지 않고 치료를 중단한 사람들도 있을 터이다. 치료를 종결했음을 공식적으로 입증할 수 없는 경우에는 더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할지도 모른다.
이 글을 솔직하게 올려도 될지 많은 고민을 했다. 우울증으로 병원에 가면 취업이나, 보험 가입에서 불이익이 있지 않을까 한참을 고민하며 병원에 가기를 주저했던 순간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보험사의 입장에서는 정신과 진료 또한 아파서 진료를 받은 것이므로 똑같은 상품으로 동일한 보장을 해 줄 수는 없을 거다. 하지만 늘어나는 정신과 진료를 반영하여 정신과 관련 보장만 제외되는 상품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야 정신과 진료로 고민 중인 사람들이 적절한 시기에 치료를 받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럼에도 우울증이 의심된다면 병원에 꼭 가야 한다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 만약 우울증이 아니라면 약을 처방받지 않기 때문에 보험 가입에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고, 우울증이라면 꾸준히 치료를 받으면 완치가 가능하다. 중도에 치료를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보험 가입이 ‘불가’ 한 것도 아니다. 절차가 번거로운 게 싫다면 유병력자 실손보험으로 가입하는 방법도 있다. 병력이 있는 사람들을 위한 상품이므로 간편하게 가입이 가능하다.
병원 문턱을 밟기도 전에 고민하고 있는 분들이 있다면 당장 전문가에게 치료를 받기를 권한다. 나도 주요 우울장애와 성격장애 C형 판정을 받았지만 약물 치료를 병행해 우울증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보험 가입에 남들보다 조금 까다로운 절차를 거칠 수야 있겠지만 그게 우울증과 함께 살아야 할 이유는 되지 못한다. 보험 가입이야 6개월 뒤에 하면 된다. 보험은 있지만 우울한 삶보단 조금 까다로운 삶이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