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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호 Dec 10. 2020

보험은 질병이 아닌 불안을 다스린다

   ‘보험은 안 들어도 되니 상담 한 번만 받아봐라.’는 곤란한 부탁이 점점 잦아진다. ‘진짜 괜찮은 상품이 하나 있는데...’라는 말로 이어질 거란 걸 알면서도 단칼에 거절해내지 못하는 이유는 ‘보험 하나는 있어야 한다’는 말을 스스로도 부정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큰 병에 걸리면 어떻게 하지?’, ‘치료비가 없어서 가족들을 고생시키면 어떻게 하지?’ 하는 예측 불가능한 미래에 대한 불안이 점점 커진다. 남들은 보험 하나씩 다 있는 데 나만 맨몸이라는 생각도 초조함에 한몫 더한다.


  대체 보험이 뭐길래 나를 이렇게 불안하게 하는 걸까.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보험을 ‘재해나 각종 사고 따위가 일어날 경우의 경제적 손해에 대비하여, 공통된 사고의 위협을 피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미리 일정한 돈을 함께 적립하여 두었다가 사고를 당한 사람에게 일정 금액을 주어 손해를 보상하는 제도’라고 설명한다. 이처럼 보험은 불안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아직 일어나지 않았지만 일어난다면 생존에 위협이 될 수 있는 일에 미리 대비하려는 인간의 본능적인 행위인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생각하는 불안과 보험이 잠재워 줄 수 있는 불안이 다를 수 있다는 점이다. 


  생각해보면 보험은 질병을 ‘예방’해주지는 못한다. 어떤 설계사도, 좋은 보험 상품도 ‘병에 걸리지 않게 해드립니다’라고는 말하지 않는다. 질병이 일어난 후 금전적으로 ‘보장’하는 사항을 설명할 뿐이다. 그러니 우리가 보험을 가입한 후 안도감을 느꼈다면 우리의 불안이 미래에 올 ‘질병’ 자체보단, 질병 뒤에 따라오는 ‘경제적 문제’에 더 많은 영향을 받고 있었다는 셈이다. 보험의 형평성 문제와 과도한 비급여 항목 진료로 인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4세대 실손보험안을 발표한 주체가 보건복지부가 아닌 금융위원회라는 사실 또한 보험은 질병을 다루고 있지만 질병으로 인한 금전적 문제를 보장하는 상품임을 다시금 깨닫게 한다. 위에서 언급한 보험에 대한 사전적 정의에서도 보험이 “‘경제적 손해’에 대비”하는 것을 밝히고 있고 말이다.


  그럼에도 보험 하나쯤 있어서 나쁠 건 없다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병에 걸리지 않아서 보험료를 납부만 한다고 하더라도, 미래에 대한 불안을 끌어안고 살며 느낄 스트레스에 대한 비용이라고 생각하면 충분히 지불할 용의가 있다. 질병의 치료와 병원비를 완벽하게 분리할 수는 없는 게 현실이므로 보험 가입이 질병에 대한 불안을 어느 정도 줄여준다는 사실도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질병 예방과 질병으로 인해 발생하는 치료비를 구분한 것은 후자에 대한 불안이 감소했을 때 전자를 소홀히 하게 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원래의 취지에서 벗어난 보험 가입과 수령 또한 보완이 필요한 사항임에 분명하다. 본인의 소득에 비해 과하게 보험을 들어 무리하게 보험금을 납부하고 있다던가, 가입자에게 필요 없는 상품을 권유하는 행위가 그러하다. 한 해에 수백 번 병원 진료를 받아 수천 만 원의 보험금을 타가는 것도 마찬가지다. 한파가 올지 몰라 주민들이 함께 쌓아놓은 장작을 한 사람이 다 가져가는 셈이다. 장작을 함께 패 놓고 하나도 가져가지 못한 사람들은 억울하다. 그래서 기회가 생기면 더 많은 진료와 치료를 받으려 하고, 일부 의사 또한 이런 상황을 잘 알기에 비급여 진료를 권유한다. 환자와 의사 모두 이윤을 챙기므로 당장은 이득인 것처럼 보일 수 있다. 


  보험과 진료 또한 이윤을 남겨야만 유지, 발전될 수 있으므로 이윤을 추구하는 행위 자체는 문제가 없다. 하지만 그것이 과할 때는 문제가 된다. 미래의 리스크를 공동체가 함께 부담해 줄여보자는 취지는 점점 사라지고 상품과 서비스, 이윤의 문제로 채워진다. 그렇게 되는 경우 보험 가입이나 보험금 청구도 점점 까다로워질 것이고, 보장사항도 축소될 가능성이 높다. 결국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건 바로 우리 자신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불안의 자리에 보험을 밀어 넣어 불안이라는 감각을 마비시켜도 질병 자체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수준과 필요에 맞는 보험에 가입하되, 꾸준한 관리와 건강검진으로 병을 예방하자. 그리고 혹여 병원에 갈 일이 있다면 적절한 진료를 받도록 하자. 진료 많이 받아서 보험금 많이 탔다는 게 미덕과 자랑이 되는 사회는 우리가 만들어낸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최선은 건강이지 보험금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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