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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호 Jan 04. 2021

어쩌면 나는, 신이 되고 싶은 걸지도 모르겠어

「셰이프 오브 뮤직 : 알렉상드르 데스플라(2018)」

1. 


  음악을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괜찮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선 꽤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는 거다. 꽤 오랜 시간 작(곡)가들의 천재성을 부러워하며 지냈다. 그들을 뛰어넘는 작품을 쓰고 싶다는 열망과 함께 열등감이 커져갔다. 멋진 음악을 만들 수 있는 이유를 재능에서 찾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재능이나 천재성은 몸부림친다고 얻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 사실을 인정하고 나니 두 가지의 선택권이 남았다. 포기할 것이냐, 실패의 가능성을 감수하고 그만큼의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볼 것이냐. 후자를 택했다. 근 반년 간은 나의 편견과 시기, 질투를 걷어내는 시간이었다. 이제야 그들의 노력이 보인다. 열매와 꽃을 보느라 핵심을 놓치고 있었다.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기반을 튼튼히 다지는 데 그들도 오랜 시간을 바쳤음이 분명하다뿌리가 없는 꽃은 손에 쥐어봐야 금방 시들고 만다. 


음악적 역량을 키우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어요. 저만의 음악 세계를 완성하려고 노력했죠. 제게 영향을 준 수많은 요소를 제 것으로 만들어야 했거든요.

-「셰이프 오브 뮤직: 알렉상드르 데스플라(2018)」中

ⓒ 「셰이프 오브 뮤직: 알렉상드르 데스플라(2018)」


2. 


  영화음악은 철저하게 영화에 종속되어야 한다. 아무리 매력적인 선율이라 하더라도 영화가 표현하고자 하는 방향을 벗어나서는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를 드러내고 싶은 욕망을 덜어내야 한다. 밴드 음악을 만들겠다고 시작했다가, 영화음악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도 이러한 이유다. 나는 나를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것보단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나 작품이 주목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작업이 좋다. 작가보다는 평론이 편했다. 하지만 평론이 하나의 작품인 것처럼 영화음악 작곡 또한 하나의 작품이다. 영화를 위해 탄생하였지만 나를 잃지 않는 것. 그게 영화음악가로서 가장 본인을 잘 드러낼 수 있는 방법이다. 


ⓒ 「셰이프 오브 뮤직: 알렉상드르 데스플라(2018)」


"음악을 영화에 입히기만 하는 게 아니라 음악과 배우의 목소리를 통해서 저 자신이 영화의 한 부분이 될 방법을 찾으려는 거예요."

-「셰이프 오브 뮤직: 알렉상드르 데스플라(2018)」中


3. 


  여전히 내가 작곡가가 될 수 있을지 의문이 남는다. 나는 타인의 비난과 평가에 민감해 협동해야 하는 일에서 피로를 많이 느낀다. 하지만 작곡은 필연적으로 많은 사람과 의견을 조율하고 타협해야 하는 일이다. 영화음악을 한다면 예산과 개봉 스케줄에 맞춰 곡 작업을 진행해야 한다. 내가 만든 곡이라고 내 의견을 관철시킬 수도 없다. 감독의 의도에 맞지 않는다면 과감히 수정해야 한다. 세션에게 다른 방식의 연주를 요구해야 할 수도 있을 것이고, 내가 만든 곡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다. 이러한 상황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여야만 지속적으로 창작을 할 수 있는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할 수 있을까? 자꾸만 내 안의 목소리가 나를 끌어내리려 한다. 작곡가가 되기 위해 필연적으로 극복해내야 할 일이다. 싫든 좋든 그건 내 몫이다.



자기 색깔을 잃지 않으면서 제안 내용을 작업에 반영하는 건 자신의 몫이에요. 작곡가로 성공하기는 정말 쉽지 않아요. 영화 음악 작곡가의 경우도 마찬가지죠. 어려운 상황에서 잘 버티려면 정신력도 강해야 하죠. 몇 달, 심지어 몇 년 동안 가족을 못 본 적도 있어요. 지금 이 순간 제 꿈을 구체적으로 실현했어요. 할리우드 작곡가가 됐으니까요. 

-「셰이프 오브 뮤직: 알렉상드르 데스플라(2018)」中


4. 


  영화음악을 공부하면서 느꼈던 의문 중 하나는, '영화라는 텍스트를 어디까지 이해해야 하는가'였다. 카메라 연출이나 조명, 소품, 배우들의 연기, 사회, 역사 등 고려해야 할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하나의 시퀀스를 보고 짧은 음악을 만들어내는 것도, 그 시퀀스가 영화 내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알고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결국엔 영화도, 음악도 자신의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에게 창작이란 신의 영역을 넘보는 일로 느껴진다.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를 거부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다시 만들어 내어 세상에 내놓는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러므로 좋은 작품은 혁명적일 수밖에 없고, 앞선 작품들의 핵심을 내것으로 만든 뒤 창조적으로 파괴해야 한다. 그렇지 못한 채 인습을 반복하는 작품은 (시)청자들에게 쉽게 잊혀질 수밖에 없다. 쉽지 않은 작업이다. 창작의 고통이란 자신의 영역을 넘본 이들에게 주어지는 신의 형벌일지도 모른다. 


ⓒ「셰이프 오브 뮤직: 알렉상드르 데스플라(2018)」中


음악 작곡가에게 필요한 능력은 모두가 무엇을, 왜 원하는지 듣고서 그런 부분을 음악적으로 풀어낼 줄 아는 거예요. 

-「셰이프 오브 뮤직: 알렉상드르 데스플라(2018)」中

5. 

  

  데스플라가 자신이 만든 음악의 악보를 펴놓고 오케스트라를 지휘한다. 종으로 흐르는 시간 위에 악기가 만드는 공기의 울림을 포개 음악을 만들어낸다. 그렇게 탄생한 음악은 그 자체로 하나의 세계가 된다. 그의 음악은 그가 창조한 것이며, 그 세계 속에서 시간과 울림을 지휘 할 권한을 갖는다. 그는 신이 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배덕행위나 마찬가지다. 어디 감히 인간이 신의 영역을 넘보는가. 하지만 내가 느꼈던 배덕은 질투나 시기의 변형된 형태일 가능성이 높다. 나 또한 신의 놀이를 하고 싶은 욕구가 존재하는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닿자 이랑의 「신의 놀이」가 떠오른다. 이랑은 음반을 책으로도 발매했다. 뮤직비디오에 기획과 연출, 편집, 출연에 모두 참여했다. 곡과 가사를 본인이 썼음은 물론이다. 가사를 일부 인용하면서 글을 마친다.



어쩌면 난 영화를 만드는 일로

신의 놀이를 하려고 하는지도 몰라

여전히 사람들은 좋은 이야기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나는 좋은 이야기를 통해 신의 놀이를 하려고 하는지도 모른다

-이랑, 『신의 놀이』1번 트랙「신의 놀이」중 일부




* 이랑, 「신의 놀이」 MV : 


lang lee, <[MV] 이랑 - 신의 놀이 / Lang Lee - Playing God (Official Video)> , 

URL : https://www.youtube.com/watch?v=t6gDp9IsBgw , 검색일 : 2021.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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