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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호 May 26. 2021

나는 도끼를 들고 얼어붙은 바닷속으로 들어갔다

좋은 글을 쓰려면 나를 알아야 한다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과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을 마주할 때면 제 안에서 뭔가 움직이는 게 느껴졌습니다. 제 마음속 어디선가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꿈틀거리는 거였죠. 대체로 불합리한 일이라 생각되는 사건들을 마주한 순간들이었습니다. 그럴 때면 조금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어졌습니다. 제 글을 읽고 마음이 동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철학, 정치, 사회, 심리학, 소설, 평론 가리지 않았습니다. 일주일에 적게는 한 두 권, 많게는 네 다섯 권씩 읽었습니다. 아는 게 있어야 제 글에도 설득력이 생긴다고 생각했으니깐요. 그때 깨달은 사실은 제가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수백, 수천 배는 많다는 사실이었죠. 


꾸역꾸역 글을 뱉어냈지만 제 글은 제자리였습니다. 읽은 책과 글쓰기 실력은 비례하지 않았습니다. 더 나빠지는 것 같기도 했죠. 글에 대한 지적도 몇 차례 받고 나자 저도 모르게 무난한 글을 쓰려 애쓰고 있더군요. 누구에게도 비난받지 않는 글을 쓰려 무던히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그건 누구의 마음도 움직일 수 없는 글이라는 것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공부가 부족해서일까?' 좋은 글을 쓰지 못하는 이유를 여전히 지식의 깊이에서 찾았습니다. 논문들을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글을 쓰기 전 관련 키워드 몇 개를 정해서 논문을 모두 내려받고, 논문들을 읽으면서 관련된 주제를 찾아 또다시 수십 편의 논문을 읽기를 반복했습니다. 글을 쓰기도 전에 지쳐버리기도 했죠. 그렇게 쓴 글에서 제가 원하는 날카로움과, 세상에 대한 따뜻한 애정이 느껴질 리가 없었죠. 


한동안 즐겨 읽었던 문학잡지 『Axt』의 표지에는 다음과 같은 카프가의 문장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책은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한다' 


하지만 저는 제 글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면, 제 글을 누군가 지적할까 봐 불안할 때면 책을 펼쳐 들고, 다른 사람들이 써놓은 지식의 세계 속에 들어가 헤엄을 치며 안도했습니다. '내가 틀린 게 아니다', '내 글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는 식으로 생각했습니다.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하는 자세를 취하는 듯했지만 저의 주장이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을 진정으로 인정하지 못했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이뤄지는 책 읽기는 제가 가진 생각을 강화하고, 입증하는 수단에 그쳤을 뿐입니다. 내 입맛에 맞는 책에서 내 주장을 입증해 줄 근거를 찾으려 애썼던 거죠. 저는 바다를 내리치는 척 도끼를 들고나갔지만, 도끼를 안은 채 얼어붙은 바닷속으로 숨었다 나오기를 반복했던 겁니다.  


책 읽기는 편하고 즐겁기만 할 수는 없습니다. 너무 오랜 시간 그런 책 읽기가 이어진다면 책 속으로 숨은 게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처음부터 다시 읽고 다시 쓰겠습니다. '완벽한 글은 존재하지 않으며, 논리만으로 타인을 설득할 수 없다.', '나의 성격과 기질이 글쓰기에도 영향을 미친다', '내가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글쓰기는 물론 내 삶에도 악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직면하겠습니다. 글을 쓰기 전에 제가 어떤 사람인지 먼저 들여다보겠습니다. 부디 이러한 과정을 통해 제 글이 조금 나아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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