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일은 어쩌다 조각이 나버렸을까

by 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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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를 가장 곤란하게 하는 말은 ‘무슨 일을 하시냐’라는 거다. 있는 그대로 말하자니 멋쩍고, 백수라고 하기엔 조금 억울하다. 상상해보자. 오랜만에 혹은 처음 만난 사람에게 ‘무슨 일 하냐’고 물었는데 “하루에 네 시간은 조건에 맞는 대화를 만드는 작업을 하고요, 오후에는 크라우드 워커로 일합니다. AI 학습을 위한 빅데이터를 만드는 일인데요. 도로 위의 자동차를 라벨링 하거나, 문서를 요약하거나, 녹음을 하거나, 문장을 분류하는 등의 일입니다. 한 달에 한 번은 칼럼을 써서 기고합니다”라고 대답하는 장면을 말이다.


잘 맞지 않는 조각을 내어놓는 것도, 멋쩍어하는 상대방의 반응에도 통 익숙해지질 않는다. 왜 백숙을 시켰는데 닭볶음탕용 닭이 나왔냐는 표정이다. ‘이게 왜 조각나있지? 이게 맞나? 한 마디 해야 하나? 모른 척 넘어가야 하나?’라는 말이 그의 입에서 새어 나올 거 같다. 물론 나라고 처음부터 닭볶음탕의 삶을 살아온 건 아니다. 9시 출근, 6시 퇴근, 주말, 공휴일 휴무인 콜센터에서 하루에 한 번만 삶아지면 되는 통짜 백숙의 삶을 살기도 했다.


하지만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모욕의 언어들은 그냥 흘려버리기엔 너무나 끈적하고 강렬한 에너지를 품고 있다. 노동자가 받은 모욕은 다른 노동자를 향했다. 한 시간 넘게 통화를 했던 고객은 사실 자신이 버스기사인데 문을 왜 여기서 열어주느냐, 운전 똑바로 해라, 공부도 안 해서 버스기사 하고 있는 거 아니냐는 등 온갖 모욕을 듣고도 아무 말 못 한다고 했다. 가족들은 항상 자고 있고, 낙이라고는 드라마를 다시 보기 하는 건데, 주말에 통화도 안 돼서 화가 났다고. 그래서 나에게 욕을 했다고. 미안하다고 했다. 사실 다시 해보니 다시 보기는 잘 됐다고 했다. 그렇게 매일 꼬꼬댁꼬꼬댁, 죄송합니다를 반복하다 보니 영혼이 병들어 버렸다.


우리는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서도 먹고살기 위해 참는다. 그래, 내가 참자. 그 사람도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 한두 번은 된다. 하지만 해소되지 못한 화는 내 속에 머물며 부패한다. 그러다 예상치 못한 시점, 엉뚱한 곳에서 터진다. 다른 노동자와 나의 위치가 뒤바뀔 때, 상대적인 약자가 등장할 때가 그 시점이다.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더 집요하고, 비인간적인 방식으로 말이다.


그곳에 계속 머문다면 나도 같은 사람이 될 것만 같았다. 더 이상 모욕을 감당하고 타인을 이해할 에너지가 남아있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아침에는 나를 조각내 돈을 벌고, 밤이면 글과 음악을 쓴다.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지만 병든 내 마음을 먼저 이해해야 타인을 이해할 수 있음을 이제야 깨달았다. 누군가를 억압하지 않는 일이 내 직업이 된다면, 내 조각난 지금의 순간도 하나의 퍼즐이 되어 작품이 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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