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절실한데 제자리를 맴도는 기분이라면
어떤 일이 잘 안된다고 하면 "그만큼 절실하지 않아서 그래"라는 답변이 돌아오곤 합니다. 이상합니다. 저는 정말 절실한데요.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하고 있는데요.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고 느껴지는 날에는 남은 에너지를 '왜 이것밖에 못 한 거야?'라고 자책하는데 쓸 정도로 최선을 다 하는데요. 내일은 눈을 뜨지 않았으면 하는 삶을 반복하면서도, 다시 일어나 노력하는데도 왜 제자리를 맴돌고 있는 것 같은 기분만 들까요.
강연 중간에 15분 정도의 쉬는 시간이 주어졌습니다. 가만히 앉아있기 답답해서 잠시 산책을 하러 나갔습니다. 쉬는 시간이 그리 길지 않으니 건물 주변을 한 바퀴 돌아볼 생각이었습니다. 골목을 따라 걸었습니다. 쉬는 시간이 끝나기 전에 돌아가야 하니 저 골목쯤에서 되돌아오면 되겠군. 생각했죠. 그리고 평소처럼 걷는데
어라?
제 발걸음이 빠르게 느껴졌습니다. 어차피 갈 곳이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닌데, 조금 천천히 걸어도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죠. 걸음을 조금 늦췄습니다. 그 걸음도 빠른 거 같아서 조금 더 천천히 걸었습니다. 그렇게 제 발걸음을 느끼며 길을 따라 천천히 걷다 보니 주변 세상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길 오른편에는 작은 밥집에서 테이블을 두 개 정도 놓고 간장계란밥, 오므라이스 같은 소박한 메뉴를 팔고 있었고요, 그다음 집에는 수량은 적지만 다양한 취향의 옷을 팔고 있었습니다. 왼쪽으로는 카세트테이프, 변색된 신문지 등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오래된 서점 터에서 운영하고 있는 있는 카페가 보였습니다.
참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저는 제 발걸음이 빠른 편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앞사람이 천천히 길을 걸으면 옆으로 쌩 추월해서 지나가곤 했습니다. 혼자만 천천히 걸으면 다야? 바빠 죽겠는데 빨리 가던가 한쪽으로 비켜서 줘야지. 하면서요. 매일 가는 길인데도 어떤 가게가 생기고 없어졌는지도 한참 지나서야 알아차리곤 했습니다. 누가 '떡볶이 집에 가보자'해도 '우리 동네에 떡볶이 집이 어딨어?'반응하기 일쑤였죠. 가야 하는 목적지와 도착 시간에 제 발걸음을 맞추느라 제 속도를 잃어버리고 살았던 겁니다.
세상이 굴러가는 속도를 무시하고 내 맘대로만 살 수는 없습니다. 도시에 살고 있다면 열심히 뛰어야 하는 시간이 더 많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그 속도가 내 속도와 맞지 않다면 내 원래 속도를 알고는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힘들 때 이유를 알고 쉬어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와 비슷한 속도의 사람과 비슷한 속도의 관계를 찾을 수 있습니다. 제가 걸음을 늦췄을 때 보이기 시작한 것들이 사실은 원래 있었는데 제가 놓치고 있었던 것처럼요.
나와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과의 만남을 강조하는 만큼, 삶의 방식이 비슷한 사람들과의 만남도 중요합니다. 그래야 제 속도를 잊지 않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대학 졸업했는데, 서른이 됐는데, 결혼했는데, 정년이 얼마 안 남았는데, 누구는 집을 샀다는데, 누구는 대기업에 취직을 했다는데 이런 식의 비교는 나를 힘들게만 할 뿐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속도를 잊지 않고 가면 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나씩 꾸준히 해나가는 겁니다. 거북이가 토끼를 따라잡지 못한다고 매 순간 비교하고 자책했다면 결승점에 도착하지 못했겠죠. 거북이가 끝까지 갈 수 있었던 건 제 속도를 알았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 우울증에서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은데요. 그 마음이 저를 더 힘들게 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취직하고 돈 벌고 집 사고, 부모님 여행도 보내드린다는데 나는 뭘 하고 있나 싶어서 자책하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은 수건을 빨아 햇볓 아래 탈탈 널어놓고 글 하나를 썼습니다. 자책하느라 아무것도 못 할 바에 글 하나라도 끄적이는 게 낫겠죠. 이게 제 속도인 걸 어쩌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