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발에 들어간 당면이 너무 매워서 나는 쓰읍 쓰읍 들숨 날숨을 빠르게 반복했다. 여자친구는 ‘당면은 못 먹겠다’는 나의 말에 ‘입 하나 줄었다’면서 ‘개꿀’이라고 외쳤다. 그리곤 얼마 전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 노래를 부른 연예인의 모습이 뭔가 불편했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나는 상추에 족발 하나 넣고, 마늘에 쌈장을 듬뿍 찍어 쌈을 싼 뒤 입에 쏙 넣고 ‘노래를 잘하는 사람의 애드리브까지 카피해서 부르는 느낌 아니야?’라고 우물거리며 말했다. 그러자 여자 친구는 손뼉을 짝! 마주치며 맞장구를 쳤다. 분명 음정 박자 다 맞는데 어딘가 이상한 건 그의 노래가 연기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애드리브이라면 자고로 자연스러움이 생명이니깐 말이다.
진짜 큰 문제는 따로 있었는데, 내가 인생을 연기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최근에서야 깨달았다는 것이다. 너무 오랜 시간 연기를 하면서 살다 보니 내가 연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마저 망각할 지경이 되어버렸고, 이제 와서는 내 진짜 모습이 뭔지 도통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일 년쯤 전에는 누군가 심장을 손으로 조이는 것 같고, 일어나서 머리를 감는 것도 하기 싫을 정도의 무력감과, 하루에 한 시간도 잘 수 없는 불면의 밤이 찾아와 병원에 갔다. 이런저런 검사를 해보더니 우울증에 C군 성격장애라는 진단을 받았다. 반년도 되지 않아 완치 판정을 받고 약물 치료를 끝낼 수 있었던 건 진료실에서도 남우주연상 급의 연기를 펼쳤던 덕이 아닌가 싶다 “잠도 잘 자고요, 살도 7kg이나 쪘어요. 이제 뭔가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 같아요” 그게 엄연히 말하면 거짓은 아닌데 그렇다고 진실도 아니었다.
삶의 목표가 없고, 기준도 없다 보니 주변 사람들이 기대하는 모습으로 살려고 했다. 타인의 욕망을 욕망했다. 친구 관계에서도 친구가 원하는 걸 따라가는 쪽이었고, 내가 딱히 할 말이 없으니 이야기도 들어주고 리액션을 해주는 쪽이었다. 그런 관계는 지속될수록 어쩐지... 불편해졌다. 친구는 하고 싶은 일, 힘든 일이 있으면 나를 찾았는데 나는 들어주는 게 지쳐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친구는 왜 너는 자기 이야기를 안 하냐, 연락도 먼저 안 하냐면서 섭섭함을 표했다. 나는 정말 할 말이 없어서 말을 안 하는 건데 섭섭하다고 하니 말문이 더 막혔다. 그러다 보면 둘 사이에 피상적인 대화만 통과되는 투명 벽 같은 게 생기는 듯한 기분이 들곤 했다.
지금은 일도 하기 싫다. 복학을 앞두고 퇴사를 마음먹었던 이전 일터에서 그만두지 못하고 학업과 일을 병행했던 시기가 있었다. 그때 심리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너무 지쳤다. 유료로 운영되던 사이트가 개편되고 마지막에는 서비스를 종료하게 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내가 한 일이 아님에도 욕을 먹고 사과를 해야 했다. 그게 내 업무였고, 그 일을 한 대가로 돈을 받았다. 그러면서도 그만둘 수 없었던 건, 마무리를 해달라는 팀장님, 실장님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한 내 예스맨 기질과 어쨌든 돈이 필요하다는 현실 때문이었다.
아무 일도 하고 있지 않으면 불안과 우울이 나를 덮쳐온다. 그렇다고 밖으로 나가 무언가를 하려고 하면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지 너무 의식된다. 평범한 일상마저 에너지를 쪽쪽 빨아간다. 예상에 없던 일정이 생기거나, 많은 사람을 만난 날에는 신경이 곤두선다. 다른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보이려고 신경이 쓰다 보니 그게 더 부자연스럽다. 이제는 외워서 하는 애드리브를 그만두고 싶은 게 그걸 어떻게 하는 건지 모르겠다. 인생에는 매 순간 주어지는 쪽대본밖에 없을 텐데 난 왜 자꾸 그것마저 달달 외우려고 할까. 어떻게 해야 자연스러운 애드리브를 날리며 내 인생을 살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