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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호 Jul 09. 2021

심리상담을 받기 시작했습니다_1주차


상담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후기를 남깁니다. 기억에 의존한 글이라 순서가 뒤죽박죽입니다. 내용은 최대한 그대로 적되 일부분은 각색했습니다.


0. 첫 만남

선생님 : 안녕하세요. 잘 찾아오셨어요?


나 : (앞에서 입구를 못 찾아서 헤맸어요. 라고 말하지는 못하고) 아 네.


선생님 : 일단 신청서를 작성해볼까요. 


나 : 네


(침묵)


나 : (상담을 원하는 항목에 체크하라는 내용을 보고)어...선생님, 엄청 많은데 다 체크해도 괜찮나요?


선생님 : 물론이죠. 


나 : 여기에는 뭘 적어야 하나요?


선생님 : 상담을 통해 해결하고 싶은 문제가 뭔가요?


나 : 사람들이 너무 불편해요. 가족하고 눈도 못 마주치겠고요. 저를 표현해도 되는지 자꾸 머뭇거리고 눈치를 보게 돼요. 안 그랬으면 좋겠어요.


선생님 : 그걸 긍정적인 표현으로 만들어볼까요.


나 : (엨...) 어...음...편했으면...자연스러웠으면...관계에 있어서...(횡설수설)


선생님 : 안정감 있는 관계?


나 : 그거 좋네요. 안정감.


1. 상담은 상처를 들여다보는 과정이다

선생님 : (목을 왼쪽으로 돌리시더니)이쪽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볼게요. 근데 그걸 보기 싫어서 고개를 돌리고 있는 거예요. 그럼 당연히 힘이 들어가겠죠. 그리고는 "선생님, 목이 아파요"라고 하는 거예요. 그럼 "앞을 보세요"라고 하겠죠. 근데 그걸 할 수 없어요. 직면하는 게 두렵거든요. 힘들지만 그걸 돕는 게 상담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나 : 넹


선생님 : 뒷 장을 한 번 보시겠어요? 원하시는 경우 상담 중단을 요청하실 수 있어요. 상처가 났다고 생각해볼까요. 그럼 우리는 수술을 해서 상처 부위를 들여다보고 치료를 하겠죠? 상담도 마찬가지예요. 마음을 들여다보고 치료를 하려면 상처를 여는 과정이 필요해요. 한 번에 나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그런데 갑자기 상담을 중단해버리면 곤란해요. 외면했던 상처를 들여다보는 과정이 너무 아플 수 있어요. 그럴 땐 저한테 말해주세요. '선생님, 제 상처가 너무 아파서 상담을 못하겠어요. 조금 시간이 필요해요'라고요. 


나 : 네 알겠습니다.


선생님 : 어떤 이야기부터 해볼까요? 


나 : (안절부절) 어...음... 제가 혹시 도움이 될까 해서 이걸 가져왔는데요. (가방에서 파일을 꺼내 건넨다)


선생님 : 풀 배터리를 받았네요. 어디 보자. 우울 (D)이 88점이네요.


나 : 높은 건가요? 


선생님 : 엄청요. 전화로 목소리 들었을 땐 그렇지 않은 거 같았는데 반사회성(Pd)도 높네요. 67이에요. 


나 : 높은... 건가요?


선생님 : 음... 낮은 건 아니죠? 강박(Pt)도 있고...(74)


2. 환자라는 사실을 인정하라

선생님 : 아버지와 눈 마주치는 게 힘들다고 했잖아요. 술을 마시고 오시면 폭력을 행사하셨으니 그건 당연한 거 아닐까요?


나 : 그건 맞는데요. 평소에는 참 좋은 분이거든요. 


선생님 : 알콜릭의 특징이에요. 평소에는 사람 좋다가 술을 마시면 확 변하는 거. 평소에 긴장되고 허전한 마음을 건강한 방법으로 풀어보지 못한 거예요. 당신은 글을 쓰고 산책을 했다고 했잖아요. 그런 것처럼요. 아들이라는 존재에게도 평소에 하고 싶은 말을 잘 못할 정도로 패턴화 된 거예요. 그리고 당신도 중독 증상이 있을 수 있어요.


나 : (!) 사실 맞아요. 다음 날 출근이 9시인데 3시, 4시까지 술 먹고 출근하고, 그날 쉬고 다음 날 또 먹고 그러기도 했어요. 몇 년 정도는 그랬던 거 같아요. 힘들 때 게임도 엄청 했어요. 10시간 넘게 한 적도 있고, 퇴근하고 아무것도 못하고 또 출근하는 게 아까워서 새벽까지 게임하고 그랬어요.


선생님 : 알콜릭은 단주라고 표현하거든요. 20년 술을 마시던 사람이 30년 술을 안 마셨다고 해결이 된 게 아니에요. 참고 있는 거예요. 중독이라는 건 뇌에 손상이 온 거예요. 물론 살다 보면 딱 한 잔 마시고 싶은 유혹이 들 때가 있거든요. 적당히 마시면 괜찮아요. 근데 한 잔 마셨더니 더 마시고 싶고, 절제가 안 돼요. 그럼 그건 중독인 거예요.


나 : 맞아요. 저 최근에는 술을 입에 대지도 않았는데요. 대신 한 번 마시면 끝까지 마셔요.


선생님 : 되도록이면 안 마시겠다 생각하시는 게 좋아요. 


나 : 최초의 기억 중 하나가 유치원에 입학하기 바로 전날이었는데요. 그날도 아빠가 술을 드시고 왔던 게 생각나요. 큰집 식구가 와야 잠잠해져서 그날도 사촌 형이 왔는데요. 내일 유치원 가야 하니깐 빨리 자라고 했어요. 근데 저는 그런 제가 이상했어요. 이러고 내일 유치원을 가는 게 맞는가? 이게 정말 그 당시 기억인지 나중에 만들어진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초등학교, 중학교에 가서도 새벽까지 폭언과 폭력에 시달리다가 학교에 가면 아무렇지 않게 웃고 떠드는 제가 이상했어요. 이상한 사람처럼 느껴졌고요.


선생님 : 요새도 술을 드시나요?


나 : 요새는 많이 안 드셔요. 


선생님 : 전혀요?


나 : 아뇨. 그건 아닌데 폭력을 휘두르시지는 않아요.


선생님 : 드시기는 하는 거네요.


나 : 드시는 건 거의 매일 드시죠.


선생님 : 그러니깐요. 그게 알콜릭이에요. 인정하셔야 해요. 환자를 일반인의 관점에서 보려고 하면 문제 해결이 안 돼요. 우울증이라는 게 왜 우울증이겠어요. 혼자 의지로 조절하는 게 불가능하니깐 그렇잖아요. 혼자 해결할 수 있으면 그건 우울감이 높다고 하겠죠. 그런 차이예요.


나 : 그... 그렇네요. 


3. 의지력이 강한 사람인 거 같아요

선생님 : 그런데 빠르게 회복하신 거 같아요. 우울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어떤 것들을 했나요?


나 : 일기를 많이 썼어요. 전에 써뒀던 일기장도 세네 번씩 읽었고요. 그리고 산책을 많이 했어요. 뭐든 글로 써보려고 했고요. 그리고 학지사에서 나온 책도 많이 읽었어요. 


선생님 : 자신을 표현하려는 시도를 계속한 거네요.


나 : 맞아요. 그리고 제가 관계에 있어서 항상 맞춰주려고 하는 성향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지금 생각해보면 학창 시절에 관계도 건강하지 않았던 거 같아요. 저는 항상 다른 사람의 눈치를 봤고 맞춰주니깐 그걸 원하는 관계가 생겼던 거 같아요. 


선생님 : 혹시 왕따를 당하거나 하지는 않았나요?


나 : 모든 관계가 그런 건 아니었어요. 근데 그런 애들이 조금 더 적극적으로 저와의 관계에 집착했던 거 같아요. 왜 나하고는 안 놀아주냐, 친구라면 이래야 한다 이런 식으로요. 


선생님 : 강하게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자기주장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못했던 거네요.


나 : 네. 그런데 최근에는 그런 관계들을 많이 끊어냈어요. 자연스럽게 멀어진 것도 있고요. 나이 먹고 일하고 결혼도 하니깐 다른 대상이 생긴 거 같기도 하고요. 그리고 갈등 상황이 생기면 말이 안 나왔거든요. 진짜 목에 뭐가 막힌 것처럼요. 근데 그러면 지금 말이 안 나오니깐 나중에 말하겠다고 하거나, 나중에 카톡으로라도 말했어요. 제가 그런 상황에서 말을 못 한다는 걸요.


선생님 : 어쨌든 그런 말을 했다는 게 엄청난 노력이 필요했을 거 같은데요. 대단하네요. 사실 다른 사람들은 그런 문제 상황을 들여다보는 게 힘들어서 상담을 하는 거거든요. 당신은 의지력이 굉장히 강한 사람 같아요.


나 : (엨, 에엨...힉...) ....감사합니다.


선생님 : 당신은 자기 자신에게 잘했다고 이야기하는 편인가요?


나 : 아뇨, 전혀요. 채찍질하는 게 더 익숙해요. 


선생님 : 왜 그럴까요?


나 : 그래야 뭔가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 같아요. 실력으로 인정 받든 타인에게 인정 받든요.


4. 칭찬을 받으면 느낌이 어때요?

선생님 : 제가 방금 좋은 사람이라고 말한 거는요?


나 : 어... 음 사실 저는 칭찬을 받으면 "저 사람은 사람 보는 눈이 없어. 그래서 나를 칭찬하는 거야. 저 사람이랑은 거리를 둬야겠다"이렇게 생각해요. 아니면 못 들은 척 다른 말을 하거나, 그 자리에서 도망쳐요.


선생님 : 자기 자신에게 칭찬을 해본 적은 있나요?


나 : 일부러라도 좋은 일을 찾아보려고 감사일기를 쓰는 편이에요. 매일은 못 쓰지만 노력은 하고 있어요.


선생님 : 그럼 그걸 본인이 받아들일 수 있나요?


나 : 아뇨. 손으로는 쓰고 있는데 마음으로는 절반도 못 받아들이는 거 같아요. 


선생님 : 왜 그런 거 같아요?


나 : 제가 부족하다고 느끼거든요. 다른 사람하고 자꾸만 비교하게 되고요. 가족에게도 좋은 사람이고 싶고, 친구들에게도 즐거운 사람이고 싶고, 돈도 벌고 싶고, 글도 쓰고 싶고 책도 읽고 싶고요. 그러다 보니 이도 저도 아니게 되는 거 같아요. 그래서 하루를 자꾸 일로 채워 넣으려 해요. 


선생님 : 일을 많이 하면 기분이 어떤 거 같나요?


나 : 꽉 채워놓은 일을 다 하면 '휴'하지만 그게 안 되는 날이 더 많아요.


선생님 : 강박이라는 게 사람을 통제하려는 욕구로도 표현되거든요. 근데 그렇게 되던가요? 잘 안되잖아요.


나 : 맞아요. 저도 사람을 통제하려 한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어요. 책꽂이에 책 꽂을 때 앞면에 맞춰야 하는 강박도 있었고요. 


선생님 : 통제가 되지 않는 것들을 청소나 정리 같은 거로 보상받으려 하는 거예요. 인간이나 관계는 마음대로 통제할 수 없으니깐요.


5. 에너지를 외부로 전환해보세요

선생님 : 정적인 활동을 많이 하시는 거 같아요. 근데 산책을 할 때 많이 좋아졌다고 했잖아요? 너무 과격한 운동은 아니더라도 요가나 명상 같은 걸 해보세요. 글쓰기도 좋지만 내면에 몰입하는 행동 사이에 외부로 향하는 활동을 해주는 게 좋아요.


제가 연기를 하고 있는 거 아닐까요? 

선생님 : 5분 정도 시간이 남았네요. 두서없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지만 어떤 느낌이 들었나요?


나 : 이야기를 많이 하고 나면 그런 생각이 들어요. 제가 연기를 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고요. 집에서는 우울하고 말도 안 하고 눈도 못 마주치는데 선생님하고는 이렇게 이야기를 잘하고 있으니깐요. 아무렇지 않은 척 연기를 하고 있는 거 아닐까요. 정신과에서도 이제 약을 그만 먹어도 된다고 했는데 이후로 문제는 계속되었거든요. 그래서 제가 우울증에서 빨리 낫고 싶으니깐 의사 선생님 앞에서 연기를 한 게 아닐까 의심이 들어요. 


선생님 : 의사 선생님의 상담과 연구, 검사가 아무 근거가 없던 던 건 아닐 거예요. 당신 안에는 쾌활한 모습도 있고 우울한 모습도 있는 거라고 생각하는 건 어떨까요. 지금은 저와 이렇게 잘 이야기를 나누지만 집에 가면 또 우울해 할 수 있죠. 그게 둘 다 당신일 수 있잖아요. 경계성 인격장애가 있는 사람이 어린아이가 되었다가 또 다른 사람이 되기도 하지만 그건 모두 그 사람의 모습이잖아요. 그런 것과 같죠.


- 2주차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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