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폰이 부르르 떨기 시작했습니다. 화면에는 학부시절 교수님 성함이 떴습니다. 놀란 마음 반, 반가움 마음 반으로 전화를 받았습니다. 잘 지내냐는 교수님의 말씀에 평소처럼 잘 지낸다고 말할까 하다가 사실 우울증이 왔다고 말씀드렸죠. 교수님께서는 코로나 이후 비대면 상담을 진행하고 있는데 우울감을 호소하는 학생들이 많다고 하시며, 언제라도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연락하라고 하셨죠. 그러면서 요즈음 구체적으로 뭘 하고 있냐고 물으셨습니다. 저는 딱히 하고 있는 건 없고, 쉬면서 책을 읽고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자 교수님께서는 과도한 자기 성찰은 정신건강에 좋지 않다면서 책도 쉬어가면서 보라고 하셨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저는 불안이 커지면 어떻게든 그 원인을 찾아 해결하려 애를 썼습니다. 이유를 알아야 불안을 잠재울 수 있을 테니깐요. 성과도 있었습니다. 저는 대인관계에서 자꾸 눈치를 보고, 책임감을 느끼고, 다가오는 사람과 거리를 두고, 다시 외로워하는 상황을 반복했습니다. 불편함을 느끼면서도 왜 비슷한 일이 반복되는지 알지 못했죠. 그러다 우울증과 관련된 책, 인터뷰, 상담 자료 등을 찾아보면서 유년기 아버지의 음주와 폭력, 교우관계 문제 등으로 인해 불안정한 애착 유형이 형성되었고, 갈등 상황을 무의식적으로 회피하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모든 상황에서 제 심리의 작동 방식을 이해하고 행동할 수는 없습니다. 때로는 생각보다 행동이 먼저 바뀌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가 병원에 가서 약을 처방받고 주사를 맞을 때, 그 약이 어떻게 우리 몸으로 들어와서 분해되고, 어떤 성분이 어떤 방식으로 작용하는지를 알아야만 하나요? 아닙니다. 그걸 알아내겠다고 치료를 미루기만 하다가 병이 더 악화된다면 그게 더 문제입니다. 때로는 치고 나가야 할 때도 있는 법입니다.
물론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불안 경보기 때문에 신경이 쓰이는 건 사실입니다. 불안한 마음이 들고, 심장이 두근거리고, 숨이 가빠지는 증상이 분명 존재하는데 무시하고만 살 수는 없으니깐요. 불안에 압도되는 상황에는 그 원인이 진짜인지 아닌지 생각할 여지조차 없습니다. 생각을 그만두려 해도 멈출 수가 없죠. 불안이 조금 가시고 난 뒤에야 그 상황을 되돌아볼 수 있을 뿐입니다. 아, 그렇게까지 불안해하지 않아도 될 일이었구나. 하고 말이죠. 불안의 민감도를 조절하는 건 앞으로의 삶의 몫이겠죠. 정말 필요한 불안인지, 내 머릿속에서 생겨난 가짜 감정인지 수 차례 반복하며 내 안의 불안 경보기가 언제 울리고, 언제 대응해야 하는지 정교한 데이터를 만들어 가야겠죠.
오늘은 정말 우울하고 컨디션도 좋지 않았습니다. 눈을 뜨자마자 불안 경보기가 강하게 울려댔습니다. 그래서 원인을 찾으려 책을 읽기 시작했죠. 효과가 있는 듯도, 없는 듯도 했습니다. 그러다 미리 정해놓은 약속이 있어 밖으로 나가 좋아하는 사람과 닭볶음탕을 먹고 집에 돌아왔습니다. 산책도 조금 했습니다. 우울하고 불안했던 이유도 전혀 찾지 못했지만 기분이 한결 나아졌습니다. 미뤄뒀던 글도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물론 얼마 전 불안한 마음이 너무 커져 책을 잔뜩 사기는 했지만요. 결국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건 행동하는 것뿐입니다. 책 속으로 숨어서는 안 됩니다. 카프카의 말처럼 '책은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부수는 도끼'가 되어야 합니다. 도끼를 들고 얼어붙은 바닷속으로 들어가는 것으로는 내 안의 우울과 불안을 해결할 수 없습니다.
독서가 삶에 긍정적 영향을 주기 위해서는 고민과 사유가 행동으로 이어져야만 함을 몸소 깨달은 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