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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호 May 23. 2021

나의 성장을 방해하는 것들에 대하여


1. 무력감


  멜로디 작곡 과제를 하고 있다. 멜로디를 어떻게 써야 하는가. 감이 오지 않는다. 쓰면서도 이게 좋은 멜로디인지 확신이 서지 않으니 자꾸만 머뭇거리게 된다. 처음부터 다시 들어보고 고치기를 반복한다. 도저히 진도를 나가지 못한다. 스무 마디를 만들어야 하는데 아직 세 마디도 완성을 못 했다.


'나는 할 수 없을 거야.' 

'음악은 내 길이 아닌가 봐.'


 내 한계를 지속적으로 마주하게 되면 무력감이 몰려온다. 눈이 감기고 눕고 싶은 욕구가 강렬하게 올라온다. 감정이 휘몰아치는 이 순간에는 진짜 피곤한 건지, 회피가 올라온 건지 알아차리기 어렵다. 잠시 자리에서 일어나 심호흡을 해본다. 이때 나는 SNS를 켜거나 음악 관련 커뮤니티에 들어가거나 게임을 켜곤 한다. 내 한계를 넘기 위한 일들이 너무 어렵고 피곤하다고 느껴 익숙하고 안전한 세계로 피하려는 것이다.



- 조치방법 :  핸드폰을 최대한 멀리 둔다. 자리를 옮기거나 자세를 바꿔야 할 정도가 되면 핸드폰을 찾다가 '내가 또 직면한 문제를 회피하고 딴짓을 하려고 하는구나'하고 깨닫게 된다. 이때에도 '잠깐은 괜찮겠지?' 하는 유혹에 빠지게 되는데 '무조건 안 된다'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억압된 감정은 사라지지 않고 응축되어 있다가 폭발할 것이므로 '내가 회피의 수단으로 핸드폰을 본다'는 정도만 인지한다. 반복하다 보면 자발적으로 핸드폰을 찾으려던 걸 멈추고 작업으로 돌아오기도 한다. 


2. 조급함


   빨리 끝내야 한다는 생각에 음표를 채워 넣기 바쁘다. 좋지 않은 음도 반복해서 듣다 보면 판단력이 흐려져 고치지 않고 넘어간다. 곡을 쓰거나 카피를 하는 목적은 좋은 음악을 쓰기 위함에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물리적인 할당량을 채우는 데에 집착한다. 이런 노력은 쌓여봐야 소용없다. 실력이 되지 않고 시간과 에너지만 소모될 뿐이다. 머리로는 안다. 하지만 마음대로 풀리지 않는 날이면 누군가에게 쫓기듯 작업을 하게 된다. 


  나는 왜 조급할까? 여유를 갖지 못할까? 불안하기 때문이다. 불안의 핵심은 돈이다. 부모님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스스로가 못나 보인다. 사람을 만나려면 돈이 필요하다. 최소한의 체면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소비는 필수적이다. 그런데 돈이 되는 일을 하지 않고 하루 종일 음악을 하겠다고 붙잡고 있는 내가 한심해 보인다. 


  내가 평생 쓸 돈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럼 불안하지 않을까? 확신할 수 없다. 돈 그 자체보다는 가난에 따라오는 불편함과 무시를 내가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돈은 진짜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타인과의 관계를 잘 맺어왔고, 유대감을 느낄 수 있는 집단과 신뢰를 쌓은 친구가 있었다면 수입이 없는 시간이 이렇게 힘들지는 않았을 거다.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타인과의 관계 또한 깊은 단계로 발전하기 어렵다. 같은 말을 하더라도 너무 많이 생각하고 긴장하고 상처 받는다. 


나의 조급함은 돈에서 오고, 돈에 대한 불안은 불안정한 관계에 기인한다.


조치 : 내가 경제적으로 독립하는 수밖에는 없다. 이건 내가 마음을 어떻게 먹는다고 해서 달라지는 문제가 아니다. 물론 성숙한 사고가 안정적인 경제활동을 위한 디딤돌이 되는 건 사실이다. 그럼에도 경제적 독립을 이뤄야 한다는 사실에는 변화가 없다. 순서가 다를 뿐. 어느 쪽이든 내 현실에 변화가 체감될 정도가 되어야 나의 사고 패턴도 바뀔 수 있을 거 같다. 


3.  파국화


   과제 완성도가 내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 선생님께서도 미흡하다고 하셨다. 


'역시 나는 음악을 하면 안 되는 거였다, 이제 나이도 먹었는데 제대로 하는 것도 없고. 아버지 몸도 안 좋아지시는데 내가 집안을 다 말아먹는구나.'


같은 부정적 생각으로 치우친다. 과제 하나가 마음에 안 든다고 해서, 지금 실력이 부족하다고 해서 성장 가능성이 없는 것도 아니고, 쓸모없는 인간이 되는 것도 아니다.라고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가슴은 따로 논다. 이런 상황이 불쾌하고, 초조하고, 불편하고, 수치스럽다. 과제를 예로 들었지만 다른 일에서도 마찬가지다. 일을 하다 실수를 하거나, 메일을 보냈는데 첨부파일을 깜빡하고 업로드하지 않았다던가, 밥을 하는데 불린 콩을 넣지 않았다던가 할 때도 스스로를 자책하고 인생의 끝자락까지 갔다 간신히 돌아온다. 


조치 : '망할 거다!'라는 감정이 올라온 순간을 잘 기억해두거나 메모해둔다. 상황이 지나가고 나서 실제로 내 인생 혹은 세상이 망했는지를 적어본다. 내가 느꼈던 감정이 현실과 다를 수 있음을 반복적으로 학습한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정도의 생각을 할 수만 있어도 성공이다.


4. 인정 욕구


  과제의 목적은 실력을 쌓기 위함이다. 선생님도 학생들의 실력을 향상하기 위해 과제를 부여한다. 하지만 나는 선생님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선생님에게 칭찬을 받고 싶어서 과제를 하고 있었다. 과제가 잘 안 될 때(항상 안됐다)는 선생님에게 혼날까 봐, 꾸중을 들을까 봐 걱정하고 불안해했다. 내가 내 음악이 마음에 드는지, 지난번보다 나아졌는지는 기준에 없었다. 내가 별로인 거 같아도 선생님이 잘했다고 하면 된 거라고 생각했다. 물론 타인의 시선을 통해 작품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도 필요하지만 온전히 타인의 기준에 기대어 나의 작품과 나를 판단하는 건 바람직하지 못하다. 


  조치 : 과제는 나를 위한 것임을 스스로에 상기시키고 있다. 그리고 나 또한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는 사실,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있다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하려 하고 있다. 인정과 칭찬을 받고 싶은 욕구는 지나치지 않는다면 곡을 쓰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 그럼에도 최종적인 판단과 행동의 주체는 나여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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