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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호 Sep 10. 2021

하나씩 풀어보기로 했습니다

엉킨 내 삶을 들여다보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다

아빠가 뭔가를 열심히 만지작 거리고 계셨다. 뭐냐고 물으니 누나 목걸이라고 했다. 큰 손으로 하시기 쉽지 않을 거 같아 내가 해보겠다고 나섰는데 금방 후회가 몰려왔다. 괜히 건드렸다.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감도 안 올 정도로 엉켜 있었다. 이쪽으로 넘기면 다른 한쪽이 더 엉키고, 한쪽을 풀었다 싶으면 다른 곳이 안 풀렸다.


나도 못하겠다고 포기해버릴까?

여기를 자르면 될 거 같기도 한데? 하나는 포기하고 하나만 살릴까?


못하겠다는 생각이 커지자 포기하고 싶다는 유혹이 밀려왔다. 하지만 내 목걸이가 아니라서 망가트릴 수도 없고, 내가 하겠다고 나섰는데 포기하는 것도 면이 안 섰다. 앉아서 하다 보니 목이 너무 아파 거실 바닥에 엎드려 햇빛에 비춰보았다. 어디가 위고 어디가 아래인지 하나씩 들여다보면서 이리 넘기고 저리 넘겼다. 간신히 하나를 풀어도 엉킨 매듭은 한가득이었다. 이거 안 되겠는데. 하는 생각이 계속 밀려왔다.


지금이 딱 그 상황이다. 정신과를 다니고 심리상담을 받으며 내가 풀지 않고 미뤄둔 숙제가 얼마나 많은지를 확인하는 중이다. 우울, 불안, 강박, 공황, 해리, 회피, 중독 등. 얽히고 설켜서 하나를 풀려고 하면 다른 게 딸려 나온다. 마치 풀 수 없는 매듭처럼 느껴진다. 지금까지 이렇게 살아왔는데 변할 수 있는 게 맞나 싶기도 한다. 내 과거를 바꿀 수 없다는 사실에 절망감도 느껴진다. 내가 그때 그러지 않았다면 하고 자책하고 후회한다. 문제를 떠올리거나 인식하게 되는 순간들에는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괴롭고 힘들다.


목걸이를 풀 때도 그랬다. 시간 낭비를 하는 같았다. 그냥 하나 사주는 빠르지 않을까? 싶었다. 아마 내가 돈이 많았다면 새로 사줬을지도 모른다. 근데 난 그럴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거실 바닥에 누워 하나씩 풀기를 반복했고, 수십 분간 혈투를 벌인 끝에야 목걸이를 푸는 데 성공했다. 외출을 했다 돌아온 누나는 어떻게 풀었냐면서 안 되면 버려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고 했다. 모르긴 몰라도 그 이후에는 엉키지 않게 따로 잘 보관했을 거다.


내 인생도 마찬가지 아닐까 싶다. 이건 못 풀겠다고 갖다 버릴 수도 없다. 인생이 마음에 안 든다고 반품이나 교환을 할 수도 없다. 엉망진창인대로 살거나, 힘겹게라도 변하는 것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과거의 잘못을 반복할 순 없기에 이제부터라도 풀어보려 한다. 다 포기해버리고 싶은 생각이 시도 때도 없이 올라오지만 짜증 난다고 엉켜놓지만 않는다면, 풀던 대로 두고 딴짓을 할지라도 다시 돌아온다면 조금씩 풀 수 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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