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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호 Sep 04. 2021

배고프다고 아무거나 주워 먹으면 안 된다고 했지

의미 있는 것만 남기고, 빈 공간은 소중한 것으로 채워라



금요일은 조금 바쁘다. 일을 하다가 오후에 글쓰기 강의를 하나 듣고, 저녁을 먹고서는 문화콘텐츠 관련 수업을 하나 듣는다. 중간에 외부 프로젝트가 생겨서 일을 해야 하거나 약속이라도 생기면 끼니를 때우다시피 하는 일도 다반사다. 그렇게 바쁜 하루를 보내고 나면 뿌듯함이 아니라 공허함이 남는다.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감각으로 외로움과 공허함을 덮으려는 시도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당장은 안 보여도 들춰보면 공허함은 항상 자리를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는데도 열정이라는 불이 활활 타오르지 않는다. 수업을 듣는 순간에는 괜찮다가도 혼자가 되는 시간이 오면 불이 피쉬이이익 꺼진다.


코로나 핑계로 사람을 거의 안 만나고 있다. 그만큼 시간은 생겼다. 근데 나는 그 시간을 강연들로 채웠다. 알고 싶은 게 많기도 했지만 원치 않는 만남을 거절할 명분이기도 했다. 사람을 만나는 게 무서웠다. 그런데 내가 가장 두려워하고 무서워했던 사람은 바로 나였다. 나는 나라는 사람과의 만남을 피해왔다. 나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가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나의 못나고 불완전한 모습을 대면하는 게 두려웠기 때문이다. 사람을 만나면 내 모습을 직면하게 된다. 실수를 하거나 무언가를 잘못할 수도 있다. 내 마음에 안 드는 일들이 일어날 수도 있다. 그런 걸 다 피하고 싶었다. 내 머릿속과 이성이라는 안전한 공간에만 머물려 하고 있었다. 공허함과 외로움은 나의 진짜 모습을 외면한 대가였다.


외로움과 불안함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기로 했다. 강의가 끝났으니 어떤 강의를 신청할까 하다 창을 닫았다. 공허함은 마구잡이로 채운다고 채워지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공허함에 다시 속을 뻔했다. 공허는 내면의 결핍에서 시작된 것이기에 외부의 존재가 채워줄 수 없다. 일시적으로는 가득 찬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그 존재가 사라지면 다시 공허함을 느낄 뿐이다. 내 마음이 결핍된 상황이라면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막연히 채우려 하지 말고 내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나는 무엇을 원하는지 고민해야 한다.


결핍이 하는 말을 따르느라 내면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나의 감정을 들여다보지 못했다. 내 삶을 나의 것으로 채우기 위해 다시 읽지 않을 책, 내 인생에 도움이 되지 않는 책, 막연하게 좋다는 이야기에 사두었던 책은 버리거나 판매하는 중이다. 그 책을 다시 찾게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올라오기도 한다. 하지만 내 삶에 의미나 질서를 만들지 못한 채 꽂혀만 있다면 그건 나의 것이 아니다. 왠지 읽어야 할 것 같은 불안함과, 이 정도는 알아야 할 것 같다는 강박에 주도권을 넘겨줄 필요는 없다. 그렇게 읽은 책이 교훈이나 전환점을 가져다 줄 수도 있겠지만 그 시간만큼 나의 관심사를 연구하고 공부할 시간은 줄어들고 있는 셈이다.


관계도 마찬가지다. 기꺼이 만나고 싶고, 시간을 내고 싶은 만남이 아니라면 과감히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 비어있는 시간이 두려워서 일부러 약속을 잡고 일을 만들 필요는 없다. 나 혹은 소중한 사람과의 시간으로 언제든 채울 수 있도록 비워두어도 괜찮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 좋아하는 일로 나의 시간을 채우는 것이 오히려 내 삶을 더 풍족하게 하는 일이다. 의미 있고 원하는 만남만으로 삶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러한 만남이 내 삶의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할수록 내 삶의 만족도가 올라갈 거라는 건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다.


결핍을 채우기 위해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해왔다. 목적지도 모른 채 애써 걷기만 했다. 어디로 가는지, 내가 왜 가는지 모르니 막연히 힘들고 지쳤다. 생각이 너무 많고 말과 행동에 힘이 들어갔다. 다른 사람에게 보이는 나의 삶을 인식하다 보니 삶이 점점 더 부자연스러워졌다. 완전히 지쳐서 쓰러진 후에야 내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를 깨달았다. 주변 사람들에게도 너무 많은 상처를 주었다. 그렇다고 이전의 삶을 반복할 수는 없다. 내 삶을 꾸려가야 할 시간이다. 내게 중요한 게 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찾아야 하는데 일상이 너무 번잡스럽다. 머리에, 일상에 들어 있는 게 너무 많다. 비우자. 공허함에 쫄지 말자. 외롭고 공허할 때는 나와의 시간으로 공허함을 채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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