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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호 Sep 10. 2021

나는 왜 K를 모른 척했을까?

경계성 성격일지도 모르겠다

우리 집은 비가 오면 창문이 덜덜거리고 겨울이면 그 사이로 찬바람이 들어왔다. 추위를 많이 타는 나는 집에서도 떨 정도였지만 난방비를 아껴야 한다고 보일러를 몇 시간만 틀었다. 패딩을 입고 이불을 두 겹씩 덮고서야 잠에 들 수 있었다. 그런 모습이 부끄러워서 친구를 집에 부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K를 생각하면 우리 집 거실에서 뒹굴며 깔깔거렸던 장면이 떠오른다. 양말을 신은 채로 서로에게 간지럼을 태우면서 놀았다. 아무 생각 없이 정말 순수하게 웃었다. 그 정도로 친했다.


이사를 가게 되면서였나. 자연스레 연락이 끊겼다. 핸드폰을 모두 들고 다니던 시절도 아니었으니 집전화가 바뀌면 연락할 방법도 없었다. 그렇게 멀어졌던 K를 다시 만나게 된 건 고등학교에서였다. 학기 초 운동장을 지나 교실로 가는 길에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얼굴을 보자마자 K라는 걸 알아차렸다. K도 나를 보더니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근데 나는 아는 척하지 않았다. K가 아니면 어떻게 하지? 괜히 인사했다가 다른 사람이면 무안하잖아. 이런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이제 와서 K와 인사를 한다는 게 어색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그냥 그렇게 지나쳤다. 그리고 3년간 단 한 번도 아는 척을 하지 않았다. K는 정말 K였다.


나는 '하루살이 인생이다'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산다는 뜻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만은 아니었다. 나는 나의 삶이 하나로 통합된 것으로 인식하는 게 어렵다. 초등학생 때의 나, 중학생 때의 나, 고등학생 때의 나가 모두 다르다. 시기적으로도 다르지만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서도 다르다. 학교에 있을 때, 일을 할 때, 집에 있을 때 모두 다른 사람처럼 느껴진다. 그러니 초등학생 때 친구를 고등학생 때 아는 척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왜냐면 K와 친한 사람은 초등학생 때의 OOO이기 때문이다. 고등학생 OOO는 K와 아는 척을 할 수 없었다.


친하게 지내던 사람과 갑자기 연을 끊어버리는 일은 이전에도, 이후에도 있었다. 다툼이 있거나 상대가 잘못한 경우도 있었지만 내가 갑자기 돌변해버리곤 했다. 상황은 조금씩 다르고, 친구, 연인, 동료 등 사람도 달라졌지만 패턴은 같았다. 그리곤 정말 아무 일 없다는 듯 행동했다. 그 사람과 친했던 '나'와 오늘의 '나'는 마치 분절되어 있는 것처럼 행동했고, 실제로 그렇게 느껴졌다. 시간, 장소, 사람, 관계, 기분 등에 따라 나라는 사람이 시시각각으로 변하기 때문에 오히려 한 사람과 지속적인 관계를 맺는 게 더 어려웠다. 왜 연락하지 않느냐는 친구의 말에 내가 왜 연락을 해야 하냐고 민감하게 반응하기도 했다.


두려움 때문이었다. 혼자가 될까 봐 무서웠다. 외로웠다. 엄마는 보호자라기보다는 선생님에 가까웠고, 아빠는 평소에는 괜찮은 척, 밝은 척하다가 술만 마시면 폭력을 행사했다. 그 사이에서 나는 단 한순간도 안정감을 느끼지 못했다. 살아남으려면 친구들이라도 있어야 했다. 그래서 사람들을 웃기려 하고, 부탁을 들어주고, 뭐든 같이 하려고 했다. 그렇게라도 소속감을 느끼려 했다. 담배를 피자는 말을 거절하지 못하기도 하고, 필요 없는 물건을 사달라는 부탁이나, 방학숙제를 대신해달라는 것도 거절하지 못했다. 거절하면 왕따가 되거나 맞을 거라고 생각했다. 가족으로부터 시작된 타인에 대한 불신은 친구관계에도 이어졌다.


내가 원하는 게 뭔지, 내가 누구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모른 채로 이리저리 휘둘리며 살았다. 사람들을 만나 실컷 웃고 떠들다가도 돌아서는 순간 무표정이 됐다. 내가 이상한 사람인 거 같았다. 집에 오면 아빠가 또 술을 마시고 들어와서 새벽까지 가족들을 괴롭혔다. 힘든 일이 있어도 이야기할 수 없었다. 가족은 항상 본인이 더 힘들다는 걸 온몸으로 외치고 있었고, 친구들에게는 우울한 모습을 보일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물처럼 살았다. 내 모습을 잃고 타인의 요구를 들어주고 맞춰줬다. 그게 편했다. 그렇게 나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정말로 과거의 사건들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난다 하더라도 제삼자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것 같다. 그 시절에 살았던 개별적인 '나'를 바라볼 뿐이다.


나는 누구지? 내가 어떻게 살았지?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지?


여전히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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