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광호 Sep 22. 2021

우리 모두 사장님

  어쩌다 보니 프리랜서, 혹은 플랫폼 노동자로 살고 있다. 한 플랫폼의 프로젝트가 끝날 때쯤 다른 플랫폼에서 일을 시작하거나, 일했던 곳의 제안을 받아 계약을 맺고 비슷한 일을 하는 식이다. 그렇다고 내가 원하는 일만 할 수 있는 건 아니라서 완전히 다른 분야의 일을 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짧게는 몇 주에서 몇 달 정도 집중적으로 일을 할 사람을 구하기 때문에 새로 오픈되는 프로젝트를 틈틈이 모니터링해야 한다. 얼마 전에는 즐겨찾기를 해둔 사이트에 채용 공고가 올라왔다. 크라우드 웍(특정한 작업 기회를 불특정 다수에게 주는 방식) 플랫폼에서 데이터를 가공하거나 검수하는 아르바이트를 뽑는다는 채용 공고였다.


  다행히 비슷한 일을 해봐서 작업에 어려움은 없을 듯했다. 하지만 채용이라는 제목을 보고 근로계약을 상상했던 나의 기대와는 다르게, 작업 수량에 따라 단가를 계산해 급여가 지급되고, 3.3%가 원천징수되는 방식이었다. 회사 소속으로 채용되는 게 아니라 프리랜서나 사업자로 계약을 하는 것이었다. 내심 근로계약을 했으면 싶었기에 아쉬움이 남았다. 정해진 시간에 풀타임 근무를 하고, 메신저로 구체적인 업무 지시를 받는데도 프리랜서로 계약하는 게 내키지 않기도 했지만, 작업자 간의 지나친 경쟁으로 피로를 느끼는 때가 있기 때문이다.


  온라인 기반의 플랫폼 노동은 프로젝트 기간과 총 작업 데이터가 한정된 경우가 많아 작업자나 검수자끼리 경쟁이 생길 수밖에 없다. 어느 정도의 경쟁은 데이터의 품질을 높이는 장점도 있을 것이다. 문제는 더 많은 작업 데이터를 선점하기 위해 불량 데이터를 제출한 뒤 수정하거나, 검수자의 권한을 악용해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수준의 속도로 검수를 하는 등 플랫폼의 기능을 악용하는 경우다. 이렇게 되면 작업 데이터의 품질도 낮아지고, 다른 작업자들의 기회를 선점하는 셈이 된다. 물론 초창기와는 달리 플랫폼에서도 부정 사례들을 적발하고, 불법 행위로 규정해 피해를 보상하게 하는 등 예방책을 마련하고 있다.


  일한 만큼 벌게 된다는 건 장점이자 단점이 된다. 업무 시간과 강도를 본인이 정해야 하는 사업자는 경쟁 속에서 어쩔 수 없이 무리하게 된다. 조금이라도 일을 더 해야 할 것 같고, 할 수 있을 때 수익을 내야 할 것만 같다. 그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어서였을까. 최근 발생한 배달 오토바이 운전자 사망사건에도 안타까움이 남았다. 도로 위 일터에서 죽고 싶었던 사람도, 사람을 다치거나 죽게 하고 싶었던 사람도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반복되는 사고는 비난이나 처벌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상시적인 불안은 노동자들을 비정상적인 상황으로 내몬다. 불법이라는 걸 알면서도 신호위반을 하거나 인도에서 주행하는 오토바이들도 마찬가지다. 지금까지는 플랫폼과 노동자 간의 불평등한 구조와 비대면 사회의 배달 서비스의 중요도를 알기에 어느 정도 눈을 감아주기도 했다. 하지만 반복되는 사고로 여론이 달라지고 있다. 먹고살기 위한 일이라 해도 불법 행위가 정당화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반복되는 문제 해결을 위해, 플랫폼 노동자들의 불안정한 소득과 비전형적 고용으로 인한 불안을 다루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러한 열망을 담아 플랫폼 노동자를 위한 공제회의 설립이 추진되고 있다. 생활안정자금 대출, 쉼터 조성 등의 사업은 물론 노동법 확대, 사회보장제도 편입 등의 법률적 문제에도 나서 비정형 노동자들의 조직화를 지원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 밝혔다.


  모두가 ‘사장님’인, 생존마저 각자의 몫이 된 시대에 상호부조의 원리를 적용해온 공제의 의미를 새기며, 플랫폼 노동자 공제회의 출범을 응원한다. 물론 공제회가 요술 방망이처럼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도 노동자들에게 소속과 안전망이 생긴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본다. 처벌과 감시를 통해 불법행위를 막는 것과 함께, 안정적인 노동 환경에서 일할 수 있는 기반이 조금이라도 만들어지길 바란다.

매거진의 이전글 왜 하필 그 기억이 날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