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광호 Sep 26. 2021

그와 이별하는 방법

헤어지고 싶다

그는 오래전부터 나를 지독하게 쫓아다녔다. 이젠 별로 마주치고 싶지 않다. 몇 번이고 내 삶에 끼어들지 말라고 소리도 쳐보고, 울면서 원망도 해봤지만 잠시뿐이었다. 울고 싶은 날이나 좌절할 수밖에 없는 날, 절망에 쌓여 숙였던 고개를 들면 어느샌가 그가 나타나 아무 말 없이 나를 안아주었다. 아무 걱정하지 말라고. 항상 내 곁에 있겠다고 했다. 방금 전까지도 그가 싫다고 몸서리쳤지만 그의 품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에게 안겨 있는 순간에는 모든 세상이 그의 존재로 가득 찼다. 무의미한 세상에 존재하는 건 오직 나와 그뿐인 것 같았다.


그와의 만남은 점점 더 강렬해졌다. 만나는 날도 많아지고, 만나는 시간도 점점 길어졌다. 주변 사람들도 입을 모아 헤어지라고 했다. 나도 알았다. 그가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걸. 그는 나를 쓸모없는 사람으로 만들고, 자신에게 의존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나는 헤어지는 법을 몰랐다. 헤어지자는 말을 꺼내보아도 그때뿐이었다. 그와의 관계에 중독되어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그와 헤어질 수 없으니 이렇게 살 수밖에 없다고 여겼다.


이 글을 쓰려고 마음먹고 컴퓨터에 앉은 순간에도 그는 찾아왔다. 나는 흰 화면을 보고 몇 자를 적다가 내가 쓸 수 있을까? 이렇게 써봐야 아무도 보지 않는, 의미 없는, 일기장에 가까운 글이 되는 건 아닐까? 싶어 쓰고 지우기를 반복했다. 그러자 갑자기 책상 위를 치워야 할 것 같고, 밥을 먹어야 할 것 같고, 이메일을 확인해야 할 것 같았다. 글감은 사라지고 다른 생각들이 머리를 채웠다. 이게 아닌데. 글을 쓰려고 했는데? 나는 왜 이렇게 집중을 못 하지? 어느새 그가 찾아왔다. 깊은 백허그를 했다. 온몸이 축 쳐졌다. 눈꺼풀이 내려앉고 내 안의 모든 에너지가 빠져나갔다. 


그는 '내가 있는데 무슨 걱정이야? 이런 거 안 해도 돼. 나에게 모든 걸 맡겨.' 그렇게 말했다.


너의 이름은

오해가 있을지도 모르니 이쯤에서 그의 존재를 밝혀야겠다. 

그의 이름은 무기력이다. 풀네임은 학습된 무기력.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은 그를 마주치지만 어떤 사람은 썸만 타고 쿨하게 지나간다. 모든 사람이 나처럼 그와의 관계를 이어가는 건 아니다. 예를 들어 사업에 실패했다 하더라도 가족이나 친구들의 지지가 있다면 실패를 딛고 일어설 수 있다. 하지만 사업도 실패하고, 주변 사람들도 모두 떠나가고, 몸도 아프기 시작한다면 좌절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나를 지배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무기력과의 만남에 빠져들다 보면 나도 모르게 그와 모든 일상을 함께하게 된다.


그에게서 벗어나는 법 

전문가들의 공통된 조언은 작은 시도와 성공으로 시작하라는 것이다. 절대 무리하지 말고 무조건 할 수 있는 작은 계획을 세운다. 아침에 일어나서 머리 감기, 하루에 5분 글쓰기, 옷 갈아입기, 책장 한 칸 정리하기 같은 것들이다. 이것도 힘들다면 더 작은 목표를 세워도 좋다. 계획에 지배당해서는 안 된다. 목표는 언제든 수정할 수 있다는 개방적인 사고를 가져야 한다. 하루 30분 산책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는데 발목이 아프다면? 그럴 땐 과감히 목표를 수정해도 된다. 오늘은 발목이 아프니까 산책하지 말고 집에서 스트레칭 하기. 이런 식으로 유연하게 대처하면 된다. 목표를 지키지 못했다고 자책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 오히려 더 무기력해진다. 할 수 있는 걸 하면서 아주 조금씩 목표를 넓혀 나가야 한다.


아침에 일어나서 화장실에 가는 것도 불가능할 정도의 우울증이 왔을 때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고 생각했다. 목표를 세우는 걸 못하겠는데 목표를 세우라니. 그러니까 목표를 세우고 실천하는 걸 어떻게 하냐니깐요? 저는 일어나서 머리 감는 것도 못하겠어요. 이런 생각이었다. 정말이었다. 뛰어내리고 싶어도 창문을 열 힘이 없어서 못 뛰어내렸다. 게다가 우리 집은 저층이라 위로 올라가야 하는데 문을 열고 나갈 힘도 없었다. 그러니 이런 말들은 우울증과 무기력에 빠져보지도 않은 선비들이 엣헴, 엣헴 수염이나 만지작거리면서 하는 말이라 여겨졌다.


약물 치료를 받고 상황이 조금 나아져 작곡에 도전도 해봤다. 오래전부터 하고 싶었던 일이었으니까. 근데 삶은 더 힘들어졌다. 청음 시간에는 아무리 노력해도 졸음을 막을 수 없었고, 새벽에 과제를 하면서 무기력이 다시 찾아오기도 했다. 왜일까? 내가 하고 싶다고 해서 시작했는데. 작곡을 하겠다는 목표도 세웠는데? 곡을 쓰겠다는 목표는 너무 추상적이고 광범위했다. 어떤 장르의 곡을 쓸지, 곡을 쓴다는 것에 믹싱이나 마스터링도 포함하는지, 어느 정도의 완성도를 원하는지 정하지 않은 채 '작곡을 하겠다'는 목표를 이루는 건 불가능했다. 오히려 아직도 한 곡도 쓰지 못했다는 생각에 우울과 무기력은 커져만 갔다. 


목표 설정은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나의 목표가 성취 가능한지 확인하려면 나에 대한 객관적인 인지가 필요하다. 나는 1년이라는 기간을 주고 그 안에 상업적으로 발매 가능한 수준의 음원을 내고자 했다. 목표만 떼어놓고 보면 실현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1년이라는 시간만에 멋있는 음악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음악이나 음향에 대한 지식이 전무하다시피 했고, 몸과 마음에 병이 있어 주기적으로 병원에도 가야 했다. 돈도 벌어야 했다. 단순히 의지만으로 이룰 수 있는 목표가 아니었다. 나에 대한 객관적인 분석을 통해 목표를 세운 게 아니라, 나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목표를 세웠다. 그러니 실현 불가능했고, 다시 무기력을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무기력에서 벗어나려면 나의 상황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분석하는 게 먼저다. 일어나서 밥을 먹는 것도 힘든 사람이 사회생활을 하겠다고 덤비면 당연히 힘들 수밖에 없다. 의지로 버틸 수는 있겠지만 몇 단계를 뛰어넘어버리는 건 쉽지 않다. 번아웃이 되어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면 오히려 더 절망하고 실망할 수 있다. 또다시 무기력과의 만남이다. 무기력은 반복될수록 더 강렬해진다. 그러니 집착과 욕망을 버리는 게 우선이다. 사회에 필요한 사람이 되어야 할 것 같고, 가족에게 좋은 사람이어야 할 것 같고, 또래 사람들에게 뒤쳐지는 것 같고. 이런 책임감이나 열등감마저 알고 있어야 한다. 내 계획이 결핍이나 집착을 반영하고 있는 건 아닌지 말이다.


나의 오늘 목표는 하나의 글을 쓰는 것이었다. 시작할 때는 불가능할 줄 알았다.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무기력이라는 녀석이 나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다. 근데 지금은 내 곁에 없다. 어디 근처에서 서성거리다 다시 나타날 기회를 보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작은 목표를 하루하루 반복하다 보면 그도 언젠간 질려서 사라질지도 모른다. 언제 취직을 해서 밥벌이를 할 수 있을지 두렵고 무섭지만 그건 당장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오늘은 하나의 글을 썼다. 그럼 됐다. 잘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낯선 남자의 따뜻한 손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