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베이터를 타는 데에도 나만의 규칙이 있다.
1. 걸어 다니는 걸 기본으로 한다.
2. 짐을 옮겨야 하거나, 몸이 좋지 않을 때에는 엘리베이터를 타도 된다.
3. 단, 엘리베이터가 1층에 서 있을 때는 2에 부합하지 않아도 탈 수 있다.
어제는 산책을 다녀왔는데 1층에 엘리베이터가 서 있었다. 규칙 3에 부합하기 때문에 엘리베이터를 탔다. 그런데 위에 한 명이 따라 탔다. 그 사람은 고층을 눌렀고 나는 3층을 눌렀다. 3층인데 그냥 걸어갈 걸 그랬나? 생각이 올라왔다. 3층에 사는 사람이 엘리베이터를 탄다고 손가락질할 것 같았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데 뒤에서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기분이 확 나빠졌다. 역시 엘리베이터를 타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 생각에 집에 돌아와서도 뒤숭숭했다.
정신과에서 "누군가 나를 비난하는 것은 생각이 드나요?"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전혀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때는 비난감이 삶을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에 누군가 나를 비난한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우리가 살면서 공기를 의식하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어제는 그 공기가 느껴졌다. '저 사람이 나를 비난한다'라는 구체적인 느낌이었다. '누군가 나를 비난하는 것처럼 들린다'는 감각을 느꼈다는 건 사실이지만 실제로 그 사람이 나를 비난했는지는 알 수 없다. 헛기침이나 혼잣말이었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내가 그 사람의 소리를 비난이라 느낀 건 '저층에 사는 사람은 엘리베이터를 타면 안 된다'는 내 신념 때문이다. 내가 못났고, 잘못된 행동을 했다는 생각에 세상을 왜곡하면서까지 스스로를 벌하고 있는 셈이다.
내가 만들어놓은 좋고 나쁨에 대한 기준이 너무 엄격하다. 정말로 저층에 사는 사람에게는 엘리베이터를 탈 권리가 없는가? 3층에 살면서 엘리베이터를 탄 건 욕먹을 일인가? 당연히 그렇지 않다. 일단 대부분의 아파트에서 1층을 제외한 세대에는 동일한 엘리베이터 사용료가 부과된다. 또한 아파트에 살지 않는 손님도 엘리베이터를 탈 수 있으므로 돈을 냈든 아니든, 어디에 살든 탈 수 있다. 만약 저층에 사는 사람은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비난을 했다 하더라도, 그 기준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그 비난이 부당하다고 판단할 수 있다. 당연히 이의를 제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스스로 잘못하고 있다고 생각한 채로 엘리베이터를 탔기 때문에 누군가 중얼거리는 작은 소리마저 비난으로 느꼈다. 바꿔야 할 건 내 생각이다. 삶 깊은 곳에 깔린 죄책감, 부적절감, 낮은 자존감, 무망감, 허무. 이것들이 다시 나를 힘들게 하는 악순환의 고리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세상은 그 자체로 의미가 발생하는 게 아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인식이 삶을 구성한다.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내 마음을 알아야 한다. 색안경을 쓰고 세상을 바라봤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한 순간에 벗어버릴 수 없다 하더라도 내 관점으로 보정된 세상이라는 걸 인지할 필요가 있다.
엘리베이터에서 나를 비난한 건 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