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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호 Oct 08. 2021

[인터뷰] 만들어진 죄책감

 J에게 나를 묻다_21.10.05.


[인터뷰] 만들어진 죄책감

- J에게 나를 묻다_21.10.05.


1.      


  “저와의 에피소드 중 가장 기억나는 게 있다면 무엇인가요?”


  나는 J에게 질문을 던지며 어떤 대답을 할지 예상된다는 말을 덧붙였다. 하지만 J는 내 예상과 전혀 다른 대답을 내놓았다.


  “오빠가 뭘 예상했는지 알겠는데, 그게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아니야”    

 

  에이, 그럴 리가. 어떻게 그 순간이 어떻게 떠오르지 않을 수 있지? 나는 내가 J에게 잘못했던 순간을 떠올리며 또다시 죄책감을 느꼈다. J도 당연히 그 순간을 떠올릴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J의 표정에 거짓은 없었다.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는데 오빠가 건너편에서 걸어오는 강아지를 보더니 내 귀에 대고 ‘시바 새끼야~’라고 했잖아. 근데 시바견 아니고 웰시코기길래 ‘이거 시바 아니고 코기야!’라고 했더니 오빠가 ‘나 시바라고 한 적 없는데? 그냥 욕 한 건데?’라고 했던 거? 여행에서 뷰 좋은 카페에 같이 갔던 거? 그런 재밌었던 일이나 좋았던 순간이 떠올라”


  J와 나는 기억의 우선순위가 달랐다. 나는 내 잘못을 가장 먼저 떠올렸지만, J는 즐거웠던 일, 행복했던 일을 떠올렸다. J와 내가 같은 하루를 보낸 뒤, 둘의 뇌를 스캔해 ‘행복’이라는 키워드로 검색한다면 더 많은 값이 나오는 사람은 J일 수밖에 없었다. 같은 하루를 보내 놓고도 자신의 잘못을 가장 먼저 기억하는 사람과, 즐거웠던 일을 떠올리는 사람 중 누가 더 삶의 만족감이 클지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죄책감을 느끼는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통해 결핍을 채우려는 욕망은 일상의 행복마저 잡아먹었다. 죄책감을 느끼는 사람이 어떻게 웃을 수 있고, 행복할 수 있을까. 그러니까 나는 행복해서는 안 된다. 행복한 순간이 일부 있더라도 다시 죄책감을 느끼고 속죄해야 한다. 그래야 궁극적으로는 착한 사람이 되어 모든 사람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 그런 신념이 내 안에 있었다. 그러니 타인의 인정과 사랑을 받기 위해 죄책감을 이용하고 있었던 셈이다.


  그래서 내 인생이 행복해졌던가? 전혀. 마음은 항상 괴롭고, 행복은 일시적이고, 죄책감은 주기적으로 올라오고. 오히려 양치기 소년처럼 진짜 죄책감을 느껴야 할 때와 그렇지 않을 때를 구분하지 못해 소중한 양들을 모두 잃어버렸다. 그 사실을 양들이 다 떠나간 뒤에야 깨달았다. 아무리 나를 자책하고 죄책감을 느끼며 슬픈 표정을 지어봐야 양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2.     


  나는, 용서받는 자들이 부러웠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사람들의 인정과 사랑을 원했다.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죽지 않고 살아가려면 타인의 용서와 인정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책을 일삼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잘못한 점을 먼저 떠올렸고, 죄책감을 항상 가슴에 품고 다녔다. 죄책감을 오랜 시간 갈고닦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었다가 기회가 되면 ‘짜잔!’ 내놓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여러분, 제가 이렇게 오래 죄책감을 지니고 살았습니다. 이 정도면 죄를 사하는 데 충분하지 않겠어요? 그렇죠? 저는 아무도 보지 않을 때에도 죗값을 성실히 치르고 있었다고요.”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진짜 죄책감은 외부로 나타내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해서 용서를 구하는 데에도 인색했다. 용서를 구하는 행위가 가식이나 연기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잘잘못을 따지기보단 모든 잘못을 내가 껴안는 게 차라리 편했다. 결과적으로 사람들이 내 편을 들어주고, 나를 좋은 사람으로 평가할 거라고 여겼다. 하지만 모든 문제를 참고 넘어가는 나는 있는 그대로의 내가 아니라, 현재의 내가 원하는 미래의 내 모습에 가까웠다. 그런 나를 인정해주는 타인들의 시선을 잔뜩 의식하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J는 “이것만큼은 고쳤으면 좋겠다는 게 있어?”라는 나의 질문에 “자책하지 말기!”라고 대답했다. 내 문제가 아닌데도 내 문제로 귀결되는 경우가 있다면서 말이다.


  이어 J에게 나의 장점을 묻자 “성실한 건 아닌데 약속을 잘 지켜”라고 말했다. 둘의 차이가 뭐냐고 묻자 “성실은 하고 싶어서 하는 거고요. 착실은 아무튼 하는 거요.”라고 대답했다. 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해야 하므로 했던 수많은 시간들이 떠올랐다. 몸과 마음이 다 소진되었다는 걸 느끼면서도 오직 ‘해야 하니까’라는 당위에 기대 꾸역꾸역 일을 해나갔던 순간들이었다.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이고 싶었고 ‘믿을만한 사람’이고 싶었다. 결과를 미리 정해놓고 나의 인생을 끼워 맞췄다. 때로 맞지 않는 퍼즐 조각이 남으면 나를 구겨 넣어 억지로라도 맞췄다. 어딘가 삐걱거리긴 했지만 그래야 마음이 편했다.


  그렇게 차곡차곡 쌓은 업보는 우울증으로 돌아왔다. 남을 돌보느라 나를 돌보지 않은 죄였다. 나를 사랑하지 않은 대가는 컸다. 지금까지 해온 모든 일이나 관계가 모두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이쯤이면 바닥인가 싶어 발을 힘껏 차 보면 여전히 더 깊은 바닥이 있었다. 인정하지 않으려고 발버둥 쳐봐야 힘만 빠졌다. 인정해야만 했다. 내가 쌓아놓은 모습은 진짜 내 모습이 아니라는 걸. 가짜 모습은 모두 버리고 지금부터 새롭게 쌓아 올려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     

 J와의 인터뷰를 시작으로 ‘나’를 알아가기 위한 여정을 시작한다. 주변인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내가 생각하는 나의 모습과 주변 사람들이 생각하는 나의 모습이 어떻게 다른지 확인해볼 예정이다. 내가 그렇게 못난 사람인가? 쓸모없는 사람인가? 알 수 없다. 나의 생각은 생각일 뿐이다. 옳은지 그른지는 확인해봐야 한다. J와 인터뷰를 하기 직전에도 ‘이런 거 해서 뭐 해’, ‘오그라드는 거 같은데’, ‘내가 정신이 이상해서 갑자기 이상한 짓을 하는 건 아닐까?’, ‘이런 짓을 누가 받아주겠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J는 나의 질문에 진지하게 임해주었다. 이미 내 생각은 벌써 하나 틀렸다. 내가 알고 있는 ‘나’는 진짜 나인가? 지금부터 취재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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