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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호 Oct 09. 2021

[인터뷰] A씨 "제 마음을 알아가는 중이에요"

나와의 인터뷰


* 해당 글은 저 자신을 대상으로 한 가상 인터뷰입니다.


A씨의 나이는 29세. 약 2년 전 자신의 우울과 불안이 일반적인 수준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자신과의 대화를 시도하는 중이다. A씨는 정신과를 찾아 다면적 인성검사를 받은 뒤 한 알에서 반알 정도의 약을 처방받았다. 주치의는 한 두 달 만에 가벼운 우울증이었다며 더 이상 내원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지만 A씨의 삶은 그대로였다. 죄책감과 자책, 불안에 시달리다 모두와의 연락을 끊고, 밥 먹는 것조차 힘들어했다. 하지만 죽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면 살아야 하는 이유를 알아야겠다며 자신의 과거를 들여다보는 중이다.


제 마음을 알아가는 중이에요

- 요즘 어떻게 지내고 계신가요?


"심리상담을 받으면서 제 마음을 알아가는 중이에요. 제 마음을 모르고 살았더라고요. 열심히 하면 뭐든 될 줄 알았는데 자꾸만 절망하고 좌절하는 일이 반복되는 게 그래서였더라고요. 어려서부터 꿈이었던 음악도 해보고, 글도 써봤지만 뭔가 꽉 막힌 기분이 들었어요.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걷는 기분이랄까요. 한 발 내딛는 것도 너무 힘들더라고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건강가정지원센터에 도움을 청해서 상담을 받고 있는 중이에요"


- 심리상담은 도움이 되던가요?


"사실 처음에는 이게 무슨 소용이 있나 싶었어요. 상담이 현실적으로 어떤 도움이 되냐고 대놓고 묻기도 했고요. 그런데 4~5회 차가 넘어가니까 제 이야기를 조금씩 하게 되더라고요. 혼란이 오기도 했어요. 제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지금 느끼는 감정이 뭔지 저도 잘 몰랐으니까요. 게다가 가족의 이야기도 들어봐야 할 것 같다면서 누나와 아빠를 모셔오라고 하는데 반발감이 들더라고요. 제 나이가 곧 서른인데 초등학생처럼 보호자를 데려오라니요. 하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 가족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지, 나에게는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직면하게 되었어요."


- 좀 더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주실 수 있을까요?


"저는 제가 중독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거든요. 그냥 게임을 좋아하고, 술을 즐기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저희 아버지도 술을 좋아한다고만 생각했죠. 근데 아버지 이야기를 해드렸더니 바로 중독이라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직접 만나보지도 않고 어떻게 알지? 상담사님이 너무 성급한 거 아닌가? 했어요. 근데 그런가? 생각하는 순간 아차 싶더라고요. 새벽까지 술 마시고 버스 종점에서 내리고, 다른 집 문을 두드리고 했던 기억이 퍼뜩 떠올랐거든요. 아빠만이 아니라 저도 알코올 중독이었어요. 그 사이에 건강도, 인간관계도 문제가 생겼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어요. 이제는 술을 끊었어요"


- 술을 끊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요?


"맞아요. 술을 끊으면 사람들하고 어떻게 친해지지? 뭐 하고 놀지? 회식 자리를 피할 수 있나? 이런 생각이 올라오더라고요. 저만 사회생활을 못 할 것 같고 혼자가 될 거 같다는 공포가 올라와요. 사실 끊었다기보단 참는 중이에요. 한참 술을 마셨을 때 제가 했던 잘못들을 되돌아보면 술을 안 마시는 게 훨씬 이득이라는 걸 이젠 알았으니까요."


- 그런데 아버지가 술을 많이 드시면 자녀들은 술을 안 먹게 되지 않나요? 의외인 거 같은데요?


"저도 스무 살 때 까지는 절대 술을 입에 안 댈 거라고, 아버지처럼 살지 않을 거라고 다짐하곤 했어요. 근데 대학에 가서 술을 마시게 된 거예요. 사람들 사이에 있는 게 좋아서 술을 조금씩 마시기 시작하다가 완전히 중독이 됐죠. 술을 거의 매일 마셨던 거 같아요. 근데 마음속에는 '아빠처럼 살지 않을 거야'라는 게 있으니까 어딘가 불편하기는 했죠. 불일치하고 있으니까요."


제가 저를 속이면서 살아왔더라고요

A씨는 자신의 삶이 파편화되어 있는 거 같다는 생각에 정체성의 혼란을 겪었다고 했다. 본인을 '물'과 같다고 표현하기도 했는데, 물이 그릇에 따라 모양이 바뀌듯 어떤 사람과 있느냐에 따라 자신의 모습이 달라지는 것 같기 때문이라고 했다. 최근에는 내가 누구인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 수가 없어 본인의 일기장이나 글들을 하나씩 살펴보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일기장에서 자신도 모르고 있던 본인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했다며 글을 쓰는 습관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덧붙였다.


- 전에 써놓은 글들을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고 하던데요. 어떤 글이었나요?


"대학교 교양 시간에 썼던 글인데요. 완전히 거짓말을 써놓았더라고요. 당시에는 거짓말이라고 생각을 못 했는데 지금 보니까 완전 반대더라고요. 인생이 이제 좋아졌고, 아버지가 좋아졌고, 술도 좋다 이런 식이었어요."


A씨가 내민 종이에는 "나는 이제 아버지가 좋다. 그리고 아버지 못지않게 술이 좋다"라는 문장이 쓰여 있었다


- 그게 진심이 아니었던 거예요?


"당연하죠. 아빠처럼 술을 먹지 않겠다고 해놓고 술을 마시는 제 모습을 설명할 방법이 없으니까 합리화를 했던 거 같아요. 아빠도 좋고 술도 좋고 내 인생도 좋아졌다는 식으로요. 완벽한 방어기제인 거죠. 제가 저 스스로를 속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게 쉽지 않았어요."


- 그러면 지금은 어떻게 그 생각에서 벗어나실 수 있었던 거예요?


"심리상담을 받고, 관련된 책을 읽으면서 제가 중독자에게 중독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거든요. 그렇게 저도 공동 의존자이자 알코올 중독자가 되어서 주변 사람들에게 똑같이 상처를 주고, 잘못을 하고 있다는 걸 뒤늦게 알았어요. 저는 지금까지 갈등 상황을 회피하고,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술을 끊겠다는 거짓말을 반복했어요. 그럴 의지가 없었으면서요. 제 의지가 없으면 그 누구도 제 삶을 바꿀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사실 변하려는 의지보단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었다는 죄책감이 더 큰 거 같아요. 그게 너무 힘드니까 다시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으려고 변화하는 쪽을 택할 수밖에 없었어요."


- 일종의 방어기제인 거 같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술 말고 다른 쪽으로도 방어기제를 사용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신 건 없나요?


"어려서부터 저는 상황을 왜곡해서 받아들였더라고요. 우리 집이 역기능적이다는 걸 인정하지 못했던 거 같아요. 어린 나이에 부모님을 원망하거나 싫어한다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요. 어떻게든 사랑받고 인정받으려고 애썼어요. 그래서 우리 집이 행복하고 화목한 가정이라고 단정 지었어요.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거죠. 불행하거나 폭력적이라는 생각 자체를 부정하고 억압해버렸어요. 예전 일기장을 봐도 그런 내용이 나오더라고요."


초등학생 때 쓴 일기장에서 [우리집 = 화목한 집] 이라는 문장이 발견되었다




이런 문장은 지속적, 반복적으로 발견되고 있다


한참 인터뷰를 진행하던 A씨는 갑자기 마음이 너무 힘들다며 잠시 쉬는 시간을 요청했다. 인터뷰를 중단한 A씨는 창 밖을 바라보기도 하고, 손바닥을 문지르며 불안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자리에서 일어나 크게 한숨을 쉬며 실내를 걸어 다니더니 "더 이상은 안 되겠다"며 "오늘은 인터뷰를 여기까지만 해야겠다"는 중단 의사를 밝혔다. 다른 사람에게 꺼내놓지 않았던 이야기들을 한 번에 하는 게 쉽지 않다고 했다. 우리는 다음 인터뷰 약속을 잡고 A씨의 집을 나섰다. 뒤를 돌아보니 A씨는 책상에 앉아 자신이 쓴 글들을 다시 읽고 있었다.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들이 있는 듯했다. A씨가 과거를 돌아보는 작업이 부디 잘 마무리되기를 빌어본다.  


다면 기자

ifersona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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