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와의 인터뷰_20211103
나의 말과 행동의 가장 큰 동기는 공포와 불안이었다.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서도 답답함과 공허함을 느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아무도 사랑해주지 않을 것이라고 여겼으므로 관계가 항상 불편했다. 내가 부적절한 사람이라는 인식이 저변에 있었다. 내 앞의 사람에 집중하지 못하고 상대방에게 보이는 내 모습에 신경을 쓰느라 바빴다. 나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지 못했다. 인터뷰를 시작하게 된 계기도 내가 나를 모른다는 사실이 너무 싫었기 때문이었다. 원인을 알아야 한다는 강박과, 결핍을 채워야 한다는 갈망이 나를 움직이게 했다.
질문의 답은 정해져 있었다
우울증도 극복의 대상이었다. 우울한 상태, 사람을 만나지 않는 상태는 비정상적이고 사람들을 만나 웃고 떠드는 것이 바람직한 모습이라고 여겼다. '연락을 피하거나 사람을 피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조언'이 인터뷰 질문에 있는 것도 그런 이유였다. D에게 조언을 구하자 D는 이렇게 말했다.
"조금 무책임하다고 느껴지는데"
예상치 못한 D의 대답에 구구절절 설명을 늘어놓았지만 '사람을 피하는 건 문제다'는 인식이 전제된 질문이 맞았다. 나는 사람을 만나지 않고 피해 다니는 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가 우리 사회에 그다지 적합한 인재가 아니라고 생각했고, 내가 생각하는 우리 사회의 적합한 인재란 사회성이 좋고, 조직 문화에 잘 적응하고, 성과를 잘 내는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원하는 삶의 모습은 내 안에 이미 정해져 있었고, 어떻게 하면 그 방향으로 갈 수 있는지를 묻고 있었다.
삶에 정답이 없다는 사실을 자꾸만 망각한다. 막연히 내 안에 존재하는, 하지만 나와 공명하지 않는 소리를 자꾸만 따라가려 한다. 그게 마치 삶의 정답인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그 길을 검증 없이 따라봐야 공허함과 우울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우울증에서 벗어나면 모든 게 좋아질 거라는 기대 역시 착각이었다. 우울증이 조금 완화되니 불안이 오고, 불안이 심해지니 공황 증상이 왔다. "우울증이 사라지면" = "행복해질 거야" 내 안의 공식을 따라봐야 내가 원하는 정답이 나오지는 않았다.
인터뷰도 마찬가지다. 인터뷰를 하면서 듣는 한 마디, 한 마디에 일상이 흔들린다. 하나를 들추면 더 깊은 곳에서 문제가 딸려 나온다. 괜히 건드렸나 싶다. 차라리 그냥 그대로 살 걸 싶은 순간도 있다. 내가 외면한 나의 모습과 과오들을 바라보면 저항감에 휘둘린다. 실제로 나는 심리상담을 받고, 술을 끊고, 인터뷰를 하는 과정에서 쏟아지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일을 하다가 갑자기 엉엉 눈물을 쏟으며 타자를 두드리기도 했고, 여자 친구가 나를 떠날 것 같다는 공포에 사로잡혀 전화를 걸어 그 사실을 고백하기도 했다.
머리와 이성이 앞서고 감정을 무시한 결과가 우울과 불안이었음에도 같은 패턴을 반복한다. 나의 감정이 어떠한가를 바라보기보다는 어떻게 해야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는지 방법을 찾으려 한다. '좋은 사람'이라는 막연하고 추상적인 허구의 목표를 잡으려 애쓸수록 더 고통스럽다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하지만 나에 대한 확신이 없으니 당장 붙잡을 무언가가 필요하다. 그게 지푸라기라도 쥐고 있어야 마음이 놓이는 걸 나도 어찌할 수가 없다.
내려놓을 용기
지금까지 꼭 쥐고 있던 손을 간신히 펼쳤다. 표면적으로는 우울이었던 것이 사실은 분노였고, 그 안에는 사랑받고 이해받고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있었다. 내가 붙잡을수록 고통도 커졌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혼란스럽고, 고통스럽고, 불안하고, 괴롭고, 고독하고, 공허하다. 내 생각에 갇혀 살았다는 사실이 후회되고 허망하다. 삶을 낭비했고, 사람들에게 피해를 줬다는 생각에 뭐라도 해야만 할 것 같은 조바심이 든다. 심장이 콩콩거리고, 밤이 되면 잠에 들지 못한다. 불안이 존재를 앞서버리니 나를 잃고 당위를 따라가게 된다. 사회의 통념이나 부모의 목소리를 내 것이라고 착각하게 된다. 거기에라도 기대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텅 비어버렸다.
"과거의 너를 한정해서 이야기하면 자신을 잘 모르는 거 같았어. 지금은 몰라"
"나는 나를 잘 모른다." D는 현재의 내 모습은 잘 모른다며 과거로 한정했지만 지금의 나를 설명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문장이다. 다른 문장은 쓸 수가 없다. 그럼에도 내가 하고 싶다고 여겼던 일이나, 내가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것들의 근원이 우울과 불안이라면, 불안과 우울이 사라졌을 때 그것들마저 모두 잃게 될 것만 같은 두려움이 든다. 하루에도 몇 번씩 감정이 요동친다. 그럴 때마다 지독하게 무섭다. 이게 맞는 걸까. 나는 지금까지의 나와 이별할 수 있을까. 내려놓을 수 있을까. 어쩌면 지금의 삶을 버리지 못해 우울을 잡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지푸라기라는 걸 아는데 놓을 수가 없다. 바닥을 짚을 용기가 없다. 발아래에 뭐가 있는지 모르고 내려갈 깜냥이 안 된다. 근데 그게 나다.
연락을 먼저 잘 안 하고, 사람을 피하기도 하고, 소수의 사람들과 있는 것을 더 편하게 생각하지만 때로는 사람을 만나고 싶어 하는 것도 나다. 머리는 또 "그래서 뭘 어떻게 해야 하는데?"로 달려가지만 그 목소리를 따라가다 보면 나의 모든 모습을 결점이라고 여기면 항상 고쳐야 할 것, 개선해야 할 것으로 여길 것이고, 또다시 수행과 당위로 가득 찬 삶 속에서 일정을 수행하며 조급함만 느낄 것이니까 말이다. 혼란하다. 공허하다. 초조하다. 아무것도 모르겠다. 확신도 없고 무섭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지만 내가 원하는 모습이 무엇인지도 몰라 열등감과 결핍, 부적절감을 느끼며 강박적으로 무언가를 하려고 하는 상태. 그게 지금의 나다. 그럼에도 여기 잠깐 머무를 수 있는 의지가 내 안에 남아있기를.
(이하 인터뷰 내용 중 일부)
D : 조언이 무엇을 위한 조언인지 명확히 해봐
나 : 표면적이었던 것 같아요. 작성 당시에는. (제가 사람을 피한다는 걸)다른 사람들이 느낀다고 생각했고
D : 다른 사람들이 느낀데?
나 : 느낀다는 사람 많아요. "연락을 좀 해봐" 이러거나 "당연히 알지 그걸 모르냐?" "오늘도 전화 안 했으면 안 나왔을 거잖아." 이런 친구도 있고
D : 근데 "네가 먼저 연락을 해봐"는 조언이나 해결이 못 되잖아
나 : 실제 해결해달라는 건 아니기 때문에 상관은 없어요
D : 네가 그걸 받아들여서 했어. 그래도 별로 안 하고 싶은데 용기 내서 하는 거잖아. 그게...? 그런 연락받고 싶지 않은데?
나 : 어차피 저는 그렇게 하지 않아요. 앞에서 말했지만 똥고집이 있으니까 하라고 한다고 하지 않아
D : 근데 자꾸 딴지 걸어서 미안하지만 조언이 필요한 문제가 아니라고 말하려 했는데 조언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건 조언이 필요한 거잖아. 근데 나는 이걸 해결해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어
나 : 물론 그렇게 말한 사람도 있어요. "그게 문제인가? 그냥 그렇게 살면 되잖아"라고.
D : 그럼 문제는 네가 그러고 싶지 않다는 데 있어?
나 : 이게 좀 문제가 있는 게 인터뷰를 시작할 때에는 명백한 문제였는데 인터뷰가 진행될수록 나의 특징이나 기질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죠. 이 문제지가 업데이트되지 않은 문제도 있고
D : 너는 바꾸고 싶어?
나 : 어느 정도는?
D : 그럼 너는 지금 가지고 있는 이거로 계속 살다 보니 불편하고 마음에 안 들어서 필요가 있어서 바꾸고 싶은 거야, 아니면 30년 살다 보니 "나도 저렇게 살아볼까" 하는 거야?
나 : 후자는 없어요.
D : 그럼 어떤 점이 불편한 거야?
나 : 그게 남들한테 상처인 경우도 있더라고요. 나랑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한테. 아쉽거나 서운하다고 하는 사람도 있고. 나는 그게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느낀 거죠. 그리고 나도 친밀감에 대한 욕구가 있는데 억누른 거니까
D : 으응. 있는데 그런 거니까
나 : 내가 정말 "사람이 싫어", 이게 아니라 그 사람과의 관계에서 비난이나 거절을 하는 상황이 힘드니까 "응, 그럼 나 사람 싫어" 이렇게 된 거니까
D : 가만히 있으면 마이너스는 안 치고
나 : 이걸 좀 세분화할 필요가 있겠구나가 된 거죠. 그냥 "사람 싫어"가 아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