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 음악은 사랑이 아닌 집착이었을까요
결과에 집착할수록 행복과는 멀어져
비현실적 목표와 좌절의 반복은 우울증을 유발
책과 이펙터를 처분하는 것이 좌절은 아니야
문학과 음악을 하는 삶을 살리라 다짐했다. 예측할 수 없는 부모님의 말과 행동 속에서 위로와 자유를 느끼게 하는 것은 책과 음악뿐이었다. 매일같이 책을 읽고 음악을 듣다 보니 나도 당연히 글을 쓰거나 음악을 해야겠다는 결심이 들었다.
컴퓨터도 좋아했다. 게임 속에서 나는 자유로웠고, 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캐릭터가 있었다. 게임 속 친구들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컴퓨터와 친해졌다. 친구 집에 가서 컴퓨터를 조립해주거나, 포맷을 해주기도 했다. 어머니께서는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공부나 하라'고 했다. 컴퓨터를 할 때마다 꾸지람을 들었다. 하지만 스무 살이 되어서 가장 처음으로 한 아르바이트도 컴퓨터 A/S 관련 콜센터였다. 지금도 컴퓨터로 작업을 해서 돈을 번다. 이제는 초등학교에서도 코딩을 배우는데. '쓸데없는 짓'은 아니었는데. 지금 생각해도 야속하다.
컴퓨터를 못 하게 하니 '악기 하나쯤은 칠 줄 알아야 한다'는 말에 기타를 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밴드를 하고 싶다고 하니 그건 대학에 가서 하라'라고 했다. 실용음악학과나 예고에 가겠다는 말을 꺼내보았지만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어머니는 오히려 의사, 한의사, 공무원과 같은 안정적이거나 소득이 높은 직업을 권했다. 내 의사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무조건 공부를 해서 엄마가 원하는 직업을 가지기를 바랐다. 엄마는 엄마가 이루지 못한 삶, 혹은 엄마의 결핍을 내가 대신 채워주기를 바랐다.
나는 엄마를 피해자라고 생각하고 살았기 때문에 엄마의 말을 거절할 수 없었다. 엄마가 원하는 삶을 살기로 했다. 엄마가 만든 각본에 내 삶을 끼워 넣고 합리화했다.
"그래. 일단 공무원이 된 다음에 남는 시간에 음악을 하면 되잖아."
여기저기 공무원이 된 다음에 음악을 할 거라고 말하고 다녔다. 하지만 실제로 공무원이 되기 위한 노력은 하지 않았다. 어떤 과목을 시험 보는 지도 제대로 알아보지 않았고, 단 한 번도 공무원 시험을 보지도 않았다. 일단 대학에 가면 자유가 생길 줄 알았다. 뭐든 일단 '대학에 가서 하라'라고 하셨으니까. 하지만 생각지 못했던 대학에 붙고, 원하던 대학은 모두 떨어졌다. 재수를 할 형편은 안 됐으므로 어쩔 수 없이 합격한 대학에 진학했다.
내가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하자 엄마는 대놓고 실망한 티를 내거나 망신을 줬다. 하필이면 왜 그 대학에 가서 엄마를 실망시키고, 부끄럽게 하냐고 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비현실적인 목표를 세우고 노력했던 것이.
문단에 이름을 날리고 스물일곱에 죽을 거야
나는 나의 삶이 부모님에게 민폐라고 생각했다. 밥만 먹고 돈만 축내는 사람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브런치 주소도 밥벌레(foodbug)로 시작했다.) 그리고 나의 존재를 어떻게든 인정받기 위해 발버둥 쳤다.
계획은 이랬다.
1. 모든 학기에 장학금을 받아서 부모님의 돈 걱정과 나의 죄책감을 덜어야겠다.
2. 그러려면 친구를 만나는 시간도 아까우니까 아무도 만나지 말아야겠다.
3. 문학은 돈이 안 되니까 등단을 해서 상금을 받아 부모님께 드려야겠다.
4. 졸업을 하기 전에 독립할 수 있는 수익 구조를 어떻게든 만들어야겠다.
5. 나에게 들어간 비용을 대략적으로 계산해서 그 돈을 갚고 스물일곱에는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겠다.
그리고 단 하나의 목표도 성공하지 못했다. 나는 학점이 4점대를 넘어도 수석을 하지 못했다며 자책했고, 친구를 만나는 시간에도 목표를 향해 가지 못해 아깝다고 생각했다. 그 순간에 집중하지 못했다. 소설과 시를 감상하지 못하고 분석하려고만 들었기 때문에 문학의 즐거움을 깨우치지 못했다. 나의 삶은 언제나 돈과 시간으로 계산되었으므로 항상 쫓기는 것 같고 불안하기만 했다. 죽어야 하는 날은 다가오는데 이루지 못한 것들만 남아 초조했다. 그래서 집착이 시작되었다.
책 한 권을 보아도 시리즈를 다 보고 참고해야 했다. 출판사의 경향성이나 문학상의 특징 등을 발견해내서 다른 사람과 차별점을 만들어내야 한다고 여겼다. 강박이 시작됐다. 책을 모으기 시작했다. 책장이 터져나가려고 하는데도 불안했다. 더 읽고 더 써야만 한다고 생각했고, 내가 원하는 시간, 원하는 시점에 손을 뻗으면 참고할 수 있는 자료들이 있어야 한다고 여겼다. 읽지도 않을 책을 사 모으느라 일상생활에 지장이 갈 정도였지만 그렇지 않으면 안절부절못했다.
과거는 집착이요 현재는 사랑이다
그랬던 내가 책을 버릴 수 있게 된 것은 본격적으로 정신과에 다니기 시작하면서였다. 이전과 달리 약을 증량했고 나 역시도 내가 환자라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고 나를 보살피려 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수면시간이 7시간 이하로 줄어드는 일은 없도록 했고, 원하지 않는 만남과 약속은 모두 거절했다. 술을 끊고 약을 매일 챙겨 먹고, 산책과 달리기를 가끔씩이라도 하려 애썼다. 감정일기와 일기를 쓰고 가끔씩 다시 펼쳐보기 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나의 집착이 보였다. 나는 문학을 사랑하고 있던 게 아니라, 문학하는 나의 이미지에 집착하고 있었다. 집착을 사랑이라고 착각하고 있었다. 이미 어머니는 돌아가셨는데 누구에게 무엇을 입증하려고 하는지도 모르고 살아왔다. 음악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음악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아득바득 붙잡고 있었다. 사랑하지 않는 마음으로 붙잡아봐야 분노와 집착만 늘어날 뿐인데. 그걸 알면서도 내가 투자한 시간과 에너지가 아까워서, 결국 '너는 못 한다고 했지?'라는 말에 승복하는 것 같아서 포기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로 했다.
어차피 읽지 않을 책이거나 다시 읽지 않을 것 같은 책을 모아서 버렸다. 음악 노트도 버렸다. 이펙터도, 기타도 팔아버렸다.
음악과 글을 포기하겠다는 건 아니다. 지금과는 다른 방법으로 접근해도 된다는 사실을 느꼈고, 과거를 놓아주었을 뿐이다.
이제 내 방과 책꽂이에 여유가 좀 생겼다. 집착으로 가득했던 공간을 비웠다. 이제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만날 시간이다. 과거는 안녕.
* '사랑이 아닌 집착'이라는 표현은 넬의 「멀어지다」에서 가져왔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