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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호 Dec 24. 2021

불안정 애착의 증거, 튀어나온 앞니


손가락을 빠는 행위는 불안을 줄이기 위함

튀어나온 앞니는 불안정 애착의 흔적


사과를 깨물어 먹으면 위가 더 파인다. 면을 끊어 먹으려 해도 앞니가 더 튀어나와 있어서 아래턱을 많이 내밀어야 한다. 아니면 윗니와 혀로 끊는다. 그런 내 앞니가 너무 못나보여서 입을 벌려 웃지 않았다. 웃을 일이 있었도 피식하고 말거나, 손을 가리고 웃었다. 사진을 찍을 때도 내 앞니가 보일까 봐 잘 웃지 않았다. 내가 못나 보이고 못생겨 보였다. 그래서 사진을 찍는 것도 싫어했다. 그렇다고 교정을 하자니 돈이 너무 많이 들었다. 어렸을 때 교정하는 비용이 몇 백만 원이라고 들었는데, 그건 내가 상상할 수 있는 돈이 아니었다. 그래서 남몰래 무릎으로 앞니를 누르기도 했다. 시간이 나면 손으로도 눌렀다. 그러면 조금씩 들어갈 거라고 생각했다. 당연히 효과는 없었다.


어렸을 때 애착 인형이 있었다. 나는 그 인형을 검지와 중지 손가락으로 잡고 엄지손가락을 입에 넣었다. 인형 솜털을 입술에 댔다. 그때 느껴지는 보들보들함이 안정감을 줬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불안해 미칠 거 같았다. 그러다 인형 머리나 손이 떨어지기도 했다. 엄마는 인형을 꿰매 주셨지만 손을 그만 빨라고 하면서 손에 연고를 묻히거나 엄지를 붕대로 묶기도 했다. 하지만 손가락 빨기는 현상일 뿐이고 원인은 따로 있었다. 나는 너무 불안했다. 엄마가 죽거나, 내가 죽거나, 아빠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사람이 언제 돌변할지 모른다는 생각과 함께 살았다. 그럴수록 앞니는 점점 더 튀어나왔다.


집과 가족이라는 공동체에서 안정감을 느끼지 못했다. 나는 그 이유로 손가락을 빠는 건데 부모님은 손가락을 빠는 행위만을 고치려 했다. 내가 이상한 사람이라고 꾸중했다. 하지만 불안한 상황이 지속되었으므로 나의 손가락 빨기는 계속되었다. 아마도 초등학교 저학년까지는 계속 그랬던 것 같다. 그 이후로는 나도 그 나이에 손가락을 빠는 것이 일반적이지 않다는 걸 알고 그만두었지만 그렇다고 불안이 사라진 건 아니었다. 게임 중독이나 알코올 중독 등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여전히 불안했고 사람을 믿지 못했다. 성향이 맞지 않는 친구를 거절하지 못하는 일이 반복되면서 그 신념은 더 강해졌다.


그냥 드러내고 웃으면 되는데. 그게 오히려 자연스러운데. 누군가 물어오면 웃고 지나가거나, 재미있는 에피소드로 말해도 될 텐데. 근데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입을 다문다. 나를 드러내기를 꺼린다. 지금도 입을 벌려 웃는 게 어색하다. 입을 다물고 웃으려니 웃는 건지 아닌지 어색한 표정이 지어진다. 사람들이 내 튀어나온 앞니를 보고 한 마디씩 할 것 같다. 나는 내 앞니를 감추고 싶었다. 아니, 나의 삶과 함께 한 불안과 우울을 감추고 싶었다. 숨길수록 커진다는 것도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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