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을 '극복'하려는 시도가 우울증을 악화시키기도 해
방법 자체보다는 '과정'에 집중할 때 개선 가능성 높아
우울증을 극복하려고 애쓸수록 우울함은 깊어졌다. 나아진 듯 싶다가도 나빠지기를 반복했고 그럴 때마다 더 큰 실망과 자책에 빠졌다. '꼭 낫고 말겠다'는 절실한 의지가 나를 괴롭혔다.
이런 패턴이 반복된다면 우울을 '극복'하려고 하기보다는 받아들이는 게 좋다. 흔히 '긍정'이나 '인정'으로 표현하기도 하지만 나는 '받아들임'이라고 쓴다. 무의식 중에 긍정이나 인정을 '좋게 생각하라'는 것으로 해석하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어사전에 '긍정'을 검색해보면 "그러하다고 생각하여 옳다고 인정함", "일정한 판단에서 문제로 되어 있는 주어와 술어와의 관계를 그대로 인정하는 일"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그 어디에도 좋고 나쁨에 대한 판단은 없다. 내가 우울증에 걸렸다는 사실을 '그렇다'라고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다.
우울증에서 벗어나려면 여러 시도를 해봐야 한다. 심리상담, 약, 친구 만나기, 운동하기, 햇빛 쬐기, 음식 만들어먹기, 취미활동 하기 등. 그중에 자신에게 맞는 활동을 찾아야 한다. 그러려면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하다. 시간과 에너지는 무제한이 아니므로 지금 하고 있는 무언가를 포기해야 한다. 내가 우울증에 걸렸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게 내려놓는 연습을 해야 한다. 나는 책 읽기를 그만두었고, 강연 듣기를 그만두었고, 술과 게임도 그만뒀다. 그리고 그 시간에 달리기를 해보고, 산책도 해보고, 병원을 다니고, 상담을 받는 등의 활동을 했다.
그렇게 깨달은 사실은 우울증에서 벗어나는데 왕도는 없다는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운동이 최고의 해결책이었을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하나도 도움이 안 될 수도 있다. 강박이 있는 사람이 "운동을 하면 우울증이 낫는다고 했어!"라고 하면서 운동에 집착하기 시작하면 우울함은 오히려 더 커진다. "빨리 우울증에서 벗어나야 하는데 오늘 운동을 못했어. 나는 쓰레기야. 나는 우울증에서 벗어날 수 없을 거야." 하는 굴레에 빠질 수도 있다. 내가 그랬다.
나는 더 이상 우울증을 극복의 대상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우울증에서 벗어나는 것은 극복이 아닌 회복이라고 본다. 부러진 다리가 자연스럽게 낫듯이 마음의 상처도 결국 스스로 치유해야 한다. 약물치료나 상담은 그 치료의 방향이 엇나가지 않도록 깁스를 대주고 항생제를 주고, 주기적으로 검진해주는 것과 같다. 치유를 돕는 것이지 전적으로 낫게 해주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부러진 다리를 혼자 나을 수 있다면서 자연 치유를 하라는 건 아니다. 병원 혹은 상담소,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에게 가서 적절한 조치를 받되 변화의 주체는 나라는 사실을 잊지 말라는 것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우울증은 몸과 마음에 깃든 것이기 때문에 의식하고 벗어나려 할수록 더 깊이 빠진다. 늪에 빠진 것과 같다. 힘을 주면 줄수록 더 빠져든다. 악순환의 반복이다. 그래서 우울에서 빠져나가려면 최대한 빨리 나의 상황을 받아들이고 힘을 비축해야 한다. 그 방법은 결과가 아닌 과정에 집중하는 것이다. 명상을 추천하는 이유가 지금 이 순간, 자신의 호흡에 집중하는 훈련이 중심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주 조금씩 변화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 느린 발걸음에 조급해하지 않아야 한다. 조급해하는 순간 다시 우울증을 가져오던 패턴으로 돌아간다. 생각해보자. 우리는 지금까지 인정받고 싶어서, 사랑받고 싶어서, 잘하고 싶어서 얼마나 노력해 왔는가. 그 패턴을 반복하면서 우울증에서 벗어나겠다는 건 모순이나 같다.
게다가 변화는 아주 조금씩 온다. 한 발 전진했다가 세 걸음 후퇴하는 날도 있다. 다 포기하고 싶은 날이 더 많다. 그럼에도 한 발씩 가고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우울증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법은 결국 지금-이 순간에 집중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걸 어떻게 하냐고 물으면 나는 '모른다', '당신 스스로만이 안다', '당신 스스로 찾아야 한다'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그건 사람마다 다르다. 다만 그것이 당신을 진정으로 행복하게 하고, 그 순간에 집중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게 한다면 바로 그걸 하길 바란다. 하루에 10분만이라도 좋다. 남들이 만들어놓은 정답을 찾지 말고, 정답을 찾는 과정을 느껴야 한다. 즐기라고는 못 하겠다. 나도 못 즐겼으니까.
지금 이 순간이 행복하든, 고통스럽든, 우울하든, 불안하든 그대로 느껴라. 허용되지 않는 감정은 단 하나도 없다. 받아들이고 받아들여라. 판단하지 마라. 그냥 그렇구나. 내 마음 상태가 그렇구나. 그렇게 생각하라. 가능한 모든 순간에 그저 받아들여라. 좋다, 나쁘다 판단하는 것도 나고, 이 순간이 고통스럽다고 해석하는 것도 나다. 그리고 그 생각에서 벗어나려 하는 것도 나다. 위에서도 말했듯이 벗어나려고 하면 더 빨려 들어간다. 그런 생각이 들면 그것 또한 받아들여라. 내가 또 벗어나려고 노력하고 있구나. 그렇게 인정하라. 그 순간을 받아들여라. 그러면 마음이 한결 편해진다. 그랬다가 또 악화된다.
그냥 그렇게 한 발씩 휘청거리면서 간다. 길은 빙판이다. 넘어지고 쓰러진다. 그래도 그렇게 가다 보면 언젠가는 봄이 와 있을지도 모른다. 또 겨울이 오겠지만 그 겨울은 또 지나가면 된다. 우울 또한 인생의 일부다. 받아들일 수 없는 것, 허용되지 않는 감정은 아무것도 없다. 그렇게 다 같이 이 우울과 불안을 지나가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