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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호 May 02. 2016

대학에 인문학은 없다

인문학, 이제 어디서 배워야 하나요?

인문학을 비판하는 주요 논점은


1. 모든 문제에 '경제의 논리와 인문학의 논리는 다르다'라는 논리만으로 접근하려 한다.

2. 인문학을 선으로, 고고한 것으로 간주한다.


정도로 나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전 대학에서 인문학을 배웁니다. 맞습니다. 자본의 논리와 인문학의 논리가 어떤 것인지 밝힐 능력이 없습니다. 하지만 인문학자들만이 고고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또한 인문학 전공자들이 경제활동을 등한시해도 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니, 그 어떤 인문학 전공자들도 노동과 산업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등록금을 벌기 위해, 기숙사비를 내기 위해, 점심에 컵밥이라도 사 먹기 위해 고용주에게 노동력을 제공하고 임금을 받고 있습니다. 이것들이 경제 활동이 아니면 무엇이 경제활동인가요.


꼭 수업시간에 '경제학'을 배워야만 경제활동을 하는 주체일까요? 대차대조표를 제시하고 경제적 동맥경화 현상을 설명할 수 있어야만 자본주의 시대에 '쓸모'가 있는 걸까요? 오히려 묻고 싶습니다. 알바를 하면서 사장님에게, 혹은 손님에게 사중손실이나 지대발생의 문제점을 이야기할 일이 있는지 말입니다.


인문학을 비판하는 몇 개의 글을 최근 읽었습니다. 그들의 말에 제 의견을 덧붙여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비판할 것은 비판해보려 합니다. 인문학과 경제학으로 편을 가르는 것은 지양하겠습니다. 전 분명 인문학으로 밥 벌어 먹고 살고 싶은 사람입니다. 인문과 경제는 함께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긴 글이 될 것 같네요. 글의 출처는 아래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읽어보시면 좋겠네요.



대학교에 인문학은 없다

저는 국문학을 전공하는 학생입니다. 맞습니다. 국문과 수업은 사회에 나오면 그다지 '쓸모'가 없습니다. 국문학 전공했다고 하면 맞춤법을 물어본다던가, 사유서 작성을 도와준다던가, 송사나 축사 같은 행사의 글귀를 적어야 할 일이 생겼을 때만 부릅니다. 그래도 자기소개서와 보고서 작성 시에는 확실히 도움이 되긴 하죠. 하지만 그것이 '몇 천 만원의 돈을 낼 가치가 있냐'고 물으면 전 '아니다'에 손을 들 것 같네요.


그 이유는 대학 수업이 진짜 인문학 수업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원인은 대학이 굴러가는 시스템 때문이죠. 인문학 수업은 정답을 찾는 수업이 아닙니다. 본인만의 생각과 방법으로 텍스트를 해석하는 능력과 이를 전달하는 능력을 키워야 합니다. 동시에 토론을 통해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는 능력을 키워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업은 강의가 아니라 토론 위주로 진행되어야 합니다. 교수는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는 사람이 아니라, 학생들의 생각을 들어주고 어느 방향으로 논의를 전개해야 할지 조언을 해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인문학 수업은 전원이 A+를 받을 수도 있는 수업입니다. 아니, 당연히 그래야 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입니다. 대학은 인문학이나 예술 분야에서도 철저히 상대평가를 시행합니다. 교육부에서 그렇게 하라고 시키거든요. 거짓말 같나요? 대학교를 A, B, C, D, E 등의 등급으로 나눠 등급에 따라 지원금을 주거나 불이익을 주는 대학구조개혁평가의 평가 지표 중 하나가 바로 이거예요. 상. 대. 평. 가!


엄정한 성적 부여=상대평가_ⓒ교육부 대학구조개혁평가편람


학교는 교육부의 눈치를 보느라 상대평가를 시행하고, 교수는 상대평가를 해야 하니 시험문제를 암기식, 또는 객관식으로 낼 수밖에 없죠. 그럼 그 시험에 맞춰서 수업이 이루어집니다. 교수는 강의를 하고, 학생은 필기를 하고 단순히 암기를 할 뿐이죠. 


주관식 시험이 있다고 해도 그건 사실 정답이 있는 문제입니다. 텍스트를 해석하는 문제는 수업시간에 했던 해석의 방법으로 제한됩니다. 특정 키워드나 특정 논지를 작성해야 하고 분명히 채점 기준이 있죠. 수업시간에 토론이 진행된다 하더라도 그 토론마저 점수를 매깁니다. 학생들에게 


'반론은 적절했는가?' (5점)

'주장의 근거가 명확했는가?' (5점)

'토론의 태도는 적절했는가? (3점)


등의 채점표를 나눠주고 말이죠. 그래야 상대평가로 줄을 세울 수 있거든요. 


그래서 대학의 토론은 '이겨야 하는 것', '상대를 굴복시키는 것'으로 인식됩니다. 상대방의 말이 충분한 근거가 있고 논리가 있어도 그것을 인정하면 '패배' 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 '패배'는 상대평가에서 낮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는 공포심에서 기인합니다. 성적과 평가에서 자유롭다면 잘못은 인정하고 서로의 생각을 조금 더 유연하게 들어볼 수 있었겠죠. 이렇게 상대평가는 얼마 남지 않은 토론의 의미마저도 퇴색시켰습니다.


그래서 인문학은 '쓸모'가 없어졌습니다. 인문학을 제대로 가르치는 곳이 없거든요. 차라리 현실에서 돈을 못 벌고, 경제를 이해하지 못 해도 인문학을 제대로 가르친다면 '인문학을 천대해서는 안 된다!'라고 주장이라도 하겠는데 지금은 못 하겠어요. 진짜 인문학이 사라졌거든요. 


그래서 저는 지금의 통폐합에 찬성합니다. 차라리 취직이라도 잘 된다면, 대학의 인문학이 가야 할 방향이 그것밖에 없다면 그렇게라도 하고 싶습니다.

왜냐면 교육부 말 안들으면 돈 안준다고 협박하거든요_ⓒ교육부 대학구조개혁평가편람


하지만 분명히 하나는 밝히고 싶습니다. 위에서 물었던 질문, '몇 천 만원의 돈을 낼 가치가 있냐'에 '아니오'라고 대답하면서도 제가 국문학을 전공하는 이유는 조금이라도 남아 있는 토론식 수업에서, 혹은 강의 내용 속에서마저 느낄 '행복'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의 글이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의 고등교육법은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대학은 취업과 취직을 위한 곳이 아니라고 말이죠. 취직을 위한 곳은 산업대학, 전문대학, 기술대학 등으로 분명히 구분해 놓았습니다. 인문학을 공부하는 학생, 아니 적어도 저만큼은 대학에서 취직을 시켜주는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그저 제대로 된 인문학을 공부하고 싶을 뿐입니다.


하지만 학생들은 대학에 오고 나서야 깨닫죠. 진짜 인문학이 대학에 없다는 걸 말이에요. 그래서 혼란스러워하다가 취직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이것저것 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인문학은 취직이 안 돼요. 미안해요. 그니깐 대학이 제대로 된 인문학을 가르쳤으면 좋겠어요. 취직 안 된다고 소문도 펑펑 냈으면 좋겠어요. 정말 공부하고 싶은 학생들만 들어오게 말이에요.


인문학이 취직이 안 되는 건 부끄럽지 않아요. 근데 대학에서 진짜 인문학이 사라진 건 굉장히 부끄럽네요. 교육부의 대학구조개혁평가도 부끄러워요. 평가 기준이 '교육'이 아니라 '취업'에 있는 것 같네요. 


취업 관련 점수가 대체 몇 점이냐...?_ⓒ교육부 대학구조개혁평가편람


고등교육법 중 일부 (출처 : 법제처 홈페이지, http://www.law.go.kr/main.html)


제1관 대학

제28조(목적) 대학은 인격을 도야(陶冶)하고, 국가와 인류사회의 발전에 필요한 심오한 학술이론과 그 응용방법을 가르치고 연구하며, 국가와 인류사회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제2관 산업대학

제37조(목적) 산업대학은 산업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학술 또는 전문적인 지식이나 기술의 연구와 연마를 위한 교육을 계속하여 받으려는 사람에게 고등교육의 기회를 제공하여 국가와 사회의 발전에 이바지할 산업인력을 양성함을 목적으로 한다.


제3절 교육대학 등  

제41조(목적) ① 교육대학은 초등학교 교원을 양성함을 목적으로 한다.

② 대학의 사범대학(이하 "사범대학"이라 한다)은 중등학교 교원을 양성함을 목적으로 한다.

③ 대학에는 특별한 필요가 있는 경우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교원의 양성을 목적으로 하는 교육과(이하 "교육과"라 한다)를 둘 수 있다.


제4절 전문대학  

제47조(목적) 전문대학은 사회 각 분야에 관한 전문적인 지식과 이론을 가르치고 연구하며 재능을 연마하여 국가사회의 발전에 필요한 전문직업인을 양성함을 목적으로 한다.


제6절 기술대학  

제55조(목적) 기술대학은 산업체 근로자가 산업현장에서 전문적인 지식·기술의 연구·연마를 위한 교육을 계속하여 받을 수 있도록 함으로써 이론과 실무능력을 고루 갖춘 전문인력을 양성함을 목적으로 한다.


'폐하라'가 아니라 '개선하라'

자유주의 사이트의「약체, 인문학」이라는 글에서 제시하는 문제의식은 '대학 내의 인문학은 쓸모없는 학문이 되었다.'라는 것입니다.


'이제 대학 내에는 담론을 생산할 능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점차 인문학은 아무도 찾지 않고 찾을 이유도 없어져 가고 있습니다.


본문을 통해 글쓴이가 비판하는 것은 '인문학' 전체가 아니라 '대학 내의 인문학'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이 글의 전체적인 의견에는 동의합니다. 대학 내의 인문학은 경제적으로 보면 쓸모가 없는 게 사실이니깐 말이죠. (여기서의 ‘쓸모’란 산업과 노동을 의미합니다.)


대학에서 인문학을 전공한 사람이 전공 수업을 듣는 것만으론 경제학자와의 토론에서 '사중 손실이나 지대발생의 문제점, 경제적 동맥경화 현상, 근로의욕 저하 등의 포멀한 단어'를 이해하거나 사용할 수 없습니다. '아젠다 제시에서 대차대조표를 첨부' 하는 것 또한 전공 수업에서는 분명 가르치지 않습니다.


그럼 인문학 전공으로 졸업하면 취직이 잘 될까요? 그것도 아닙니다. 디스라이크의 「인문학을 폐하라」라는 글에도 나타나듯이 인문대는 낮은 취업률에, 취업이 된다 하더라도 전공 불일치하는 경우가 가장 많습니다. 서두에서 밝힌 '인문학 교육이 초고도자본주의체제인 현대사회의 노동에 적합하지 않다는 명백한 증거이다.'라는 말은 명백한 사실입니다. 인문학을 전공해서 인문학으로 먹고산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맞습니다. 인문학은 경제적이지도 못하고, 효율적이지도 못합니다. 통계에도 약하고 현실 감각을 가르치지도 않습니다.(물론 글에서 지적한 것처럼 가락시장에 내놓으면 배추 한 포기 팔 정도의 현실에 대한 감각도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인문학을 폐하라'라는 결론으로 귀결되어서는 곤란합니다. 잘못된 점이 있다면 개선해 나가야 하는 것이지 묻어버려서는 안 됩니다. 인류는 그렇게 진일보 해왔습니다.


대학은 교육기관입니다. 


제1관 대학

제28조(목적) 


대학은 인격을 도야(陶冶)하고, 국가와 인류사회의 발전에 필요한 심오한 학술이론과 그 응용방법을 가르치고 연구하며, 국가와 인류사회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인문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이 제대로 된 토론조차 하지 못 하게 된 건 학생들만의 잘못은 아니랍니다. 배우러 왔는데 가르쳐주지를 않네요. 


교육부와 대학은 이를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초록색 글씨는 자유주의의 「약체, 인문학」의 본문 내용이며

 -빨간색 글씨는 디스라이크의 「인문학을 폐하라」의 본문 내용입니다.


참고자료


1. 「인문학을 폐하라」, 디스라이크, http://www.disslike.net/archives/660


2.자유주의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21Liberalism/posts/570922456396190

3.「약체, 인문학」, 자유주의, http://libertypost.kr/archives/38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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