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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MD의 식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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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영 Jul 04. 2016

초여름은 맛있는 감자의 계절

분질 감자

6월은 감자의 계절이다. 물론 다른 채소 작물처럼 일 년 내내 감자가 생산된다. 한 겨울 제주 조천에서는 노지 감자가, 조금 위쪽의 해남, 완도 등에서는 하우스에서 감자가 나온다. 이어서 무안, 김제, 함안 등 봄에서 여름으로 가는 사이 위쪽으로 생산지가 이동하면서 감자가 생산된다. 7월 후반 여름 더위가 기승을 부릴 때는 지대가 상대적으로 높은 강원도에서 감자가 나오고 기온이 내려감에 따라 다시 역으로 내려가면서 감자가 생산된다. 하지만 필자가 6월을 감자의 계절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은 다른 계절보다 더 맛있는 감자가 나오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감자가 감자지 뜬금없이 맛있는 감자가 무엇인가 의구심이 들 것이다. 장마와 함께 오는 포슬포슬한 맛있는 감자 이야기를 풀어 볼까 한다. 

두백과 수미. 같은 시간을 쪄도 모양이  다르다.

 국내에서 생산되는 품종은 대략 30종이 넘는다. 30종이 넘는 감자 품종 중 웬만한 사람들은 알고 있는 품종이 있다. TV를 즐겨 보는 사람이든, 감자칩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수미’라는 단어를 들었거나 봤을 것이다. 맞다 수미는 감자 품종의 이름이다. 1960년대 미국에서 육종 한품종으로 국내에는 1978년에 국내에 도입됐다. 현재 수미는 국내 감자 생산량의 80% 이상을 점유율을 차지하는 대표 품종이다. 감자를 먹었다면 10개 중 8개는 수미 품종의 감자를 먹었다는 의미다. 생산지가 어디든 상관없이 말이다. 수미 다음으로 많이 심는 품종이‘대서’라는 가공용(감자튀김용) 품종이다. 다만 제주에서는 ‘대지마’란 품종으로 다른 지역과 다르다. 보라벨리 등 색깔이 있는 감자, 두백, 남작 등이 조금씩 생산된다. 그렇다면 맛있는 감자는 어떤 감자일까? 바로 남작, 두백같은 감자가 필자가 말하는 맛있는 감자다.

분질감자를 삶으면 속살이 보드랍다.

감자는 크게 점질(粘質) 감자와 분질(粉質) 감자로 나뉜다(생식 용색이 있는 감자는 논외로 한다). 점질과 분질의 차이는 전분의 함량으로 구분한다. 전분이 많으면 분질, 적으면 점질 감자다. 점질 감자는 조리를 하거나 삶았을 때 외형이 유지가 잘 돼 요리의 모양새가 좋다. 반면에 분질 감자는 최종 형태의 모양새가 점질에 비해 떨어진다. 대표적인 점질 감자는 대서 품종이다. 점질 감자는 앞서 이야기한 듯 가공용에 적합하도록 육종 된 품종이다. 감자에는 과당, 포도당, 자당이 존재하는 데 점질 감자는 당 성분도 분질에 비해 적다. 당분이 적으면 감자를 튀겼을 때 발생하는 메일라드(당과 단백질의 결합으로 통해 향, 색이 변화는 현상) 반응이 적게 일어난다. 메일라드 반응이 활발하면 진한 갈색으로 변색이 되고 심한 경우 쓴맛까지 발생한다. 감자칩이나 프렌치프라이를 하는 용도로 대부분 대서 감자를 사용한다. 당이 적기 때문에 색 변화가 적고 깔끔한 가공품이 나와 가공업자들이 선호한다. 다만 당분이 적고 전분이 적기 때문에 찌거나 볶거나 하는 용도로는 적합하지 않다. 점질 감자가 조리되면 감자 요리의 식감이 부드럽지 않다.  

분질감자로 감자탕을 하면 숟가락에 작은 힘만 줘도 부서진다.


분질 감자의 대표적인 품종은 남작, 두백, 하령 등이 있다. 그중 남작은 1930년대에 들어온 품종으로 품종명이 확인되는 최초의 감자다. 나머지 두백과 하령은 국내 육성 품종이다. 분질 감자의 특성은 감자를 쪘을 때 제대로 알 수 있다. 감자를 찌면 감자의 표면이 가뭄에 논바닥 갈라지듯 갈라진다. 이는 분질 감자의 특성으로 감자의 조직을 구성하는 펙틴질이 찌는 과정에서 손실이 돼서 생긴다. 이는 다른 요리를 할 때도 마찬가지다. 감자조림을 하면 형태가 칼질한 그대로가 아닌 뭉개지지만 부드러움과 자체의 단맛이 좋다.  닭볶음탕, 감자탕, 카레를 할 때 특히 최고의 맛을 볼 수 있다. 감자가 쉽게 뭉개지기 때문에 감자를 넣는 시간만 잘 맞추면 된다. 보통의 방법처럼 끓일 때 같이 넣으면 안 된다. 요리 중간에 넣으면 맛있게 즐길 수 있다. 분질 감자를 넣고 감자탕을 끓이면 등뼈의 살을 발라 먹는 것보다 살살 녹는 감자를 국물과 함께 비벼 먹는 맛이 더 좋다. 감자를 숟가락으로 밥 위에 올리는 행동만으로도 감자는 쉽게 부서진다. 그만큼 부드러워 밥과 잘 섞인다. 식당에서 감자탕을 주문하고 먹을 때와 비교하면 식당의 감자는 숟가락을 튕겨내지만 분질 감자는 숟가락을 받아 들 인다. 해마다 이맘때면 분질 감자를 주문해 딸에게 간식으로 쩌주곤 했다. 처음에는 보통의 아이가 먹듯 설탕 단맛으로만 먹었다. 소금으로 먹는 방법을 알려 주니 설탕을 멀리하고 소금만으로 분질 감자의 단맛을 오롯이 즐기게 되었다. 아이들은 먹는 것에 있어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만큼 분질 감자가 맛있다는 반증이다.  

 우리가 먹는 감자의 80%를 차지하는 수미는 어떤 감자일까?. 중국집의 짬짜면, 냉온 겸용 에어컨과 같은 게 바로 수미다. 점질과 분질의 중간 정도의 전분, 당 함량이다. 가공용으로도, 요리용으로도 적당하다. 조리가 되었을 때는 분질의 형태를 지니다 이내 점질의 성질을 나타낸다. 다용도의 품종 특성이 수미 품종의 재배 면적 확대에 일조를 했지만 생산자의 말을 빌면 어려운 농사지만 그나마 손이 덜 가는 것도 한몫을 했다 한다. 수미감자가 맛없는 감자는 아니다. 하지만 한 품종의 일방적인 득세는 맛의 다양성을 방해한다. 즉 지역에 따라 생기는 미세한 맛 차이만 있을 뿐 다양한 맛의 경험을 막는다.. 일본 마트에 갔을 때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우리네 마트에서는 감자를 팔 때 지역이 표시되고, 중량 구분에 따라 판매를 하는 게 일반적인 방법이다. 일 년 내내 햇감자가 나오는 까닭에 햇감자라는 표시가 지역만 달리할 뿐 중량과 원산지 옆에 항상 붙어 있다. 일본은 우리와 달랐다. 산지, 중량 표시는 같았지만 우리한테 없는 것이 있었다. 바로 품종이다. 홋카이도 산 ‘남작’이라는 표시가 분명히 되어 있었고 옆에 놓인 감자는 다른 지역과 품종을 표시했다. 요리 방법과 선호에 따라 구입할 수 있었다. 품종이 달라지면 같은 방법으로 요리를 해도 맛이 달라지기 때문에 구분해서 판다.

서울의 한 음식점에서 곁다리 반찬으로 나온 감자조림을 먹은 적이 있다. 설탕의 단맛과는 다른 단맛이 감자에 가득 이었다. 입에서 감자를 혀와 입천장의 압력으로만 오물거려도 부드럽게 풀렸다. 주인한테 감자의 품종을 물어보니 돌아온 대답은 “모른다”였다. 시장에서 구입한, 혹은 부식을 대 주는 사람이 주고 간 감자가 운 좋게 맛있었을 뿐이다. 감자 생산자는 품종을 알아도 판매자나 구매자는 모르는 게 현실이다. 우리는 감 자를 팔고 일본은 감자의 품종을 파는 차이가 부럽다. 

분질감자는 부드러운 식감이 장점이다. 


미쉐린 가이드 한국판이 나온다는 이야기에 고급 식당들이 술렁이고 있다. 어느 식당은 집기를 바꾸니, 인테리어 바꾸니 하는 이야기도 지면을 통해서, 관계자를 통해서 들린다. 메뉴 구성을 다시 하는 곳도 많다. 미쉐린 가이드가 나오는 과정에서 미식의 수준이 높아진다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다. 하지만 인테리어와 메뉴의 디스플레이, 구성, 조리법만 바뀌어서는 안 된다. 식재료에 대한 세밀한 연구도 같이 병행되어야 한다. 현재 감자뿐만 아니라 유통되는 농축수산물이 대체적으로 품종의 특성은 모른 체 종의 이름만으로 유통이 된다. 남작, 두 백이 아닌 감자로 유통되는 것처럼 말이다. 영덕에서 분질 감자를 생산하는 김현상 생산자의 말이 귓가를 맴돈다. 왜 조금 더 농사가 편한 수미 대신 두 백을 선택했는지에 대한 대답이 “맛있어”였다. 같은 종이라도 품종에 따라 맛은 많이 다르다. 품종을 찾는 습관을 길러 보자. 미식의 시작이다.     


7월 4일

 중앙일보에 기고한 글입니다. 

http://news.joins.com/article/20256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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