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을위한식탁
#시사인 연재 #여덟 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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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가 초등학교 3~4학년 정도 됐을 때였다. TV에서 윤희가 좋아하는 연예인이 요리사와 함께 브라우니를 만드는 장면이 나왔다. TV에 빠져있던 윤희가 “아빠 저거 만들 줄 알아?”. “당근!”. “떡 말고. 저거~”. “그래 떡 말고 저것!”. 브라우니 이야기에 웬 떡?. 다 사연이 있다. 식품가공학을 전공하면서 제빵 연구회라는 과 내 동아리에서 활동했다. 당근케이크, 스펀지케이크, 식빵, 모닝빵, 쿠키 등을 만들고는 학교에서 일주일에 두 번 판매도 했다. 윤희가 커가면서 몇 번, 옛 실력을 발휘한다고 식빵을 만든 적이 있었다. 20년 전의 실력은 온데간데없고 만든 식빵은 죄다 겉은 딱딱하고 속은 떡을 졌다. 그날 이후로 아빠가 만드는 반찬은 믿어도, 빵은 믿지 않았다.
브라우니는 버터, 초콜릿, 설탕, 계란, 밀가루로 만드는, 초콜릿 향이 풍부한 케이크의 일종이다. 비록 대학 시절에 만든 적이 없지만, TV 화면을 보니 브라우니를 쉽게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식빵처럼 반죽, 발효에 숙성까지 하는 복잡한 과정이 필요 없이 순서에 따라 재료만 섞으면 그만인 듯 보였다. 빵에서 잃었던 아빠 요리 솜씨에 대한 신뢰감까지 한 방에 해결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몇 가지 레시피를 고르고 그중 가장 맛있을 것을 골라 만들기 시작했다. 가장 맛있다는 의미는, 가장 만들기 어렵다는 거와 같다, 다만 그때는 몰랐다. 슈퍼에 가 재료를 사는 사이 윤희한테 찬장 구석에 있던 저울을 꺼내 닦게 했다. 맛있는 브라우니를 위해서 작은 노동이라 해야 제대로 된 맛을 알 수 있다는, 안 해도 될 말까지 했다. 준비한 재료를 순서대로 놓고 만들기 시작했다. 설탕과 계란을 섞어 크림을 만드는 게 첫 번째였고, 떡이 된 원인이기도 했다. 설탕과 계란으로 제대로 크림을 만들지 못하면 굽는 사이 조직이 무너진다. 자동 거품기가 없어 손으로 거품기를 돌려 크림을 만들었다. 얼추 된 듯해 다른 재료를 섞고 오븐에 구웠다. 오븐에서는 나는 맛난 향은 내 기대감을 부풀게 했다. 다 구워진 브라우니를 꺼내기 위해 오븐을 열었다가 급히 닫았다. 짙은 초콜릿 향은 침샘을 자극했지만, 굽기 전 반죽보다 볼륨이 꺼진 브라우니가 빵 틀 안에 널브러져 있었다. “아빠 왜 안 익었어?”. “냄새는 좋다”. 내 자존심 마냥 널 부러져 있는 것을 보여주니, ‘떡, 아니 떡라우니 만드셨어요? 으하하”. 나도 민망함을 지우려 같이 웃었지만, 속으로는 울었다. 그날 이후로 몇 번을 더 했지만, 여전히 떡라우니만 만들었다. 안 되는 거는 안 되는 거로 생각하고 브라우니 만드는 것을 잊고 살았다.
몇 주 전 사진 찍으러 간 초콜릿 전문점에서 초콜릿 커버추어(수제 초콜릿을 만드는 재료)를 얻었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다시 한번 브라우니 만들기에 도전했다. 한두 번 실패한 것도 아닌지라 다시 실패한 것을 두고 둘이 낄낄거리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했다. 복잡한 레시피 대신 간단한 레시피대로 반죽해 구웠다. 거기에 더해 손 반죽 대신 믹서기에 거품기를 달고 했다. 재료가 잘 섞이고 공기가 잘 혼합되도록 말이다. 반죽하고 굽는 것을 본 윤희가 끌끌 혀를 차고는 자기 방으로 들어간다. 얼굴 표정에 기대감이 단 1%도 없다. 분명 저런 냉정함은 지 엄마 DNA 지, 내 DNA는 아니다. 반죽을 오븐에 넣고 20여 분 시간이 흘렀다. 오늘은 만회할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오븐을 열었다. 오호! 딱 봐도 제대로 된 듯. 브라우니를 식혀 칼로 써니 촉감이 좋다. 한 조각 입속에 넣었다. 혓바닥 힘만으로도 살살 부서진다. 브라우니는 씹기도 전에 입안에 초콜릿 향을 듬뿍 남기고 이내 사라진다.
“(큰소리로) 김~윤!”. 당당하게 불렀다. “왜?” 심드렁하게 대답하고 나온 윤희 코앞에 브라우니를 들이밀었다. “이번에도 냄새는 좋네”. 한 입 살짝 물었던 윤희가 조각을 삼키고는 이내 손바닥을 하늘 높이 올려 내민다. 실로 5년 만에 받아 본 하이파이브였다. “아빠. 우유 있어?”. “우유랑 줘”. 다 먹고 선 빈 그릇을 싱크대에 넣으며 한쪽 눈을 찡긋한다. 딸 키우는 재미가 이 재미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5년 전 실패했던 방식으로 다시 한번 해볼까나?. 단 윤희가 없을 때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