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종닭은 질기다. 육계와 비교해서 그렇다.
데바사키(てばさき)를 맛봤다. 나고야역과 붙어 있는 식품 매장으로 곧장 돌진해 사먹고는 궁금증을 풀었다. 데바사키는 나고야 명물로, 닭 날개를 튀긴 뒤 간장으로 양념한 것이다. 우리네 간장치킨하고 비슷한 맛이지만 좀 짜다. 그냥 먹기엔 짜도 생맥주 안주로는 그만일 듯싶었고, 저녁에 전문점에서 생맥주와 먹어보니 딱 맞았다. 데바사키를 맛보기 위해 나고야를 간 것은 아니었다.
일본 나고야로 ‘토종닭 여행’을 떠난 이유가 있다. 모 매체에 ‘토종닭은 더 이상 질기지 않다’는 주제로 글을 기고했다. 이제까지 토종닭은 질기지 않다고 글을 수차례 썼지만 달리는 댓글은 변함없이 ‘질겨’였다. 댓글을 찬찬히 보다가 우리보다 토종닭 복원을 먼저 하고 미식의 역사도 오래된 일본의 토종닭 식문화가 궁금해졌다. 나고야를 선택한 이유는 일본 토종닭 중에서 가장 유명한 ‘나고야 코친’의 본고장이기 때문이었다.
일본 토종닭협회에서 인증한 토종닭은 38종이다. 재래닭 유전자가 50% 이상, 80~150일 키워야 하고, 사육 면적은 1㎡당 10마리 이하 등 엄격한 기준을 지켜야 토종닭 인증을 해준다. 저마다의 맛과 장점을 뽐내지만, 일본에서는 3대 토종닭을 꼽는다. 4대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나고야 코친, 아키타 히나이, 가고시마 사쓰마 토종닭을 주로 논한다. 나고야 코친은 생산량으로도 여타 토종닭보다 월등하다. 일본 토종닭 중 처음으로 실용계로 인정을 받은 데다 지명도가 일본 전역으로 널리 퍼졌다. 실용계라 함은 순수 토종닭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토종닭과 다른 닭을 교배해 성장을 빠르게 하거나 알을 잘 낳도록 개선한 것이다. 나고야 코친은 재래종에 중국 종을 교배해 만든 닭이다. 국내 토종닭인 ‘우리맛닭’도 재래종에 코니시나 로드아일랜드 종과 교배해 육종했다.
재래닭은 예전부터 키우던 닭이다. 지금의 재래닭은 엄밀히 이야기하면 100년 전 키우고 먹었던 닭은 아니다. 나고야 코친만 보더라도 1905년에 육종한 품종이다. 산업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토종닭들이 사라졌다. 나고야 코친도 멸종위기까지 갔다가 1962년 도쿄 올림픽 전후 미식문화가 발전하면서 멸종위기를 벗어났다. 나고야 코친의 번성은 지역 토종닭 육종 바람을 불어넣었고, 1970년대를 지나 1990년대까지 토종닭을 복원하는 지자체가 많아졌다. 한국은 이보다 늦은 1990년대 들어서 복원 사업을 시작했다. 국내에서 민관이 복원 사업을 통해 복원한 토종닭은 청리닭, 제주 재래닭, 현인닭, 고려닭, 고센닭, 한협 3호, 우리맛닭 등이 있다. 이 중에서 한협 3호, 우리맛닭은 나고야 코친처럼 재래닭에 다른 종을 교배해 육종한 닭이다.
나고야에서 첫 끼는 숙소 근처의 오야코돈으로 유명한 식당으로 정했는데, 아뿔싸 공사 중이었다. 주변이 시장인지라 뭐든 있겠다 싶어서 한 바퀴 돌았다. 일본어로 토종닭을 뜻하는 ‘지토리(じとり)’라고 쓰인 간판을 보고 무작정 들어갔다.
스마트폰 번역기의 도움으로 나고야 코친임을 확인하고 덮밥과 꼬치를 주문했다. 나고야의 명물 중 하나가 장어덮밥이다. 잘 구운 장어를 밥 위에 얹은 것으로, 그냥 먹거나 쪽파와 와사비를 얹어 먹다가 마지막에 육수를 부어 먹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 집의 덮밥은 밥 위에 장어 대신 간장 양념으로 구운 닭고기를 얹은 것이다. 먹는 방법은 같다. 불맛 나는 간장 양념이 나고야 코친의 풍미를 한층 더 끌어올렸다. 토종닭 특유의 쫄깃쫄깃 씹히는 식감이 더해져 상당히 매력 있는 맛이다. 닭꼬치는 껍질만 주문했다.
살짝 데친 다음 구운 것이 나왔다. 껍질을 숯불에 직접 굽지 않고 데친 다음 구운 탓에 부들부들한 식감이었다. 부들부들한 식감이 나쁘지 않았지만 숯불에 바로 구워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식감이 더 괜찮을 듯싶었다.
국내에서 토종닭 소비는 유원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든 식당’에서 주로 이뤄진다. 판매 장소가 제한적이다 보니 요리는 백숙이나 닭볶음탕이 전부다. 토종닭에 각종 약재를 넣고 푹 끓인 백숙은 마치 보약과 같은 대접을 받았다. 토종닭을 먹는다는 것은 여느 토종 식재료들처럼 몸보신 개념이 강했다. 몸보신을 우선시하다 보니 요리법은 삶는 방식에서 더 나아가지 못했다.
경남 하동이나 전남 구례·순천에서는 토종닭을 구이로도 먹지만, 어디까지나 일부 지역에서 즐기는 조리법이다. 필자가 먹어본 닭 요리 중 가장 맛있었던 게 남도에서 먹었던 토종닭 구이다. 특히 꼬들꼬들한 껍질과 야들야들한 살코기가 있는 날개가 가장 맛있다. 그 누구한테도 양보하기 싫은 맛이었다.
백문이불여일식(百聞而不如一食)이란 생각으로 떠난 나고야. 굽고, 찌고, 튀기고, 삶는 모든 조리법으로 나고야 코친을 요리한 음식이 많았다. 철판구이, 가라아게, 꼬치구이, 우동, (치킨)카쓰, 라멘 등 일본 사람들이 일상에서 즐기는 음식에 나고야 코친을 사용했다. 국내는 백숙, 닭볶음탕에 토종닭을 사용하지만, 두 음식을 매일 먹지는 않는다. 토종닭을 대하는 두 나라의 다른 점은 일상에서 편하게 먹을 수 있냐와 아니냐의 차이였다.
국내에서는 토종닭을 다양하게 요리할 수 있음에도 여전히 푹 삶는다. 어느 닭이든 1년 넘게 키우면 질겨진다. 예전에는 토종이든, 아니든 닭을 오래 키웠다. 알을 얻다가 시간이 지나면 잡았다. 오래 키운 닭을 가마솥에 넣고 몇 시간 푹 고아야 겨우 고기를 뜯을 수 있었다. 오랫동안 질긴 토종닭을 푹 삶아 먹었기에 토종닭은 질기다는 인식이 강하다. 지금의 토종닭 사육기간은 길어야 6개월이다. 우리맛닭이나 한협 3호는 두 달이면 잡는다. 고기가 질겨질 새가 없다. 질긴 토종닭은 전설 같은 이야기지만, 전설은 사라지지 않고 끊임없이 사람들 사이를 떠돌고 있다.
몇 해 전 일본 규슈의 구마모토에서 신기한 닭을 맛봤다. 6개월 정도 사육하면 무게가 8~9㎏까지 성장하는 토종닭이었다. 별다른 양념 없이 소금만 뿌리고 숯불에 구웠는데 숙성 잘한 소고기를 먹을 때처럼 닭고기에 육즙이 가득했다. 같이 주문한 다른 토종닭 맛이 심심할 정도로 맛이 뛰어났다. 그런 경험 때문에 나고야 여행에서도 가장 궁금했던 것이 구이였다.
나고야 중앙역에 있는 백화점 식당가에서 토종닭 철판구이 매장을 찾았다. 부위별 철판구이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혼자인지라 주방 앞에 앉았기에 요리 과정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기름을 살짝 두르고는 닭고기를 구웠다. 누름 틀로 누르면서 굽다가 동그란 모양의 뚜껑을 씌우고는 닭에서 나오는 수분으로 살짝 지졌다. 얼추 익은 닭고기를 자르고는 강한 불로 빠르게 볶아 마무리했다.
닭다리, 안심, 껍질, 날개 등이 나왔다. 굽고, 찌고, 다시 구운 닭의 식감은 탄력이 넘쳤다. 이와 이 사이에서 통통 튀는 정도의 기분 좋은 탄력감이었다. 고기가 부서질수록 품고 있던 감칠맛이 나왔다.
몇 점 나온 껍질은 처음과 나중의 맛이 달랐다. 토종닭의 식감이 쫀득쫀득한 이유는 콜라겐 함량이 높기 때문이다. 열에 늘어난 콜라겐이 식으면 다시 수축한다. 처음에 따듯했을 때의 껍질은 호쾌하게 씹혔지만, 식은 상태에서는 조금 질겅거렸다. 이는 국내에서 토종닭 구이를 먹을 때도 마찬가지다. 나고야 코친의 맛은 구마모토에서 먹은 닭보다는 식감이 좋지는 않았다. 그래도 철판구이의 구성은 ‘1인 1닭’이 아니라 부위별로 ‘1인분’을 즐길 수 있게 돼 있었다. 국내에서 토종닭은 무조건 한 마리 단위다. 전남 구례에서 닭구이를 먹어도, 충남 금강유원지에서 닭볶음탕을 먹어도 주문은 한 마리여야 한다. 나고야에서 혼자 먹었던 모든 토종닭 요리는 1인분이 가능했다. 우리나라에서는 혼자라도 한 마리를 주문해야 하는 것과 달랐다.
1인분이 가능하고, 특별한 조리법이 아닌 일상에서 언제든지 즐길 수 있다는 점이 우리네 토종닭 소비문화와는 분명한 차이였다. 나고야 코친이 맛있지만, 국내 한협 3호나 우리맛닭하고 맛이 크게 차이나지 않았다. 나고야 코친으로 가라아게가 가능하다면 우리맛닭도 가능할 것이다. 나고야 코친으로 꼬치구이가 가능하다면 우리맛닭도 가능할 것이다. 꼬치구이는 실제 시도하고 있는 식당도 있다. 서울 신사동에 있는 이자카야 ‘쿠이신보’는 한 마리 예약제로 운영하고 있다. 예약제로 운영할 수밖에 없는 것도 토종닭 유통 현실 때문이다. 토종닭이 예전보다는 많이 알려졌지만, 전용 도계장도 없거니와 부분육이나 살코기만 따로 유통되지 않기 때문이다.
일본 토종닭이나 우리 토종닭이나 맛있다. 다만 우리는 일상적으로 먹고 즐길 수 있는 곳이 일본보다 부족하다. 닭고기를 부위별로 살 수 있다면 일본만큼 음식이 다양해지지 않을까. 일본 나고야에서 된장우동을 먹으면서 좋은 고기를 사용했다고 다 맛있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맛이 있고 없고는 개인의 취향이지만, 우동 한 그릇에도 토종닭을 쓸 수 있는 것 자체가 부러웠다. 토종닭을 필요에 따라 부위로 살 수 있는 환경이 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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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에 기고한 글에 사진을 더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