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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을 바꾸었는데

상품명이 달라지니 매출이 달라졌다.

by 김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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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전시장을 가거나 아니면 입점 심사를 의뢰 받기도 한다. 그런 상품 중에 사랑 애(愛)가 상품명에 있으면 혼작 픽 웃는다. 2005년도였다. 2006년도 인지 정확하지 않다. 그 무렵일 듯싶었다. 그 당시의 커다란, 도대체 해결 기미가 전혀 없는 문제에 봉착해 있었다. 친환경 매장에 고기를 공급하고 있는 업체는 오랫동안 씨알 축산이었다. 사업 초기에 경쟁점과 다른 상품을 공급하기 위해 축산도 손댔다. 홍성의 생산자가 소를 키워주기로 했다. 생각은 그랬다. 순환 농법. 우리가 소를 키우고, 축분이 다시 논으로, 볏짚은 다시 소로. 이런 생각으로 가맹점 사업이 열. 개 조금 넘었을 때 회사에 송아지 사달라고 기안을 올렸다. 몇 번 퇴짜를 맞았다. 그사이 나는 약속한 것이 있기에 송아지 대금을 줘야 했었다. 업체에 사정 이야기를 해서 3,500만 원을 내 이름으로 빌렸다. 우선 그 돈으로 송아지 입식 자금을 해결했다. 기안이 통과되고 돈이 나왔을 때 얼마나 안심이 되었던지. 순환 농법이라는 큰 꿈을 품었는지도 모르는 송아지가 홍성에서 무럭무럭 자랐다. 마블링이 본격 등장하던 2005년, 나는 반대의 길을 갔다. 황소를 거세하지 않았다. 친환경 매장에서 파는 소고기가 거세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동물 복지는 아니더라도 자연 그대로 하는 것이 맞는다고 생각했다. 물론 반대는 많았다. 마블링이 없으면 못 판다라는 가맹점의 엄포도 있었다. 게다가 생고기도 아니고 냉동이었다. 지금이야 냉동 고기에 대한 인식이 그리 나쁘지 않지만, 그때는 최악이었다. 더욱이 생산비 보존 차원에서 소 값은 3등급이 나온던 말든 1등급 이상으로 했다. 매입 조건 때문에 미친 놈 소리 많이 들었다. 거세를 하지 않으면 마블링이 잘 형성되지 않는다. 생산 비용에 정도의 이익까지 보장하려고 했다. 욕 먹으면서 가격을 그리 결정한 것은 생산비가 보장이 되야 맛 좋은 것이 나온다고 생각했다. 이 생각은 이십 년 가까이 지났어도 변함이 없다. 같은 홍성에서 돼지도 무항생제로 같이 키웠다. 초록마을을 만들어 가면서 가장 잘했던 일 중에서 손가락 안에 꼽는 일이 축산 독자 브랜드 구축이었다. 생협, 한살림도 안 한 일을 우리가 먼저 했다. 세상 일이 양이 있으면, 음이 있다. 상품은 잘 나갔다. 잘 나가는 부위 만 그랬다. 잘 나가는 부위가 있으면 남는 부위도 있다. 등심, 안심, 갈비는 모자랐다. 600kg 소를 잡으면 안심은 500g 포장으로 20개가 안 나왔다. 1kg 조금 넣게 나오는 특수 부위는 아예 공급 생각조차도 못했다. 등심 공급하자고 무작정 소를 잡을 수가 없었다. 때가 되면 송아지가 큰 소가 된다. 그때를 맞추어서 도축해도 남는 부위가 내 목줄을 조였다. 소를 잡고 나면 엉덩이 살과 뼈가 남았다. 목심이나 양지는 그럭저럭 나갔다. 모자라거나 적당하거나 혹은 남아돌거나 그랬다. 남아도는 게 적당해야 하는데 적당함을 넘어 냉동 창고에 쌓여만 갔다. 반기별로 재고 조사하고 나면 골치가 아파졌다. 해결 방안을 찾아야 하는데 쉽지가 않았다. 축산 하는 사람들 공통의 문제점이 재고 처리다. 버크셔를 판매하고, 컨설팅을 해주면서 삼겹살이나, 목살은 이야기조차도 안 했다. 돼지는 뒷다릿살이 가장 문제다. 외국은 모자라다. 생햄을 만들기 때문이다. 우린 구워 먹기에 삼겹과 목살이 주로 나간다. 그래서 버크셔로 만두 기획했다. 과부 사정은 홀아비가 잘 안다. 2000년대의 나는 홀아비였다. 2010년대의 버크셔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알았기에 만두를 만들었다.

소 뒷다릿살을 처리해야 했다. 그래서 우선 육포를 만들었다. 발색제를 빼고 만들었다. 아주 조금씩 나가는 것이라 재고 처리에는 큰 도움은 되지 않았다. 그래도 재고 처리를 위한 시작 상품이었다. 그다음으로 어어져야 했지만 없었다. 어느 날 가맹점주와 통화를 했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안심 나오면 자기 몇 개 더 챙겨 달라 했다. 알았다 하면서 물었다. “안심은 왜요?” “아니 젊은 엄마들이 아이 이유식으로 쓴다고, 기름도 적고, 심줄도 없어서 좋다고” 기름기는 이해가 됐어도 심줄은 이해가 안 됐다. 다짐육은 말 그대로 갈아 버리기에 심줄이 제 기능을 못 한다. 기름은 지방까지 넣어서 갈아 버리기에 많았다. 다짐육은 ‘특별한’ 부위가 없었다. 작업해서 진열해 놓은 것 중에서 할인 판매까지 하다가 남는 것을 주로 한다. 통화를 끝내고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는 모른다. 전북 고산인지, 충남 홍성인지도 모른다. 생고기를 먹고 있었는지, 아님. 낚시터에서 혼자 밤낚시를 할 때였는 지도 가물가물하다. 명확한 것은 스치듯 생각이 지나갔고 난 그 생각을 붙들었다는 것이다. 혼잣말로 “어 생고기” 생고기는 말 그대로 생으로 먹는다. 생고기 먹는 부위는 ‘특별한’ 부위다. 주로 엉덩이 살이다. 그 부위를 사용하는 이유는 이렇다. ‘특별히 기름도 적고, 심줄도 없다.’ 이유식을 위해 안심을 찾는 엄마들의 고정 멘트와 같았다. “뒷다릿살로 이유식을?!” 괜찮을 듯싶었다. 원하는 안심은 원활히 공급 못 해 욕은 욕대로 듣던 상황도 단박에 해결할 듯싶었다. 협력사에 의견을 전달했다. 뒷다릿살로 이유식용 다짐육을 만들어 달라 했다. 아무 부위로 만들던 다짐육을 ‘특별한’ 부위로 만든 최초의 상품이 탄생했다. 안심은 모자라고, 뒷다릿살은 남아돌고, 생고기를 먹은 세 개의 사건이 합쳐져 만든 상품이었다. 포장도 1회용으로 나눴다. 벌크로 되어 있으면 요리할 때마다 해동과 재냉동을 반복하는 불편함을 없앴다.

마케팅팀에 상품 의도를 전달하고 이름을 지어 달라 했다. 몇 가지 안이 왔었고 그중에서 ‘우리 아이 입안 애(愛)’가 낙점.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도 잘 담겨 있었고, 특히 ‘애’와 ‘에’의 발음이 비슷해 말도 맞았다. 우리 아이 입안 애, 이유식용 다짐육이 탄생했다. 전에 있던 다짐육 상품과 달리 특별난 부위를 사용했고 이름을 바꿨다. 매출이 달라졌다. 평소에 나가던 다짐육보다 몇 배가 나가기 시작했다. 이후 이유식용 시리즈는 앞에 우리 아이가 붙었다. 새우살, 대구살, 닭고기 살을 비롯해 김가루에까지 붙였다. 초록마을 고객들 대부분이 임신을 기점으로써 오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떠나는 이들이 많았다. 그 사이에 있는 고객들 마음에 쏙 드는 이름짓기이었다. 덕분에 나는 재고 처리도 어느 정도 할 수 있었다. 궁극적인 해결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그때 만들었던 상품이 아직도 팔리고 있다. 여러 아류를 만들었다. 할인점에 가면 냉동 포장한 이유식용 다짐육을 본다. 칸칸이 나뉘어 있다. 빙그레 웃고 지나간다. 저게 어떻게 하다가 나왔는지 알까? 하면 말이다. 지금도 그때 재고 생각하면 갑갑함이 밀려온다.



세 번째 책 원고 중 일부입니다.

일명 업(業)세이(essay).

제 직업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두 번째 책은 10월에 출간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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