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진영 Dec 29. 2021

2004년, 곱창김을 찾았다


#MD_에세이

#곱창김


“마진 조정, ….  힘들겠습니까?” 수화기 너머에서 한숨이 들렸다. 완도행을 결심하고 내일 찾아 뵙겠다고는 끊었다. 완도에서 김을 공급하는 업체 사장님과의 통화였다. 동김, 겨울 끄트머리에 나오는 김과 말밭(지주식) 돌김을 공급하는 업체다. 동김은 완도 중매인 사이에서는 잡김으로 취급하는 녀석이다. 김을 어느 정도 수확한 다음에 바다를 떠돌던 김포자가 붙어 다시 자란 김이다. 여러 가지 김의 중합체로 모양이 좋지 않으나 향 만큼은 끝내줬다. 맛이 좋으면 그만이지만 생김새 때문에 잡김 취급이었다. 2003년도에는 모양을 중시했다. 여전히 김은 잡티가 없어야 되고, 윤기가 흘러야 했다. 두 가지 이유로 사람들은 바다에 염산을 뿌렸다. 원래는 초산이라든지 유기산을 뿌려야 한다. 바다에 산을 뿌리면 파래 등 잡것이 붙지 않는다. 좀 더 깔이 좋은 김을 생산하기 위해 어떤 사람은 바다에 염산을 뿌렸다. 염산을 뿌린 김은 잡티가 붙지 않는다. 과일 모양을 좋게 하기 위해 뿌리는 농약처럼 바다에 염산을 뿌리던 시절이었다. 소비자들도 그게 당여하다 여겼고, 그것을 부추긴 것은 티브이에 나오는 전문가들이었다. 좋은 김 고르는 방법을 설명할 때 잡티가 없고, 광택이 흐르는 것을 고르라 설명하니 다들 잡티가 있으면 안 좋은 것로 알았다. 사실 잡티가 있는 것이 자연스런 것임에도 말이다. 김 양식 방법 중 두 가지 중에서 부유식으로 생산하는 김에 염산을 뿌렸다. 자라는 동안 계속 물속에 있다 보니 생산성은 좋아졌지만 잡티가 붙었다. 부유식은 생산성이 좋아 어민들이 좋아했다. 부유식은 김이 하루종일 물속에 있기에 성장이 좋을 수 밖에 없었다. 반면 지주식은 바다에 말뚝을 받고 김밥을 연결해 키우는 방식으로 물이 빠지면 성장을 멈췄다. 원래 갯바위에 붙어 자라던 김의 습성과도 같았다. 물이 빠지면 잠시 성장을 멈추고 광합성을 했다. 햇빛과 바람으로 자라기에 김은 더디 자라도 향 만큼은 끝내줬다. 물이 빠지는 지주식에서는 염산을 쓸 일이 없었다. 

맛좋은 김이 나는 곳은 무안군의 도리포 앞바다다. 



10시간을 운전해서 완도 읍내에 도착했다. 지금이야 서울에서 7시간 이내의 거리지만 그때는 길이 좋지 못했다. 목포까지 가서 편도 1차선의 도로를 따라 영암, 해남을 거쳐 완도를 가야 했다. 서울에서 목포까지, 목포에서 완도까지 소요 시간이 비슷했다. 점심 때 쯤 도착하겠다고 이야기를 드리고 출발했는데 사장님이 약속을 까먹고는 외지에 나가버렸다. 황당함을 넘어 화까지 났다. 두어 시간 있으면 돌아 오니 기다렸으면 한다. 거절하고는 서울로 돌와왔다. 10시간을 다시 운전하면서 고민을 시작했다. 동김이나, 돌김을 대체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적절한 마진과 고품질의 상품을 줄 수 있는 상품을 찾기 시작했다. 

초록마을 거래 업체 중에서 건어물을 공급하는 업체에 전후 사정을 이야기 하고는 부탁을 드렸다. 맛있는 김을 찾고 있으니 구해 달라고 말이다. 여름이 끝나가고 있었을 즈음이었다. 겨울이 시작 될 때 김을 하나 들고 찾아 왔다. 아무 말 없이 김을 내미는 김을 잘라 입에 넣었다. 좋은 김은 입에 넣으면 침에 바로 녹는다. 입 천장에 달라 붙지 않는다. 붙더라도 이내 떨어진다. 김이 침에 녹으면서 가지고 있던 단맛과 향을 내뿜기 시작했다. 향이 너무도 좋았다. 입안을 맴돌던 김 향이 콧속을 마구 헤집고 다녔다. 다시 김을 맛보고 또 맛봤다. “와, 우와, 이야” 몇 번을 한 다음 그제서야 무슨 김인지 물었다. “무슨 김이 이 따위에요. 왜 이렇게 맛이 좋아요?” “곱창김이라고 들어 보셨나?” “곱창김?” “김이 곱창처럼 길게 자란다고 해서 곱창김입니다. 정식 명칭은 잇바디 돌김입니다” 묻지도 따지지 않고 그 자리에서 매입을 결정했다. 상품이 입점하고 발주가 나오길 기다렸다. 발주가 거의 없었다. 신상품이 나오면 가맹점주들은 살짝 눈치를 봤다. 장사 잘 되는 곳이나 잘 하는 곳은 발주가 나왔지만 몇 몇 점주였다. 게다가 이름도 이상한 곱창김. 발주가 다른 것보다도 적었다. 전국에 있는 가맹점주들에게 일일히 전화를 돌리지 안았다. 그럴시간도 없거니와 그럴 필요도 없었다. 지역별로 가맹점주 모임이 있다. 모임 중에서 대장 역할을 하거나 장사가 가자 잘 되는 점포가 있었다. 그 점포에 전화를 걸어 발주를 부탁했다. 김 특징과 장점에 대해 일대일 교육. 신상품이 모두 성공하면 좋겠지만 그런 경우도 없다. MD가 관심을 가지는 정도에 따라 성공 확률이 변한다. 공략을 한 지역 대표 점주가 대신 영업을 해줬다. 현장에서 같이 고민하는 사람의 목소리는 MD의 수 만 번 발주 전화보다 효과가 있었다. 발주가 시나브로 늘기 시작했다. 발주 속도가 빨라지기 시작하자 불과 며칠 사이에 시즌 아웃. 내년을 기약했다. 2004년도 겨울 초였다. 아마도 내 기억으로는 일반 유통업체에서 곱창김을 판 최초였다. 향이 좋은 것은 사람들이 좋아한다고 느낀 최초의 상품이었다. 모양보다는 속내를 쫓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한 상품 중 하나다.  


요새는 곱창김 재배하는 곳이 많기에 살 수 있는 곳이 많아졌다. 지방의 작은 포구에 가도 곱창김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일반 김은 겨우내 채집하지만 곱창김은 두어 번 수확하면 끝난다. 쌓아 놓고 팔 정도는 아니다. 그렇기에 장난을 많이 친다. 김을 만들 때 곱창김 조금에 돌김을 섞어 곱창김이라 하는 곳이 많다. 이런 곳은 생김 먹어보면 바로 알 수 있다. 김이 입 천정에 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하다하다가 2021년에 2월에는 곱창김 만드는 곳에서 사카린 장난까지 쳤다. 김 원초 가공 공장에서 김을 건조하기 전에 사카린을 넣었다고 한다. 김 가공업체 대부분이 관련이 되었다. 사실 곱창김은 사카린을 뿌리지 않아도 될 만큼 향과 맛이 뛰어난 김이다. 하지만 심한 경쟁속에서 살아 남으려는 이들이 저지른 잘 못이다. 곱창김이 아니라 다른 김도 섞으니 단맛을 더하려고 했던 것도 있다. 


김은 향으로 먹는 음식이지 눈과 혀로 먹는 음식이 아니다. 모양 좋은 것이 맛도 좋을 것이라는 생각. 이왕이면 다홍치마가 식품에서는 역효과를 낸다. 모양이 나쁘더라도 본디의 향과 맛을 유지하는 지를 봐야 한다. 코를 막고 먹으면 사과와 양파를 구별하지 못한다는 이야기는 들어 봤을 것이다. 식품은 향이 살아 있어야 한다. 


#여행자의식탁



매거진의 이전글 제주 송당리 유기농 당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