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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영 Jan 06. 2022

만두는 진심

엄마의 만두

세상에서 딱 하나만 먹고 죽으라고 한다면 무엇을 먹을까? 고민이 되나? 난 고민이 안 된다. 답은 정해져 있다. 엄마의 만두다. 팔십 노모가 쓰러지신 지 꽤 오래됐다. 어느 정도 움직일 수 있게 회복되었지만, 쓰러지기 전 상태로는 돌아오지는 못했다. 그나마 누나가 어눌해진 엄마 말소리를 듣고 바로 집 옆에 있는 성모병원에 모시곤 간 덕에 뇌출혈이었음에도 그 정도로 끝났다. 누나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했었다. 병원에 입원하기 전에 부평 집에 갔었다. 집에 돌아오는 길, 엄마가 검은 봉지를 내밀었다. 꽁꽁 얼린 만두였다. 김장 김치가 익을 무렵이면 피를 밀고는 만두를 만드셨다. 신맛이 적당히 있는 김치만두를 제일 좋아한다. 가끔 여름에 호박 넣은 만두도 만드셨지만 김치만두가 제일이었다. 며칠 지나고는 간식으로 만두를 구웠다. 만두를 먹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만두를 언제까지 먹을 수 있을까? 지금 먹는 만두가 마지막 만두는 아닐까? 그리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가 입원하셨고 3년이 지났다.

 어디서, 누가 만든 만두를 먹더라도 집는 순간 엄마 만두가 생각난다. 처가에서도 만두를 만들어 주긴 해도 입맛이 맞지 않았다. 엄마는 피를 밀었고 처가는 피를 샀다. 사서 하는 피와 만든 피는 식감부터 차이가 났다. 요새 인기 많은 만두를 사보면 점점 더 피에 전분 함량을 높였다. 그 덕에 피는 허여 멀건해지고 쫄깃함만 늘었다. 육즙(이 아니라 지방이지만)도 많아졌다. 

2014년 쿠팡에서 일할 때였다. 버크셔를 알고 나서 뒷다릿살 재고 문제를 알았다. 돼지고기가 아무리 맛있어도 뒷다리는 재고로 쌓였다. 참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였다. 그래서 만두를 기획했었다. 시중에 있는 만두의 고기 함량을 우선 조사했다. 고기만두라 해놓고는 대부분 10% 미만이었다. 돼지고기 함량이 10%로라고 해도 순살 함량이 얼마인지 만드는 사람만 알았다. 돼지고기에서 나오는 어떤 것을 사용해도 돼지고기 함량에 속한다. 돼지고기 함량 10%를 비계로만 가득 채워도 국내산 돼지고기 함량이 100%로 된다. 간혹 TV에 햄 광고를 보다가 혼자 웃는 경우가 있다. 자사 제품은 순살 100%로 광고를 볼 때다. 타사와 비교하기 위한 광고 카피지만, 따지고 보면 자사 제품도 디스하고 있다. 이 제품은 프리미엄 제품으로 다른 부위를 사용하지 않고 순살만 사용했다면 자기들이 만드는 다른 것들에는 껍질, 피, 내장 등이 모두 들어가 있다는 이야기다. 만두 기획하면서 염두에 둔 것은 ‘고기 함량’. 가격을 떠나 ‘최대한’의 함량이 목표였다. 만두 업체에 문의했다. 고기 함량 최대로 해서, 비계는 넣지 말고, 말이다. 돌아온 답변은 이랬다. 첫째, 비계 넣지 않으면 속을 넣어 주는 기계가 속을 밀지 못한다. 적당히 지방이 있어야 정량대로 속이 피 위에 떨어진다. 두 번째 비계까지 포함한 고기 함량은 28%가 최대다. 그 이상 넘어가면 기계가 속을 밀어내지 못한다. 두 가지 답변을 듣고서는 그렇다면 고기 함량 28%에서 최소한의 지방 함량은? 질문하니 답이 중량의 15%가 마지노선이라고 했다. 돼지고기 함량은 28%, 그중에서 15%는 비계, 고기 함량의 4% 정도 지방을 넣고 만두를 만들었다. 고기 함량 외에 고민이 있었다. 피를 우리밀로 해야 할지, 아니면 수입밀로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었다. 최종 제품은 수입밀, 양도 많지 않은 OEM 입장에서 우리밀까지 고집하기 어려웠다. 다만 나중에 양이 드러나면 우리밀로 해주겠다는 약속을 받았으나 8년이 지난 아직 그대로다. 단종은 되지 않았으나 그렇다고 딱히 잘 가나 가지도 않은 그 상태다. 

버크셔로 만들면 대박 날 것이라는 내 착각이 컸다. 버크셔는 나만 좋아했지 남들은 몰랐다. 그것이 무엇으로 만들든 만두일 뿐이다. 사람들은 만두 맛을 잘 보지 않는다. 그냥 비비고이니깐 사고, 저렴하긴 깐 산다. 누가 맛있더라 하면 산다. 맛있게 만든 것은 먹어 본 사람만 산다. 그래서 좀비처럼 죽지 않고 8년 동안 살아 있는 까닭이다. 버크셔 돼지고기는 참으로 맛있는 고기다. 고기 감칠맛이 참으로 좋다. 그 고기로 만두를 만들면 우주 최강 만두를 만들 줄 알았다. 그 또한 착각이었다. 만두 속은 간 고기를 사용한다. 고기를 갈면 고기의 특성은 사라진다. 그 점을 망각했다. 간 고기는 다른 돼지고기와 맛이 비슷해진다. 지방의 맛이 다르긴 해도 굽거나 쪘을 때 확실하게 차이나던 식감은 갈려지며 사라졌다. 지방을 적게 넣으니 적게 팔렸다. 방송에서, 블로그에서 만두에서 육즙, 육즙 하고 있는데 혼자서 반대 방향으로 갔다. “육즙이 아니라 그것은 지방 녹은 것이다”를 외치며 말이다. 육즙을 강조하는 만두는 피에 전분이 많이 들어간다. 어떤 만두는 전분으로 만들어 투명한 것도 있다. 만두피를 만들 때 전분을 많이 넣은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육즙이 많아져 밀가루만으로는 만두소의 수분감을 감당하기 어려워졌다. 두 번째로는 전자레인지용 만두가 많아졌다. 전자레인지에 돌렸을 때 식감이 전분을 많이 넣어야 쫄깃한 맛이 난다. 쫄깃한 맛이라고는 하나 피가 진득거린다. 그 식감은 진짜 질색이다. 버크셔 만두는 피를 찢어도 육즙이 흐르지 않는다. 보통의 고기만두라면 있어야 할 것이 육즙인데 없었다. 딱 퍽퍽하지 않을 정도만 넣었고, 다른 재료와 조화가 맞았다. 지방이 많이 들어간 만두는 먹어보면 처음에는 입에 딱 맞는다. 두 개, 세 개 먹다 보면 느끼함이 밀려든다. 네 개째 먹으면 후추 향이 갑자기 튀어나온다. 지방의 맛에 잠시 묻혀 있던가 나온다. 그런 맛이 싫었다. 그게 정반대의 상품을 만들었다. 짜고, 기름지고, 느글느글 한 맛이 없는 게 버크셔 만두다. 남들과 다르게 만들었음에도 그럭저럭 팔렸다. 팔리는 게 용했다. 비계도 더 넣어 육즙(?) 가득하게 보이게 만들어야 했다. 그래도 망하지 않았다. 지난 8년간 버크셔 만두를 사주신 분들께 이 자리를 빌려 감사 인사드린다. 덕분에 여기까지 왔다고 말이다. 


8년 전 시작할 때 곧바로 손 만두와 김치만두를 같이 할 예정이었다. 잘 나갈 그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세상이 내 예상대로 흘러가면 좋겠지만 그런 일은 극히 드물다. 예상이 빗나갈 때마다 우린 계획을 수정한다. 수정할 때는 하더라도 빗나가는 정도를 줄이기 위해 연습하고 공부한다. 그래도 빗나가는 게 인생. 8년, 때를 기다렸다. 그리고는 오랜만에 만두 공장 대표를 만났다. 만나는 자리에서 조심스레 손 만두와 김치만두 이야기를 꺼냈다. 매출이 별로라 조심스레 이야기했다. 만일 매출이 많았다면 내가 갑이다. 유통업체와 공급 사이를 갑과 을 사이라 한다. 대부분 유통업체가 갑일 듯싶지만, 아니다. 매출이 갑과 을의 지표다. 매출이 많은 쪽이 갑의 위치를 차지한다. 그런 조심스러운 나의 문의에 만두 공장 대표는 화끈하게 답했다. “하지 뭐” 그다음부터 일사천리로 진행. 드디어 8년 만에 버크셔 군만두의 형제 만두가 탄생했다. 포장에 관한 디자인 아이디어부터 레시피까지 내가 했다. 돈은 판매 금액의 일정액을 받기로 했다. 돈을 떠나 이런 일을 하는 게 신나고 재밌다. 김치만두는 여전히 불만이 남아 있다. 개선할 점은 김치로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다. 김치를 익혀서 해야 김치만두지만 그렇게 못하고 있다. 김치를 익혀서 소를 만들면 먹은 이들 중에서 상했다고 클레임 거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즉석에서 만들어 주는 시중 만둣집의 김치만두 또한 비슷한 사정이다. 배추와 채소를 절여서 매운맛만 더해 김치만두라고 한다. 맛도 보르면서 클레임부터 거는 사람들 때문에 김치만두가 이상해졌다. 몇 년 내로 잘 익은 김치로 만들 생각이다. 진짜 김치만두를 말이다. 


남들과 다른 일을 하는 나. 흐름을 바꾸는 나. 이 제품 출시할 즈음 나를 표현하는 태그를 바꿨다. ‘#시장을바꾸는_MD’로 말이다. 생각해 보니 많지는 않아도 꽤 많은 것을 바꿨다. 식재료를 품종으로 찾도록, 멸치에서 건조 과정을 생략해 새로운 식재료로, 탁한 돼지국밥 대신 맑은 돼지 곰탕을 등등. 내가 했다고 해서 뭐가 바로 바뀌지는 않았겠지만, 시간이 지나 그 시작점에서 그 이야기를 했다는 것이 좋다. 그래서 난 내 직업을 좋아한다. 시장을 바꾸는 자_식품 MD 김진영.   


#만두

#버크셔만두

#한돈 #뒷다릿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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