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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영 Jan 07. 2022

멸치는 똥이 없어요

대가리와 내장을  허하라 

꼭 내장이나 대가리를 딸 필요가 없다

진한 향이 필요한 사람은 그냥 끓여도 된다.


페이스북을 보다가 글 하나가 눈에 띄었다. 새로 넷플릭스에서 하는 드라마의 과학적 오류에 대한 지적이었다. 달에서 바라보는 지구의 모습에 관한 이야기로 달과 지구의 공전, 자전을 이야기하면 바라보는 시점이 오류라는 준엄한 ‘궁서체’의 지적이었다. 지적에 대해 누군가는 “그냥 봐라” 또 누군가는 “드라마 만들 때 고증 잘해야 한다.”라고 맞장구를 쳤다. 나는? 그냥 보다가 만 드라마라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아마도 잠깐 지나가는 장면인데 아는 사람 눈에는 바로 띄는 오류는 맞겠다 싶었다. 요새 공중파나 종편에서 무슨 프로그램 하는지는 모른다. 그냥 유튜브를 통해서 본다. IPTV를 보고 있지만, 다시 보기는 다 중단했다. 유튜브나 넷플릭스 등 새롭게 구독하는 것이 늘어서 거의 보지 않기에 그렇게 했다. tvN에서 일전에 방송한 강식당을 유튜브에서 짤로 보고 있었다. 경주 편의 처음 식당 문 여는 날이었다. 가만히 지켜보다가 달에서 바라보는 지구의 위치가 잘못되었다고 지적한 사람처럼 나도 지적질을 하고 있었다.

이수근은 대가리 따고 강호동은 디포를 그냥 넣는다.

장면이 이랬다. 강호동은 이수근한테 멸치 똥을 따라고 했다. 시커먼 색이라 똥이라 하지만 내장이다. 삶고 말리는 사이 그런 색이 되었을 뿐이다. 그리고는 육수에 넣을 재료를 준비한다. 파와 양파를 다듬고 이어서 디포리(밴댕이가 표준어)를 넣는 장면이었다. 잠깐! 멸치는 대가리와 내장을 따는데 왜 더 큰 디포리는 그냥 넣냐! 말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국물 내는 멸치는 항상 대가리와 내장을 땄다. 쓴맛, 잡맛 난다는 이유였다. 그럼 디포리는 괜찮은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면 대답을 못 할 것이다. 밴댕이는 경남 일부 지역에서 먹던 식재료였다. 2000년 초반까지 신문 기사에 나오지 않을 정도로 존재감이 없었다. 낯선 식재료였다. 게다가 멸치보다 조금 들어간다(강식당에서는 냉면 그릇 하나가 들어갔다). 먹는 방법도 몰랐고 넣는 양도 적으니 그냥 넣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멸치는 왜 땄을까? 냄새가 났기 때문이었다. 멸치는 등푸른생선, 몸에 지방이 많다. 삶고 말린 다음 냉장고에 보관해야 한다. 70년대까지 집이나 시장 건어물 가게에서는 멸치를 상온에서 두었다. 뜨거운 날씨에 배나 대가리가 노랗게 변했다. 맑은 기름을 튀기면 노란색이 짙어지다가 종국에는 검게 변했다. 산화하는 기름의 색 변화다. 멸치가 노랗게 변한 것은 지방이 산패한 것이다. 산패한 기름은 쓴맛을 낸다. 노랗게 변한 멸치의 내장과 대가리를 제거해야 쓴맛이 덜 났다. 그런 것이 학습되고 비법처럼 전승이 되었다. 집에 냉장고 몇 때씩이나 두고 사는 지금까지 정설로 남아 있다. 지금 멸치 보면 하얗다. 배에서 잡아 바다 위에서 바로 삶는다. 하루에 몇 번씩 배가 오가며 육지로 실어 나른다. 육지에 도착한 멸치를 건조하고는 냉동고에 넣는다. 가공이나 보관 상태가 좋지 않아 멸치 지방이 산패할 틈이 없다. 애써 수고를 자처해 굳이 대가리 딸 필요가 없다. 멸치 그냥 넣어도 괜찮다. 시대가 바뀌면 레시피는 바뀌어야 한다. TV에 나와 “멸치 머리(대가리가 맞음에도 고급지게 저런다) 따세요”라는 소리 하는 요리연구가여, 세프여 공부 좀 하자. 진한 멸치 향보다는 깔끔한 육수를 원했다면 “오케이”.  멸치 뭣이 중허디 알면 따라는 소리 함부로 하지 마라. 


작년 10월에 출간한 책입니다.

3년 동안 다닌 오일장의 풍경과 먹거리를 기록했습니다.

지역이 맛으로 가장 빛날 때.. 그곳을 찾아갔습니다. 


http://www.kyobobook.co.kr/product/detailViewKor.laf?mallGb=KOR&ejkGb=KOR&linkClass=&barcode=979116782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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