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깃밥을 폐하라!
50년 해먹었면 됐다!
거제 생대구탕. 탕은 훌륭했으나 밥은 그에 맞지 않았다. 묵은 밥인듯 떡이 졌다.걸으며 듣는 음악의 시초는 워크맨이었고, CD에 이어 MP3 기계가 나왔을 때는 신세계였다. 신세계 MP3는 20년 사이 박물관에 자리 잡고 있다. 시대에 따라 유행은 변하고 지나간다. 1970년대 태어난 녀석이, 나보다 어린 녀석이 변함없이 시대를 호령하고 있다. 공깃밥 이야기다. 1970년대에 쌀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강제로 시행한 것이 밥공기. 호탕한 우리 민족이 사용하던 것은 그보다 몇 배 큰 주발이었다. 그 당시 강제한 공기의 크기는 지름 10cm, 높이는 6cm라고 한다. 지금은 그보다 조금 더 작아졌다. 공기에 밥을 담을 때 80%만 담도록 국롤로 친절하게 정했다. 나라에서 하라고 하면 가타부타 없이 해야 했던 시절, 한 번 어기면 영업정지 한 달. 두 번째는 두 달? 아니다. 바로 허가취소다. 자유를 부르짖는 사람들의 선망의 대상인 박정희 정권 시절의 이야기다. 겨우 밥공기 어겼다고 영업 취소라면 백신 안 맞는 사람들은 아마도 어디로 끌려갔을 것이다. 자유를 누린 만큼 책임을 엄중(?)하게 묻던 시절이었다. 시대적 분위기에 맞물려 매장에서 해주던 돌솥이나 냄비 밥도 사라졌고 같이 밥맛도 사라졌다.
식당의 밥맛이 사라지고 있을 때 국내 쌀 수급은 자급자족의 꿈을 이뤘다. 곡창지대에서 재배한 통일벼가 일등공신. 국민은 태국의 인디카종을 조상으로 모시는 통일벼 품종의 정부미를 먹고, 서울에 잘 나가는 사람들은 가까운 이천이나 여주에서 재배한 일반미, 품종도 밥맛 좋아 보이는 아끼바레를 먹었다. 70년대 일반미 먹던 사람들이 경기미가 최고야 했던 이유다. 두 품종의 밥맛은 거짓말 조금 보태서 벤츠와 티코 차이였다. 지금은 지역의 차이가 없다. 전라도나 경상도 곡창지대에서 더는 정부미를 심지 않거니와 지역 특성에 맞는 품종을 육종하고 심는다. 지역마다 떼루아를 가득 품고 있는 쌀이 나온다. “어디 쌀이 최고야!” 말하는 사람은 새벽종이 울릴 때 여전히 운동(일) 나가야만 하는 시절 속이다. 국내에 일 년에 심는 품종 수가 대략 200개다. 지역, 농협, 개인이 만든 쌀 브랜드가 2000여 개다. 다양한 쌀을 생산하고 있지만 우리는 여전히 식당에서 밥 먹을 때 99.9% 공깃밥이다. 밥공기는 잘못이 없다. 공기에 담아 뚜껑을 닫는 사람이 문제다. 밥을 담아 뚜껑을 닫는 순간 밥은 질식한다. 뜨거운 밥이 내뿜는 열기를 고스란히 품고 있다. 처지가 비슷한 녀석들끼리 밥장고 안에서 말이다. 밥은 눌리고 김은 수분이 되어 다시 밥으로 돌아간다. 한나절 지나면 밥은 누렇게 뜬다. 심지어 이걸 내주는 곳도 있다.
서울 설렁탕 노포의 밥. 냄새나고 떨이 졌다. 국물과 맛난 김치가 부끄러워할 정도였다. 어딜 가나 밥은 이런 대접을 받는다. 음식 먹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타이밍이다. 갓 한 것이 가장 맛있다. 투 뿔이든 3등급이든 갓 구운 소고기는 맛있다. 생선도 구워 먹는 것과 구운 것을 데워 주는 것도 차이가 난다. 네 이야기인즉슨 솥밥을 원하는 것인가? 반문할 것이다. 갓 한 솥밥을 해주는 곳도 그곳도 좋지는 않다. 밥에 있어서 뜸이 중요함에도 뜸을 제대로 들이고 주는 곳이 거의 없다. 설익은 밥맛이 많다. 갓 한 솥밥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그냥 밥솥에서 퍼서 달라는 것이다. 1970년대처럼 누가 강제로 하는 것도 아님에도 공깃밥이 남아 있는 것은 식당 주인이 편하기 때문이다. 밥 퍼서, 뚜껑 닫아서, 밥장고에 넣으면 편하기 때문이다. 편함에 있어 와서 먹는 손님에 대한 배려는 없다. 나만 편하면 그만이라는 이기심이 공깃밥 안에 있다. 밥하고 뚜껑 사이 공간에 말이다. 이기심이 클수록 공간은 커진다. 이기심이 적으면 대신 떡밥이 된다. 바쁘다는 핑계는 대지 마라. 바빠도 퍼주는 곳 많다. 당신의 이기심일 뿐이다.
세상은 변함에도 변하지 않는 공깃밥. 쓰뎅 재질이라 50년, 강산이 5번 변해도 그대로인가 보다. 쌀 좋은 거 쓴다고 자랑말고 떡밥이나 내지마라. 손님이 먼저다. 밥, 뭣이 중헌디 생각해보면 답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