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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영 Jan 12. 2022

프롤로그

가는날이제철입니다


세 번째 책이 드디어 나왔다.

프롤로그는 안 썼으면 했다. 딱히 할 말이 없었다.

컴을 켜고 가만히 있었다.

질문 하나?

"시장에 왜 가니?"




#프롤로그

#가야할때

화면에 깜빡이는 커서를 잠깐 지켜 보고 있었다. “시장 왜 가지?” 이런 질문을 던지면서 말이다. 곰곰이 생각했다. 3년, 짧지 않은 시간을 돌이켜보며 얻은 답은 가야 할 ‘때’. 마을이 쇠하고, 면이 쇠하는 곳이어도 장은 섰다. 사람이 없음을 알고 있다. 때가 되면 판을 깔고, 때가 되면 딱히 살 것이 없어도 장에 가는 버스에 올라탄다. 관성,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이다. 장터라는 게 물건만 사는 곳이 아니다. 사람이 있다. 영순 할매가 있는, 건넛마을 대구댁하고 만나 이바구 하려면 장터에 가야 한다. 장터 목적에 ‘만남’ 추가다. 장터에 팔러 나온, 사러 나온 할매들에게 급함이 없다. 장을 이끄는 장돌뱅이들과는 다르다. 장을 펼쳐 놓고는 두런두런 이야기에 빠져 있다. 물건을 살 때 다른 것도 넌지시 사라 권한다. 안 사도 그만이다. 봉다리에 담아 건네고, 돈 건네받으면 다시 이야기 속으로 들어간다. 장을 다 본 할매들은 검은빛 반짝반짝 빛나는 택시가 옆에 있든 말든 급함이 없다. 버스 시간이 한참이 남아도 상관없다. 버스 정거장에 앉아 이야기 삼매경이면 그 시간도 후딱 이다. 장터에 나온 할배들은 막걸릿집, 국밥집에 앉아 또 다른 이야기 세상을 열고 있다. 전국 어디를 가나 오일장에서 흔히 보는 풍경이다. 오일장은 동네 사람들 모이는 곳. 마트와 백화점과 다른 것은 바로 아는 사람을 자주 만난다는 것. 내가 사는 양천구의 시장을 다니거나 아니면 대형할인점에서 간들 아는 사람 만나기는 불가능하다. 오일장은 오십 보 가기 전에 인사 나누는 이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오일장, 백화점, 온라인 장터 등 이런 업태를 우린 ‘유통(流桶)’이라 한다. 물건을 돈으로 바꾸는 곳이다. 인생사에서 유무형의 재화가 오가지 않는 곳이 없다. 곡을 쓰고, 그림을 그리거나 해서 돈을 받은 것 또한 유통이다. 연기도 그렇고, 사무실에서 일하는 것도 같다. 예전에 그런 것이 모이는 곳이 장터였다. TV에서 그려지는 국밥, 오뎅, 족발, 치킨 먹으러 가는 곳이 아녔다. 사람을 만나야 일이 풀리던 시절, 장터는 산골의 애니콜이었고, 해안가의 걸리버였다. 그런 장터가 멈추려고 한다. 


관성의 법칙, 구르던 돌은 구르려고 한다. 오랫동안 오일장은 우리네 주변을 굴러다녔다. 인구 감소하는 농촌에서 더는 밀어줄 사람이 없어 이미 멈췄거나 관성의 힘으로 겨우 돌아가는 곳이 많다. 언젠가는 멈추겠지만, 그 시간을 늦출 수 있다면 그리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다. 별거 없다. 여행을 오가는 일정 사이에 전국 오일장을 넣어 보자. 외지의 사람이 한 명, 두 명 늘어나면 장터의 기운이 달라진다. 비행기 타고 가는 제주도도 마찬가지다. 사는 사람을 늘릴 수는 없더라도 장터에 사람이 들어오면 된다. 장터에 사람과 돈이 돌면 사람은 자연히 는다. 돈이 고였다가 흐르는 곳은 살지 말라고 해도 산다. 시장마다 억지로 만든 청춘 점방들 보면 짠하다. 사람이 없어, 돈이 말라버린 곳에 청춘이라고 딱히 무엇을 할 수 있는 것이 없음에도 그리하라고 한다. 사시사철 지역이 맛으로 빛나지 않는다. 우리 지역이 언제, 무엇이 가장 맛있는지 알린다면 청춘에 구걸하는 것보단 의미가 있는 듯 싶다. 맛집 검색할 때 오일장도 검색을 해보자. 계절 따라 여행 갈 때 한 번만이라도 오일장을 일정에 넣자. 그런 과정이 쌓이고 쌓이면 좋은 결과가 오지 않을까 싶다. 농촌 소멸 뉴스에 혀만 차지 않았으면 한다. 시장, 아는 만큼 맛있다.


#가는날이제철입니다

#오는날이장날입니다

#지극히미적인시장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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